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동원F&B·동서식품 '농약 녹차' 파문

이번엔 `농약 녹차` 파문이다. 2004년 쓰레기 만두, 1989년 우지 라면 파동에 이은 대형식품 스캔들이 번지고 있다. 특히 녹차는 그동안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꾸준히 시장을 늘려왔던 터라 이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편집자주>파문이 시작된 건 지난 10일. KBS TV 소비자 불만 제보 프로그램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녹차티백에서 ‘파라티온’이라는 고독성 농약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지난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가루녹차에서 기준치보다 네배나 많은 고독성 농약이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식약청은 시중 유통 중인 국산 및 수입산 녹차 29개 제품을 수거해 잔류농약 47종에 대해 검사를 실시한 결과 2개 제품에서 이피엔이 기준치 보다 높게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살충제를 녹차에 쓰다니…식약청에 따르면 국산 11개와 수입산 18개 녹차제품에 대해 건사 결과 동원가루녹차와 동서가루녹차에서 살충제로 사용되는 EPN농약이 각각 0.19ppm, 0.23ppm 검출됐다. EPN농약은 사과, 배, 담배 등에 진딧물, 잎말이나방 등의 살충제로 사용되는 농약으로 허용 기준치는 0.05ppm이하다. 반면 수입산 제품에서는 유기농 녹차 등 5개 제품에서 비펜스린(Bifenthrin, 기준치 : 0.3ppm)이 0.016~0.072ppm 정도의 낮은 수준으로 검출됐다. 농촌진흥청 측은 “이피엔을 녹차에 사용하게 되면 사용자 안전사용기준 위반이다. 농약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해당 병해충에 시험해서 효과가 있어야 하고 안전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독성이라든가 잔류성이든가 약효 등을 검토하는데, 이 이피엔 유제는 차에 등록신청이 없다”고 얘기했다.식약청은 EPN농약이 기준치를 초과한 2개 제품은 긴급 회수 및 폐기토록 조치하고, 관련 2개 제조업소에 대해서는 건엽 등 원료 및 관련 제품에 대한 정밀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분노는 치솟고 있다. 식품 안전성에 대한 관리가 이토록 허술하게 이뤄지는지 몰랐다면서 환불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치솟는 소비자들 분노녹차 제품을 즐겨 이용하는 주부 김모(서울 동대문구)씨는 “남은 제품이야 반품해 돈으로 돌려받으면 된다지만 그동안 사용한 녹차 가루는 어떻게 되느냐”면서 “농약 성분이 어디로 갔겠느냐. 몸에 그대로 축적됐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할인점 음료수 매장에서 만난 왕모(여·36)씨는 “‘가루녹차에만 농약 성분이 들었다’ ‘녹차티백에도 들었다’ ‘티백은 괜찮다’는 언론보도가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어쨌든 당분간은 모든 녹차는 사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도 보리차만을 샀다. 직장에 다니는 20대의 강수지(30. 경기도 일산)씨는 녹차가 몸에 좋다는 정보를 접하고 최근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하루 세끼 이상은 물론 회사에서 틈만 나면 녹차를 마셔오고 있다. 이 씨는 “정말 충격적이다. 앞으로야 절대 마시지 않을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마신 것은 어떻게 하느냐”며 아연실색했다.대기업에 다니는 남성직장인 김철중(36. 경기도 분당)씨는“평소 커피 대신 녹차를 즐겨 마셨는데 거기에 농약이 들어있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해당기업은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정부 당국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온라인도 뜨겁다. 한 네티즌은 관련 뉴스 댓글을 통해 “식약청의 뒤늦은 이상한 발표는 전혀 믿을 수가 없네요. 엄청 값비싼 녹차를 그래도 몸에 좋다고 마셔왔는데…. 녹차값이 똥값이 되도 먹지 맙시다. 아주 화가 많이 납니다. 그동안 말도 안되는 고가로 팔아먹었으면서 농약검사조차 안하고 품질관리도 안한게 말이 됩니까”라며 불매운동을 촉구하기도 했다.환불 요구도 급증하고 있다. 녹차 관련 제품 중 그나마 가루 녹차의 판매 비중이 크지 않은 편이지만 판매 건수 대비 환불 요구는 줄을 잇고 있다. 빗발치는 환불 요구 신세계 E마트 측은 “하루 평균 50건 가량 환불 요구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녹차제품에 농약성분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간 뒤 곧바로 가루 녹차 판매를 중지했지만 소비자들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롯데마트에도 점포별로 하루 2~3건의 반품 요구가 들어오고 있다. 