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통문> 학교몬댕이 외딴 딸부잣집 생선장수 이야기

어느 시절 이맘 때 해질녘
집 앞 삼거리에 갈치장수가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데...
“썩어서 냄새가 포~올~폴 나는 갈치 사요"~~!
"고자리가 드글드글거리는 갈치 사요"~~~
그 소리만 들어도 마을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그 갈치장수는 학교몬댕이 외딴집 딸부잣집 생선장수인 것이다.
새마을사업도 시작되기 훨씬 전이니까
울퉁불퉁 비포장 신작로 길을 이 마을 저 마을로 짐차자전거에
생선 상자를 높이도 올려 싣고 다니다가
팔다 남은 갈치떨이를 우리 마을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새벽 일찍 40리길 줄포장까지 짐바리자전거를 타고 가서
생선을 받아다가 영원까지 오는 동안 이 주막 저 주막 거치면서
막걸리 한잔에 목 축여가며 소리 지르다보니
해질녘쯤이면 오죽이나 힘들었을까?

돈이 귀했던 시절 쌀보다 보리가 훨씬 더 많이 거래되었기에
생선만큼이나 무거운 보리쌀이 갈치값으로 계산되어
그의 자전거는 무게를 덜어낼 줄을 몰랐다.

얼음도 귀하던 시절이라 하룻밤 자고난 뒤 갈치가 상하면 무조건 손해인지라
어떻게든 팔아치워야 하는 절박한 악다구니였지만
하필 “썩어서 냄새가 포~올~폴 나는 갈치 사요~~"라고 외치는지....

저녁 설거지를 끝낸 마을 아낙들은 돈 한푼 없었어도
생선장수 아저씨 자전거 주위에 몰려들었고
덩달아 이집 저집 아이들은 술취한 생선장수의 악다구니를 재미있어 하며
떼지어 따라 다니면서 생선장수를 흉내냈다.

한바탕 소동치는 동안  해는 진즉 넘어갔는데,
그리 멀지 않은 옆 동네 학교몬댕이 외딴집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팔리지 않은 갈치상자 때문이러니....

그날따라 이 마을의 가난한 친구조차 나오지 않아
그냥 던져주는 가을내기 외상떨이도 못했던가.
술 취해 어느집 담장에 기대어 흥얼거리는 유행가인지 뭔지...
아마도 신세타령이었겠지만.....

이윽고 밤이 깊어지면 저만치 석유 등불이 몇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고
조심스런 발걸음의 처자들이 어김없이 아버지를 데리러 오면
올망졸망 딸래미들 끌어안고 그리도 좋아했던 생선장수 아저씨
"아그들아 인자 집으로 가자~~"

나이 어린 막내딸에게 백지로 바른 등불 앞세우고
아내는 다른 쪽 핸들 잡고
나머지 어린 딸래미들은 자전거 뒤에 실린 생선상자 둘러싸고 밀고가며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노래 부르는데
여전히 지친 생선장수 아저씨는
“썩어서 냄새가 포~올~폴 나는 갈치사요~~! 외치면서
학교몬댕이 길 오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곽상주 기자 <곽상주님은 전북 정읍에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정읍통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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