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심' 선봉장 당 복귀 후폭풍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으로 돌아왔다. 당초 노 대통령과 임기 말까지 함께 하고 싶다던 그였기에 장관직 사퇴는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남기고 있다. 통합신당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열린우리당은 그의 복귀를 놓고 각 계파별 분석이 분주하다.
더욱이 이해찬 전 총리가 최근 잠룡으로 재부상한 상황이어서 유 전 장관의 역할을 놓고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사수파의 핵심으로 불리는 유 전 장관이 과거처럼 노심의 선봉장 임무를 수행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당이 이런데 대선이라니. `망나니`가 무슨 일을 하겠나."
지난 1년 3개월 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유 전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권 출마설을 일축한 것이다. 그는 노 대통령의 대선 구상과 자신의 퇴임이 연관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현재로서는 `좌절감에 빠진 정치인일 뿐이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미 열린우리당 주류가 자신을 `망나니`로 만들어 놓은 상태인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실제로 양대 계보를 이루는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측에선 유 전 장관의 이름만 나와도 고래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위에서 그냥 두겠나"

그러나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 전 장관의 당 복귀는 상당한 후폭풍을 남길 전망이다.
유 전 장관은 친노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으며 `노심`을 가장 정확히 읽는 몇 안 되는 인사로 손꼽혀왔다. 그가 정치권에 입문한 것도 2002년 대선 과정이었다. 당시 유 전 장관은 지지율이 추락하던 노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다.
때문에 이번 정치권 복귀는 노심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를 의식한 듯 유 전 장관은 정세균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원래 글쓰는 사람이니 참여정부가 해온 일 등을 정리해서 책을 낼 생각이다"며 "국회에는 나오겠지만 당에는 잘 안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재처럼 대통합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자신이 나타나면 원치 않은 부작용과 오해가 생길 것이라는 게 유 전 장관의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전 장관 당 복귀의 진짜‘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유 전 장관은 사의 표명 배경을 "내 본뜻과 다르게 당에 복귀한다는니 하는 공세가 있고 복지부 직원들의 업무가 불안정해지는 점도 있다"면서 "국민연금법 문제를 제외하고는 다른 정책들도 갈등 사안들이 정리가 됐기 때문에 내가 복지부에 있는 것이 해로울 수 있어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유 전 장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상관없이 여권은 그의 당 복귀가 ‘노심(盧心)’인지 아니면 노 대통령의 “대통합의 대세를 따르겠다”는 발언에 대한 ‘항명’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유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대통합신당 논의 시한으로 받은 6월 14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당에 복귀한 것은 사실상 ‘당 사수’를 바라는 노 대통령의 뜻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청와대측은 “일단 유 전 장관의 사퇴는 노 대통령과 무슨 협의가 있었거나 또한 어떤 계획을 갖고 진행됐던 것이 아니다”며 “대통령과 입장이 같다 다르다 논할 문제가 아니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항명성 사퇴도 아닐 것”이라면서 “개인적, 정치적 이유로 자꾸 당 문제와 관련해서 도마위에 오르니까 부담이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이 “내가 ‘노의 남자’라는 얘기를 들으면 여러 느낌이 있다. 저는 유시민 이거든요. 저는 누구의 사람도 아니고 누구의 대리인도 아닌 제 자신이다”고 밝힌 대목도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유 장관이 `노심`과는 별도로 대선출마를 염두에 두고 ‘독자행보’를 걷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구 참정연 관계자는 “유 장관의 대선출마 여부는 당 상황이 워낙 유동적이라 규정지어서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양대 계보를 비롯 친노그룹 사이에서도 유 전 장관의 복귀를 대하는 분위기가 천양지차인 이유이기도 하다. 대체로 당이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게 주된 목소리를 이룬다. 중립 노선의 한 의원은 "유 전 장관의 복귀로 친노, 비노, 반노를 놓고 격론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설사 당사자가 가만 있더라도 주위에서 그냥 두겠느냐"고 말했다.
친노 그룹사이에서도 유 전 장관의 성격 상 통합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평가다. 더욱이 민주당이 유 전 장관 등과 함께 할 수 없다고 공언한 상황이어서 열린우리당 사수파의 단결력은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DY·GT 측은 `비상`

