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울, 그 때를 아십니까

 
이완용(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과 그 일가
이완용은 1930년대초 순사시험문제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친일파의 거물이었다. 문제는 `이완용에 대해 아는 대로 쓰라`였으며, 모범답안은 `이완용은 구한국시대의 총리대신으로 일한병합에 공적이 크며, 병합후 후작을 받았다`였다. 서울시민들도 이완용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 그 당시 서울 시내 공중변소의 벽에는 `여기가 이완용 요릿집`이라는 낙서가 곧잘 적혀 있었다.


이완용에 대한 순사 시험문제



이준용 저택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의 저택은 운현궁 내에 있는 서양식 건물로, 그 건립시기는 1911년 혹은 1912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계와 시공은 전부 일본인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 건물은 광복 후 잠깐 미국이 사용했으나, 1946년 8월 덕성여대가 인수해 사용 중이다.


윤덕영 별장
조선왕실의 외척인 윤덕영(순정효황후 윤씨의 숙부)의 집은 `천장에 고기들이 노닐었다`고 불릴 정도로 화려했다.


노량진 일대(1932년 이전)
노량진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나가는 가장 큰 길목으로 정조 때엔 이곳에 배다리를 설치하기도 했다. 또한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명승지로도 유명했다. 근대에 들어와 노량진이 유명해진 것은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에 운행되면서부터다.


노량진 일대


두모포 전경
두모포(지금의 옥수동) 앞은 뚝섬을 중간에 두고 한강의 본류와 중랑천의 물이 합류되는 곳에 위치해, 마치 잔잔한 호수를 보는 듯 했다. 동호(東湖)라고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으며, 용산강의 남호, 마포강의 서호와 함께 도성 앞을 흐르는 한강의 명승을 이뤘다. 성종 때 젊고 유능한 학사들에게 독서휴가를 주어 공부하던 독서당이 있고, 강 건너 맞은편에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의 별장 압구정이 있다. 1911년 경원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풍경이 많이 퇴색했다.

사진/서울시역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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