롯데마트 측은 “동서식품 가루녹차만 판매했었는데 많이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서 반품 요구 건수가 많지는 않지만 판매 건수에 비해서는 적은 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홈플러스에도 매장별로 하루 10여건씩 환불 요구가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홈플러스 역시 식약청의 발표뒤 문제 제품을 매장에서 철수시켰다.현재 할인점, 편의점 등에서 녹차 관련 제품 매출이 평소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으며 심지어 녹차 사업을 전면 철수하는 기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특히 가루녹차 제품뿐만 아니라 음료, 아이스크림 등 녹차를 원료로 한 전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불신이 번지면서 전체 녹차시장에 미치는 이미지 하락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해당기업들 당혹특히 이번에 농약 EPN이 기준치 보다 높게 나타난 ‘동서가루녹차’의 동서식품과 ‘동원가루녹차’의 동원 F&B의 경우, 기업 매출과 주가는 물론 기업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해당 기업들은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해당 기업들은 부랴부랴 자사 홈페이지 등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뒷수습에 나서고 있으나 파문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상태다. 동서식품은 “소비자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며 “동서가루차제품은 전량 회수 중이며 교환 및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제품의 품질검사기준을 강화하여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뒤 “동서현미녹차(티백)은 식약청으로부터 안전성을 확인받았다”고 해명했다.문제의 가루녹차를 생산한 동원F&B는 가루녹차에 사용된 녹차잎이 전남 보성의 한 농장에서 전량 생산, 납품된 사실을 확인했다.동원F&B는 이와관련 자사홈페이지를 통해 “식약청 발표 직후부터 해당제품을 전량을 회수·폐기하고 있다”며 “그가 저희 제품에서 안정성 문제가 발생한 일이 없다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알아왔기에, 이번 일을 더욱 부끄럽고 죄송하게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그동안 녹차를 생산하던 다른 기업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웅진식품은 최근 녹차 원가 상승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면서 녹차 생산을 중단했다.웅진식품 유재면 대표이사는 “질 좋은 녹차잎 확보의 어려움과 생산원가 상승으로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 녹차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관련 정부 부처 늑장 대응 논란농림부, 식약청 등 관련 부처의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농림부와 식약청 등은 파문이 확산되면서 ‘농약 녹차’에 대한 회의를 열었지만, 초보적인 사실 관계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산물 생산, 유통 등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진 농림부는 담당 부서를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를 담당하는 소비안전과가 아닌 일부 농산물의 유통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채소특작과로 일원화했을 뿐이다. 녹차잎 생산 농가에 대한 긴급 조사 등 구체적인 행정 절차에 착수할지 여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식약청 역시 “조사 중이다. 녹차 제품을 특별관리대상에 포함시켰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농약 녹차 파문을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식약청 위해관리팀 관계자는 “녹차 제조업체는 국가가 공인한 식품전문기관에서 건엽 완제품에 대한 식품 위탁검사를 받도록 지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한편 전국차생산자연합회 이사회 임원진 25명은 식약청 발표 다음날인 지난 13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하동차체험관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어 ▲중국산 녹차티백원료 수입 자제요청 ▲현재 판매 중인 티백류 전량 회수조치 요구(약 120t ) ▲녹차생산농가의 자정노력과 친환경실천 등을 결의했다. 정부 당국의 늑장대응과는 비교가 되는 모습이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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