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코스모스와 충만한 삶

“어 ! 코스모스 꽃이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7월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벌써 코스모스 꽃이 피었다니, 낯설다. 그런데 분명히 피어 있다. 그 것도 한 송이가 아니라 여러 송이다. 한 군데에서만 피어 난 것이 아니라 눈길이 가는 곳마다 피어 있다. 마음이 조급하여 먼저 핀 한 송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듬성듬성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꽃을 보니,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전주에서 옥정호로 향하는 도로 양옆에 코스모스 꽃이 환하게 웃고 있다.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곱다. 유혹하는 손짓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홍색의 꽃도 있고 하얀 색의 꽃도 있다.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구족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행복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작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대답을 하지 못해 쩔쩔 해면서도 의심은 하지 않는다. 행복이 없다고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목적이 행복이라고 당연하게 믿으면서도 실제로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행복을 잡기란 힘이 든다. 추구하는 목표가 분명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으니,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지는 것이다.

‘9’라는 숫자를 옛날부터 구족한 수라고 여겨왔다. 완벽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하다. 역사를 돌아다보면 ‘3’이란 수와 ‘5’ 그리고 ‘9’라는 수를 좋은 징조의 수로 여겼다. 삼월 삼짓날이 좋은 날이고 단오는 더 길한 날이다. 중양절(9월 9일)은 일년 중 가장 좋은 날이다. 그냥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삼족오가 길조이고 매월 초사흘 날에 시루떡을 해놓고 제사를 지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살아가면서 막연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행복이다. 그런데 행복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행복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모두 충만 되어 있는 삶을 말한다. 잡념 없이 기도하게 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상태를 안으로 꽉 채워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겉으로도 아름다워야 한다.

법정 스님께서는 행복의 조건으로 `아름다움`과 `살뜰함` 그리고 `고마움`을 들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 행복은 그만큼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단순화시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조건이 필요할 것이고, 꿈과 야망이 큰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조건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행복의 조건으로 든 것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진 선 미라는 조건이 모두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살뜰함을 추가함으로서 만연하고 있는 말초적인 쾌락과 겉모습만을 강조하는 것을 경계하는 배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주관적이지만 독립적이지는 않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감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서로 자극을 주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 안에서 기쁨과 환희를 얻을 수 있을 때 행복에 다다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삶은 결국 모두 다 인연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7월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면서 행복을 생각한다. 감동을 통해 가슴에 다가오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이미 행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배려가 감동으로 확산되어질 때 행복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이 내 안에 자리 잡아 살뜰함으로 어우러지니, 저절로 행복감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름다운 7월이다. 

사랑의 마법

7월의 햇살을 받고 있는 도라지가 유혹한다. 하얀색의 꽃을 순백의 순결함으로 가슴을 잡고 청남색의 꽃은 청순함으로 다가선다. 바람이 흔들릴 때마다 물결을 이루며 여행객의 마음에 파도를 친다. 외로움과 고독으로 차 있는 정서에 한 줄기기 싱그러운 바람이 되어 휘감아버린다. 달리던 자동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전북 전주에서 순창으로 달리는 도로 옆에 도라지 밭이 있다. 밭이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밀집되어 있으니, 아주 넓게 보인다. 그것도 한 가지 색으로만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얀색과 청남색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자동차에서 내려 도라지꽃에 흠뻑 취할 수 있다.

활짝 피어난 꽃은 그것대로 향이 배어나고 있지만 이제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봉오리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마치 종이접기 하여 만든 각진 공처럼 묘하게 생겼다. 그런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힘이 강력하다. 그것은 환상의 마법을 연상하게 한다.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상상하지 못할 새로운 일이 벌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신기해한다. 마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눈속임으로 발전한 것이 마술이다. 사람들이 마술에 심취하는 것은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술의 이면을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직은 진실과 통한다. 거짓은 당장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들통이 난다.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속임이 아닌 마법을 믿는다. 그래서 모두가 꿈꾸고 있다. 현실은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은 빛나는 날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바란다. 그렇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 힘은 바로 마법이다.

