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을 보러 가요?”
“가을?”

둘째가 불쑥 한 마디 하였다. 딸아이가 먼저 무엇을 요구하다니, 반갑고 고맙다.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수동적이었다. 하라고 하면 잘 하지만,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내니, 놀랍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내리 사랑이기에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은 넘치고 있다. 그렇지만 모두 다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생각과 실생활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의견에 셋째도 흔쾌하게 동의를 한다. 큰 아이는 제 일이 있어서 이미 외출을 한 상태였다.

집을 나서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파란 하늘이 손짓하고 있었다. 출발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동안 비가 왜 쉬지도 않고 줄기차게 내렸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미당 선생님의 노래가 떠오른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여름 내 소쩍새가 울었다고 한. 아름다운 가을을 부르기 위하여 그렇게 비가 내린 모양이다.

전주 도심을 벗어나 진안으로 가는 도로로 들어섰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나들이를 나선 사람들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거침새 없이 달리는 기분은 최고였다. 아이들도 흥얼거리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보기에 참 좋았다. 소양 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도로는 한적해졌다.

송광사를 지나 위봉사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도로 양 옆에는 여름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무들에게서도 가을의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아직은 여름이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파리들이 초록으로 제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왕성한 힘이 느껴지는 주변 산들을 바라보면서 위봉사로 들어갔다.

일요일의 산사는 고요 그 자체였다. 절의 마당에는 우주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 서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오래된 석탑과 잘 어울리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걸어온 삶의 길을 반추하게 된다. 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풍광을 바라보는 것도 있지만 자아를 성찰해보는 기쁨 또한 큰 것이다.

텅 비어 있는 내 안을 바라보면서 절을 나서서 대아 저수지로 향하였다. 도로를 정비하고 있는 곳이 있어서 신나게 달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도로 확장이 완전히 끝나게 되면, 풍광을 더욱 쉽게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전에는 도로가 중간에 끝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연결이 되어서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다. 대아저수지의 물이 보이는 지점이었다.

“아빠. 저기 가을이 있어요.”
“어디?”
“보세요. 곱게 물든 가을 얼굴이잖아요.”
“정말이네.”

무엇이 그렇게 성급하였을까? 나무도 나처럼 조급한 것이 분명하였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여름의 끝자락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이 들어버린 나무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파란 하늘에 곱게 치장을 한 가을 얼굴이 가슴에 쏙 들어온다.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곱게 화장을 한 가을 나무를 성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꿈을 꾸는 아름다운 소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버리고 가을과 함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을 나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의 소원대로 가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곱게 물든 나무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마음이 가을 세상으로 그득 차 있다면 가을은 이미 온 것이 아닌가.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만끽하면 된다. 생활 자체를 만족하면서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 곳에 가을이 이미 와 있었다.<춘성(春城) 정기상님은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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