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방> 대학에서 불어닥치는 고시열풍을 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학생들을 취직시키는 일이다. 요즈음은 심지어 학생들 취업률이 학교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되었다. 공식적인 통계상으로도 청소년 실업률은 7-8%이고 실질적으로 비자발적 실업이나 실망 실업을 포함하면 20%를 상회한다. 대학에서 학문에 심취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들어오자마자 토플, 토익시험 등 영어시험 준비는 기본이고 취직시험과 관련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사오정’, ‘오륙도’, ‘백수’ 등 취업과 관련된 조어가 만들어 질 정도로 취업이 심각한 현실이고 보면 학생들만 탓하기도 어렵다.

특히 특정 직업을 대상으로 하는 취직시험은 ‘고시’로 명명되고 학생들은 전공을 불문하고 이 ‘고시’에 통과하기 위해 몇 년씩 매달리고 있다. 대학 안에서 뿐 아니라 대학 밖에서도 고시촌을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고 있다는 것은 자주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제 고시준비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으로 인식이 되고 있는 있고 나아가 고시열풍으로 불리기도 한다. 매스컴에서 자주 언급될 정도로, 그리고 열풍이라고 불릴 정도이면 일반의 예측을 뛰어 넘어 비정상적이란 이야기이다.

고시라고 하면 행정고시, 사법고시 등을 연상하였지만 요즈음은 신문기자 등 언론인이 되기 위한 언론고시, 금융기관에 취직하기 위한 금융고시,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공무원고시 등 고시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 ‘신이 자기가 가려고 감추어 놓은 직장’ 등 ‘神고시’도 요즘 新고시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고용구조가 불안한 현실에서 특정 직업이 갖는 직업 안정성, 신분 상승, 돈과 권력에 대한 기대 등이 얽혀서 나타난 결과이다. 결코 건전하다고 보여 지지 않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고시는 과거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그것이다. 지금은 돈을 으뜸가치로 치는 경향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최고의 가치는 ‘입신양명(立身揚名)’ 즉 고급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사실 과거를 실시한 사회는 혈통에 따라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보장해 주었던 당시의 귀족사회에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진일보적한 제도이다. 과거제도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평가하여 관료를 선발하는 것으로 그 시대로서는 매우 공정한 인재 등용 방법이었다. 이런 고시열풍이 부는 것,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복권을 사는 것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물론 본질적으로 동기나 결과가 다르기는 하지만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대박을 터뜨려 수직적인 상승에 의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복권 사서 추첨을 해 당첨자를 뽑는 것처럼 공정하게 선발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과 상민이었던 조선시대에 대부분의 백성은 과거에 응시할 여건을 갖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역사적 사료를 보면 시험의 내용도 방식도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에는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제술이었는데 요즘말로 말하면 논술시험 정도였나 보다. 제술 과목에는 문학작품인 시(時), 부(賦), 송(頌)과 논문인 책(策)이 있었는데 주로 출제된 것이 시와 부였다고 한다. 문제는 시나 부를 잘 쓰는 것과 훌륭한 관료가 되는 것과는 상관관계가 적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한 평생 과거에 붙기 위해 훌륭한 관료가 되는 것과는 상관관계가 적은 시나 부를 쓰는데 정력을 소진하였으나 정작 관료가 되어서 그 재주는 쓸 데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것이 유일한 그 시대의 탈출구였기에 시와 부에 젊은이들이 목을 매었던 것이다. 가장 창조적이고 성정이 풍부할 젊은 나이에 과거 문장 익히기에 정기를 빼앗겼으니 국가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를 보면 현재가 이해가 되고 미래가 보인다고 했던가? 요즈음 젊은이들이 청춘을 불사르는 고시열풍을 보며 이 불안정한 시대에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는 의식에 더해서 돈과 권력, 단계적 노력이 아닌 수직적 상승에 의한 목적 달성 등이 요즈음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인실 이사 <이글은 한국여성민우회(www.womenlink.or.kr) 홈페이지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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