눈속임이 아닌 진실한 마법은 있다. 상상 속의 일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믿고 있고 또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마법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고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마법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눈속임이 아니다. 거짓이 아니다. 사랑의 마법에 걸리게 되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랑의 마법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사랑의 마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희망을 걸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마법을 펼치면 세상은 새로워진다. 이전까지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만지는 것마다 황홀해지는 것이다. 처음 접하게 되는 세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순간순간이 기쁨으로 넘친다. 거기에는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은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마법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법이 펼쳐진 세상은 놀랍고 경이롭다. 오관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인다. 신비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진해지고 깊어지고 감사해진다. 이런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어찌 마법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도라지는 예부터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이치에 닿아 있다는 고사리와 도를 구하는 마음을 주저하지 말라는 시금치와 함께 3 대 제물 중의 한다. 도라지는 ‘도를 알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도를 알자’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도라지는 그래서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도라지꽃이 더욱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도라지꽃을 바라보면서 사랑의 마법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의미도 없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팍팍한 일이 되고 만다. 흔들리면서 유혹하고 있는 꽃을 보면서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고, 당장이라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게 된다. 사랑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하는 것이니. 햇살에 반짝이는 꽃이 돋보인다. 

옥정호 드라이브 코스의 멋

굽이굽이 돌아가는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기에 좋은 곳은 많이 있다. 답답한 마음을 파란 하늘에 띄어버리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방법 중에 드라이브가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실천할 수가 있다. 드라이브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힘들지 않고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니까.



전국의 100 대 드라이브 코스 중의 하나가 바로 옥정호 드라이브 코스다. 옥정호는 전북 임실군과 완주군 그리고 정읍군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다목적 댐이다. 칠보 수력 발전소를 통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비롯해 농업용수, 공업용수,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주변 경관이 아주 뛰어나다. 그래서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계절마다 독특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어, 찾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봄은 새순의 싱그러움으로 다가오고 여름에는 신록의 신선함이 유혹한다. 가을에는 찬란한 단풍으로 겨울에는 하야 눈의 나라로 변신하는 것이다. 독특함이 황홀경으로 안내한다.

장마로 인해 우울한 기분을 반전시키기 위해 옥정호로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일요일 오후라서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빗속을 달리는 기분이 괜찮다. 잔잔하게 내리고 있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아의 세계를 탐닉하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옥정호에 이르러 팔각정에 올랐다. 아래로 옥정호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의 맑은 물결이 넘실거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것은 호수의 넉넉한 물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예상을 빗나가게 하였다.

당황스러웠다. 어찌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한두 번 찾아 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수의 바닥이 드러나 있는 것이었다. 장마가 시작되었어도, 넓은 호수를 채우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태였다. 말라버린 호수를 보면서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나이를 먹게 되면 희망은 현실과 연결된다. 젊었을 적에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당당해질 수 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희망이 현실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허망하거나, 과대한 꿈을 꾸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희망에 대한 소망도 달라진다. 열정이 넘치던 시절에 가졌던 꿈은 자신의 성취를 위하고 개인의 영화를 꿈꾼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의 희망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가지는 꿈은 소박할 뿐만 아니라 바라는 마음도 소담하다. 희망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는데 작은 기여를 하기를 바랄 뿐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희망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모두를 위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꿈의 크기는 비록 작아도 빛이 난다. 이기심의 충족보다는 사회를 위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희망이 모이면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게 된다.

바닥을 드러낸 호수를 바라보면서 가슴에 박힌 사람을 생각한다. 평생 동안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든가, 아니면 피해를 준 사람이다. 상처를 준 사람이고 아픔을 키워준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옥정호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생각하고 가슴에 간직하는 사람에 대해서 되새기게 된다. 마음먹기 달렸다.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바닥이 드러난 호수에 대한 희망은 곧 물이 찰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었다 하여 희망을 가지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힘들다. 피해를 준 사람을 영원히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면 고통이 앞선다. 피해를 준 사람은 이미 잊어버렸다. 단지 고통 받는 사람은 나일 뿐이다. 내리는 비가 아름다워 보인다. 호수의 물을 그득 채울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기상님은 전북 완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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