<정기상의 삶의 향기>

부처님 오신 날 산사를 찾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산사를 찾아서 내 안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일은 의미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바르게 살아왔는지 깊이 있게 반추해볼 수 있는 장소로는 산사만한 곳이 없다.

금산사.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7 교구 본사다. 전라북도 불교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잘 하고 있는 믿음이 가는 산사다. 언제 어느 때를 상관하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반겨주는 곳이어서 생각날 때마다 찾는 곳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으로 가라 입고 맞이해준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어서 서둘렀다. 아니나 다를까 금산사의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너른 공간이 자동차로 꽉 메우고 있었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하였지만, 10 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삶의 지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금산사로 이어지는 길은 사람들로 꽉 매워져 있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관심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다.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어렵게 발걸음을 떼고 계시는 할머니도 계셨다. 추구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이 왜 아름다운지 알 수 있었다.

대웅전 마당에서는 법요식이 거행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법요식에 참여하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원색으로 빛나고 있는 연등과 어우러져 사람들의 표정에는 진지함에 배어나고 있었다. 삶의 지혜를 얻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대웅전 안의 부처님 가르침을 구하고 있었다.

구름처럼 밀려드는 인파를 바라보면서 삶의 지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참 진리는 무엇일까. 범부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실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삶과 죽음.
결국 모든 것은 삶과 죽음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께서는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고 새순이 돋아나는 것이 탄생이라고 하셨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옳은 말이고 진리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인 사실은 삶과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 것이 문제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구하고 싶은 것이다.

삶과 죽음에 연연하게 되면 자꾸 초라해지고 모자라게 된다. 모자라는 부분을 자꾸만 채우고 싶어 하고 그것으로 인해 욕심의 덫에 빠지고 만다. 욕심의 수렁에 젖어지게 되면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부천님께서는 내가 없다는 무아를 강조하신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부처님 오신 날 금산사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였다. 정기상 기자 <정기상님은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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