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중한 비명소리 밤하늘에 울려퍼지다"
"둔중한 비명소리 밤하늘에 울려퍼지다"
  • 승인 2008.03.03 1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들의 수다방>KT아트홀 공연을 보고 와서

광화문 KT아트홀 공연을 보러 얼마 전에 다녀왔어요.
재즈가 주인데 입장료가 천원이거든요. 그런데 천원이면 정말 거저인 공연들이 많아요.

공연을 보고 나서 한동안 가슴 설레다가 한 친구의 강요 아닌 강요에 글을 좀 끄적여 봤어요. 요즘 작가훈련이다 뭐다 막 써 보려 하는 중이거든요. 실제가 아니므로 그저 재미로 봐 주세요. 다음 글은 유치하며 피식 하는 웃음을 유발할지도 모릅니다. <글쓴이 주>

만난 지 얼마 안된, 아직은 연인이란 말조차 어설픈 두 사람을 반겨준 것은 피아노와 어우러진 여러 악기의 선율이었다. 탁 트인 천장의 넓은 홀에 울려퍼지는 청아한 소리와 여기저기 이질적이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의자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듯한 인공의 냇물이 인상적이었다.

지수는 처음 와보는 이곳이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부담스럽지 않은 연주 때문이거나, 아직은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이 마냥 좋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천원짜리 공연`을 보러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취미로 음악하는 사람들이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괜찮은 재즈뮤지션들이 나온다는 민재의 설명보다 연주를 직접 들으니 그 생각이 틀렸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매일 바뀐다는 이곳의 라인업은 화려했다. 이날의 출연진은 `티미르호`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이름을 갖고 있었다. 재즈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음악은 아닌 듯했다.
"뉴에이지의 일종이야. 시크릿 가든이나 비슷한 류의 음악 들어봤지? 그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리스닝` 계열이라고 보면 돼."

민재가 연주 중간 틈을 타 말해줬다. 과연 연주는 서정적이었다. 어깨에 힘 따위 필요없이 듣고 또 연주할 수 있는 음악. 특색이 있다면 흔치리코더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

피아노를 연주하는 티미르호 리더의 딱딱한 설명이 이어졌다.

"자세히 설명해줘서 좋기는 한데, 순식간에 관객을 음악시간 학생들로 만드는 효과가 있네. 사실 관객들은 듣고 좋으면 그만이거든. 왜 저 악기를 사용했을까 하는 이론적 설명은 큰 의미가 없어."

사실 지수는 음악적으로 해박한 지식은 없는 편이었다. 차라리 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쪽에 가까웠다. 민재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뻣뻣한 몸에 춤이라곤 나이트막춤밖에 모르지만 요즘 기타를 배운다고 열심이다. 나이 서른에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도 없는 건 수치라면서 아직 코드 몇 개 밖에 모르는 기타를 열심히 끌어안고 산다. 지수는 민재의 그런 소년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민재는 기타리스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지수도 자연히 관심이 갔다. 잘생긴 외모보다도 더 시선을 잡아끄는 건 자연스럽고 숙련된 손놀림이었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무대매너와는 사뭇 다르게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아직 나이들도 어려 뵈는데 연주들을 잘 하네. 몇 년 뒤면 꽤나 유명세를 타겠어. 오빠부대도 적잖이 생기겠고…."

다소 짧아 아쉬운 1부가 끝나고 어느 연인의 프러포즈 영상이 상영되었다. 이럴 땐 오직 두 사람만 주인공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순식간에 들러리가 되고 만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물론 아름답지만 싱글 혹은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에겐 가혹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오랜 기간 지수도, 민재도 애인이 없어 무언가 결핍된 존재 같은 자격지심에 시달렸었다.

불편한 것도 잠시, 기타 솔로로 2부가 시작되었다. 민재가 탄식어린 신음을 흘렸다. 질투라기보단 경탄에 가까웠다. 지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때론 익숙하고 때론 낯선 여러 곡이 연주되었지만, 단연 백미는 `티미르호 탱고`라고 할 수 있었다. 탱고연주를 들으며 지수는 갑자기 춤이 추고 싶어졌다.   
   
어느새 빨간 드레스를 입은 지수가 새털같이 사뿐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에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이 덧입혀지고 기타와 드럼소리가 흥을 돋웠다. 까만 정장 차림의 민재는 더이상 몸치가 아니었다. 둘이 한 몸이 된 듯 음악이 몸 전체를 공명하는 황홀한 순간, 현실의 몸치 민재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산통을 깬다.

"왜 눈을 감고 그래? 재미없어?"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외마디 한숨만 내쉬었다.

`아, 정말 멋졌는데. 이걸 확 그냥.`

어찌 됐거나 아슬아슬한 앵콜연주까지 공연이 모두 끝났다. 여기저기서 사진촬영과 인사말이 오간다. 지수는 공연의 여운을 간직하고 싶었다.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민재의 재촉을 받고서야 공연장을 나섰다.

`언젠가는 훌륭한 댄서와 기타리스트가 되어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눈치없는 이 남자, 하는 소리가 "나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연주는 못할 거 같아"다. 기어코 지수는 민재의 팔뚝을 꼬집고야 말았다. 둔중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가락(필명)<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홈페이지 (womenlink.or.kr) 칼럼란에 게재된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