유 전 장관의 당 복귀를 또 다른 잠룡인 이 전 총리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현재로서는 유 전 장관 본인이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이 전 총리의 대권 도전이 가시화된 것도 유 전 장관이 `킹 메이커`로서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다. 유 전 장관은 과거 이 전 총리의 보좌관 출신으로 남다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런 유 전 장관의 당 복귀는 결론적으론 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노그룹 행보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유 전 장관의 정치력이 예전같지 않고 당분간 자중할 뜻을 내비쳤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정, 김 정 의장 측이 집단 탈당할 경우 당내 무게중심은 친노그룹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질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는 지난 5월 말부터 동북아 평화위 소속 의원들과 친노 의원들을 연이어 만나며 `대권 도전`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 최근 주변 국가들을 돌며 4개국 정상회담설의 초석을 다진 이 전 총리는 유 전 장관의 향후 거취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통합신당 움직임에 대해선 이 전 총리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입장이지만 유 전 장관과 역할 분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열린우리당 인사의 말이다. 이들 두 사람과 또 다른 대권 주자들인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은 노 대통령과 우호적인 입장을 이어왔다. 이 전 총리는 이와 관련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하는 어느 정당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 표시를 분명히 했다.
향후 범여권 대선 후보가 친노 대 비노, 반노로 나눠질 경우 이들의 응집력은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친노 그룹의 한 의원은 "현재 이 전 총리의 대선 출마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면서 "통합 신당 움직임에 따라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깃발을 내리고 있어라 오늘은…”

한편 유 전 장관은 지난 25일 “신문 정치면에 등장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 올린 글을 통해 “당분간 책 쓰는 일에만 매달리겠다”며 향후 행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국민을 섬길 수 있었던 지난 날들, 때로는 힘들었지만 행복했다”며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고 장관 재임 시절을 회고했다.
이어 유 장관은 “긴 말씀보다는 도종환 선생의 짧은 시 한편을 주인의 허락을 받지도 않은 채 재회의 선물로 보낸다”며 도종환의 ‘슬픔에게’라는 시로 최근의 심경을 대신했다.
"슬픔이여 오늘은 가만히 있어라/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땅을 치며 울던 대숲도/ 오늘은 묵언으로 있지 않느냐/ 탄식이여 네 깊은 속으로 한 발만 더 내려가/ 깃발을 내리고 있어라 오늘은/ 나는 네게 기약 없는 인내를 구하려는 게 아니다/ 더 깊고 캄캄한 곳에서 삭고 삭아/ 다른 빛깔 다른 맛이 된 슬픔을/ 기다리는 것이다"
유 장관은 일산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집필 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보고서 형식으로 장관 경험을 담아 건강투자정책을 골자로 한 사회투자전략을 담을 예정이다.
김태년 의원은 “장관을 했던 사람들이 재임기간동안의 경험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은 필요하며 이번기회에 전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의원은“장관의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라며 “역사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장관 재임 기간동안 유 장관의 지지자들이 관리했던 유 장관의 홈페이지는 다시 ‘국회의원 유시민’으로 돌아왔다.
유시민 의원 측은 “지금은 새로운 홈페이지를 개발 중이며 곧 완성된 홈페이지로 인사드리겠다”며 “부족하지만 그때까지 이곳 한마디 게시판을 통해서 네티즌 여러분과 소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지자들 모임인 참여시민광장측은“서프라이즈가 ‘노짱토론방’으로 상징되는 당파성을 지니고 있다면, 시민광장은 캐치프레이즈,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와 ‘시민토론방’으로 상징되는 보다 선명한 유시민 당파성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의 당 복귀로 결집 가능성이 높아진 친노그룹. 이들이 향후 대선 정국에서 어떤 결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진석 기자 ogis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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