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시골 장터 풍경을 떠올리며…

둥두둥 챙챙∼둥두둥 챙챙…. 이어 하모니카 연주가 흐르고 목포의 눈물이 구슬프게 어우러진다. 곧이어 아낙네의 멋드러진 창가가 곁들어지면 어느새 시골장터엔 굿판이 벌어지고 원숭이가 수건을 목에 걸고 연실 사과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시골장터는 그렇게 하루를 맞이하고 들떴던 사람들은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던 내가 살던 시골 5일장 풍경이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의 5일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들뜬 날이요, 바쁘고도 즐겁던 날이었다. 보통 시골 장은 5일에 한번씩 어김없이 돌아왔고 5일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은 어른이나 애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살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5일장은 세상 만물의 집합소요 먹을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은 신이 나는 날이었다.

읍내 한구석을 차지한 장터는 입구에서 우측으로 소전이 있고 소전에는 팔려나온 소들이 연실 울어댄다. 음메에∼ 음메에∼ 울어대면 옆자리 염소가 비웃듯 화답한다. 음메∼에 음메∼에. 강아지는 뒤질 새라 깨갱대고 닭들도 아우성이다. 그렇게 가축들이 임자를 기다리던 장소가 소전과 함께 한 가축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소전을 옆으로 비켜 가면 어물전이 있고 어물전에는 온갖 바다 생선이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여기 저기서는 장사치들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들 “사세요, 사. 굴비요, 굴비" "아줌마 굴비 좋은 놈 좀 사세요". 흥정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아주머니 보따리 속으로 굴비 꾸러미가 들어가고 갈치며 꽁치 할 것 없이 흥정하는 소리는 쉴 새가 없었다. 비린내 나는 어물전을 지나면서 잡화상들이 나타나고 이들은 양철로 지은 점포에다 갖가지 상품을 진열하고 손님을 맞았다.

옷이며 신발 온갖 잡화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저마다 구경도 하고 흥정도 하는 북새통의 잡화전은 세상만물의 집합소 그대로였다. 고무줄 장수는 검정고무줄과 노란고무줄을 큰 대나무에 매달아 장터 바닥을 쓸고 다녔고, 넓게 포장 친 음식 전에서는 소머리국밥 냄새가 허기진 배를 현혹하곤 했다. 옆에선 국수를 삶아 채반에 올려놓고 후루룩거리며 국수를 먹는 사람, 막걸리를 마셔대며 회포를 푸는 사람, 그런 모두들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가마솥에서는 팥죽이 보글거리고 새우젓 가게에서는 짭짜름한 새우젓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렇게 5일장은 무르익고 오후가 될 무렵이면 어김없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약장수는 갖가지 만병통치약을 팔아대곤 했다. 이약도 팔고, 회충약도 팔고, 정력제도 파는 약장수는 볼거리의 으뜸이요, 장터의 피날레나 다름이 없었다.

약장수는 입담이 걸출한 신사였고 곁을 지키는 원숭이는 제일의 재롱둥이었다. 약장수는 큰북을 등에 지고 힘차게 발을 구르고 북소리와 심벌소리 우렁차게 퍼질 때 곁들이는 멋드러진 하모니카 연주는 절로 감탄에 빠지게 했다. 약을 팔고 나면 원숭이의 재롱이 이어지고 정력제를 팔라치면 보기도 놀라운 차력시범에 장터 사람들의 눈들을 사로잡곤 했다.

곧이어 뱀을 목에 두른 아저씨가 등장하고 애들은 가라고 소리를 친다. 정력으로 시작하여 정력으로 끝을 내며 순박한 시골을 현혹하기도 했었다. 검은 테를 즐겨 쓰던 약장수의 북소리는 장터의 배우요, 만병치료사요, 걸출한 만담거리였다.
어쩌다 어른들 키가 앞을 가리면 다리사이를 헤집고 어느새 앞자리를 차지하던 어린시절 시골장터 그 풍경은 정 넘치는 따뜻한 온기를 그려내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5일장의 해가 서산을 향하고 하나 둘 장보따리를 걸쳐 이고 어물전 고등어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막걸리 회포에 다리는 비틀거려도 벌겋게 달아오른 아저씨들 얼굴에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자유를 얻은 유유한 미소의 극치를 볼 수 있었다. 그날 그 고등어가 밥상에 올라올 때 온 가족이 느꼈던 온기를 누가 감히 누를 수 있었겠으랴. 대형마트가 즐비한 요즘 시골 5일장의 풍경만큼이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행복을 더할 수 있으련만 문명의 속박 속에서 여유를 잃은 정서가 허락하질 않으니….

<만고일월(萬古日月)이란 필명의 독자가 보내온 글입니다. 한가위 대명절을 앞두고 차츰 잊혀져가는 고향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보길 바라며….>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