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이라크파병 연장 강행하는 현정권의 두 얼굴

지난달 30일,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국방부가 보고한 ‘국군 부대의 이라크 파병연장과 임무 종결 계획 동의안’을 심의, 의결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은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정부의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1년 연장 결정에 대해 정치권이 찬반으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여론도 팽팽하게 맞서도 있다.
이라크 문제는 파병 결정에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논란을 불러왔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나 대테러 정책 등을 앞세우는 보수 진영이 일관되게 적극적인 파병을 주장한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명분이 취약하고 실리 역시 없다며 파병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 등을 내세우며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북핵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선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한미관계 최우선?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철군시기 1년 연장을 발표하면서 한미관계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됐다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앞으로의 한미관계를 위한 조치이며 이라크 정부 및 이라크 국민들의 여론, 한국기업의 이라크 진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꼽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현재 미국이 처한 입장을 외면할 수 없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치안안정화 작업에 전력을 쏟기 위해 13만여 명의 병력 수준을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2일 의회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지원 예산으로 기존 요구액보다 459억 달러가 더 늘어난 1964억 달러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지방정부 등 이라크 현지 여론도 내세우고 있다.
자이툰부대는 파병기간중 주로 기술교육과 공공기관 건설 지원,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다. 이 때문에 국내 시민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이툰부대는 현지인들에게 `구세주`로 인식되고 있다. 나우자드 하디 아르빌 주지사는 "자이툰부대는 아르빌의 일부이며, 철군한다면 쿠르드인들이 매우 애석해 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다국적군의 일원으로서 더 남아서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라크정부 또한 현지를 방문한 정부합동 임무성과평가단에게도 이와 같은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이툰부대가 주둔함으로써 한국 기업이 이라크의 재건사업에 진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유도 파병연장의 당위론으로 내세워지고 있다.
현지 기업인 신자리그룹과 국내 12개 업체 컨소시엄인 코리쿠르디 측 관계자는 "전후 재건에 한국기업들이 참여하려면 자이툰부대가 주둔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자이툰부대 주둔에 따른 지역 안정 효과를 기반으로 외국기업들이 그 득을 봤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국내 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 국방부의 주장이다.
황두열 석유공사 사장도 산업자원위 국정감사에서 “쿠르트지역 광구는 현재 계약 직전 단계까지 가 있으며, 100억 배럴 이상의 매장 잠재력이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리스크 보증능력도 없는 쿠르드 지방정부가 투자자부터 끌어모으자는 속셈으로 MOU를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은 내년까지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완전히 철군한다는 입장이고 내년 이후 추가 연장은 없다고 밝혔다. 문 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국익에 맞지 않은 부분은 미국 측에 `노(No)`, 아니라고 말하고 국익에 맞는 부분은 협조해야 할 것 같다"면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철군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파병 연장 찬성 입장에서는 정치·외교·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자이툰 부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한·미 동맹이다. 파병찬성론의 입장에서는 양국의 대통령이 바뀌는 기간 동안 미국과의 동맹을 보다 굳건히 할 필요가 있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위험한 결정

지난 10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의 형식으로 국회에 이라크 파병 연장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각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자치센터 앞에서는 파병반대국민행동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3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노 대통령의 담화에 관해 "지난 5년간 파병에 대해 거짓말로 일관해 온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할 자격이 없다"며 "도대체 누가 누구를 설득하겠다는 말이냐"고 파병연장을 규탄했다.
국민행동은 이어 "틈만 나면 `철군 계획은 변함 없다`던 노무현 정부가 그 동안 국민들을 속이고 있었다"며 "국민들을 기만하는 사기극에 더욱 분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광일 국민행동 기획위원은 "국립국어원이 신조어라고 밝힌 `놈현스럽다`는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인데, 이는 2003년 판이고 2007년 판에는 `뒤통수를 치고 사기를 잘 친다`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또 이날 정부가 꼽은 파병 이유인 한반도 평화와 안정, 이라크 재건 사업 국내 기업 진출이라는 두 가지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노 대통령은 "파병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며 “북핵문제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미공조의 유지가 긴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특히 지난 4년 간 이들 문제가 진전된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이러한 선택은 현실에 부합한 적절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국민행동은 "한반도 평화는 중요하고, 이라크의 학살과 전쟁은 괜찮다는 말인가?"라고 묻는 한편, "미국이 이라크에서 거센 저항을 받으면 받을수록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력이 약화되어 왔는데, 전쟁을 도와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겠다는 것은 궤변이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지난 5년 동안 북핵이나 북한과 관련, 위기 발생과 해소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과연 파병이 도움이 됐는지 진지하게 한 번 돌아보라"며 "미국에 대한 양보만을 강요하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좌절감만 안겨주고 있다"고 밝혔다.

`파병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이날 국민행동은 `이라크 재건사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에 관한 노 대통령의 주장 또한 어불성설임을 입증했다.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 "경제적 측면은 당초부터 파병의 목적이 아니었지만 지난해부터 우리 기업의 이라크 진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행동은 "이라크 국민들의 죽음과 고통의 대가로 탐욕을 채우겠다는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주장"이라며 "정부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경제적 파장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국방위원장조차 `석유법이 통과 안돼 진전이 없다`고 상황을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김환영 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은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에 파병을 했지만, 당시에는 정권 자체가 명분이 없는 정권이었기에 파병의 명분을 따질 겨를도 없었다"며 "백번 양보해 경제적 국익 측면에서 따져봐도 당시에는 따져볼만 했지만 현재의 이라크 전쟁은 과연 그러하냐"고 비판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라크 침공이 없었다면 살아 있을 120만명의 목숨을 생각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박정은 팀장도 "지금 이라크에 진출한 기업들의 속한 나라들 중 파병한 나라들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라"고 쏘아붙였다.

허점투성이 파병연장론
 
파병반대 단체에서는 연장 결정이 미국에 굴복하는 꼴이 되었으며 향후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 큰 대가를 치르는 쪽으로 내몰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나쁜 전례를 남긴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파병과 관련, 최근 우리 정부를 노골적으로 압박해 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가진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계속 주둔해달라"고 요청했고 워싱턴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한국군 파병 연장을 공식 요청했다. 오죽했으면 현 정권이 임기 말 궁지에 몰린 부시 행정부와의 결탁했다며 의심의 눈길을 받을까.
자이툰 부대를 완전 철군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정부측의 파병 연장론은 허점투성이다.  전쟁명분은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와해되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철군하고 있는 현 상황이 반증이다. 이라크 재건 지원사업의 국내 기업 참여를 통한 경제적 이익이 불확실함을 입증해주지 않는가. 이라크는 전후의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내전의 징후가 짙어지면서 전쟁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물론 서방 기업들 역시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이라크 파병의 근거로 삼는 전쟁 명분이 실종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는 이유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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