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이상호 기자의 삼성비자금 사건에 대한 단상

 

삼성과 정-검-언 동맹에 대해

동맹은 적을 필요로 합니다. 친목단체와 동맹이 서로 다른 이유이빈다. 동맹은 공동의 적, 공동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적 집단 대응체입니다. 삼성과 정-검-언, 그들이 각각 느끼는 최대 위협은 무엇일까요? 삼성 이건희 일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들의 금권통치에 반대하는 국민적 감시와 또한 그에 따른 처벌일 것입니다. 바로 국민의 알권리가 삼성의 적인 것입니다.

정치권에 있어서 최대 위협요소는 정치자금일 것이고, 검찰에게는 공짜 골프와 향응 그리고 역시 돈일 거고, 언론에게도 광고와 협찬, 그리고 기자들에게도 역시 돈문제일 것입니다. 삼성과 정-검-언이 느끼는 위협은 이렇게 서로 다릅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돈, 이렇게 갈리죠. 즉, 정-검-언은 자신들의 본분인 국민의 알권리를 삼성에 돈을 받고 팔아 넘긴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삼성에 의해 매수된 하수인들일 뿐, 같은 적을 상대하는 대등한 동맹관계는 절대 아닙니다. 삼성독재와 도구적 기관들.. 이 정도로 규정할 수 있겠지요. 삼성공화국에 매수된 이후, 모두가 국민의 알권리와 권익에 반하는 적이 된 것 뿐입니다.

삼성과 언론 하수인들

지난해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렸던 ‘삼성과 언론’ 토론회에서 저는 삼성이 어떻게 언론을 관리하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실태를 mbc의 유명 앵커 출신으로 현재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의 데스크를 맡고 있는 신강균 부장의 예를 들어 고발해드렸습니다. 삼성이 한 유력 언론인을 찍어 얼마나 집요하게 장학생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그 폐해가 얼마나 심대한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회사에 돌아가서 또 많이 혼났습니다. 경위서를 작성하고 또다시 징계위에 회부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대부분 선량하게 일하는 조직원들에게 누가 되는 행위를 했다며 비판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증거도 대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제 말씀드리자면, 삼성 장학생.. 정정하겠습니다. 삼성의 하수인을 도려내지 않으면 선량한 언론인 모두가 소외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당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로 신강균 부장과 MBC가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10년이 넘게 탐사취재를 해온 제가 명백한 배임행위에 대한 증거도 없이 그런 말씀을 드렸겠습니까.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저는 사측으로부터 아무런 후속 조치도 전해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시,분 단위로 X파일 취재전반에 대한 일지를 작성해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언젠가 그 일지를 통해 밝히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사측이 인식하길 바랍니다. 

흔히 지난 군부독재시설, 우리는 북한 공산당은 머리에 뿔이나고 손에는 털이 수북한줄로만 알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삼성독재 시절을 거치며, 우린 혹시 삼성의 언론계 하수인들이 눈에 썬그라스를 쓰고 늑대나 여우처럼 간교한 인물들일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아주 그럴듯하고 술잘먹고 사람좋다는 말 듣는 의리있고 화끈한, 더러 우리들중 존경을 받는 언론계 실력자들입니다. 자본의 유혹이 가장 부드러운 벨빌과 와인을 통해 오듯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형님, 동생의 손짓으로 언론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입니다.

참여정부 초반 언론사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5공 부역 언론인들에 대한 반성적 청산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언론인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한 것은, 신군부의 독재가 군화나 총이 아니라, 언론 보도를 통해 이뤄졌고 바로 언론을 통해 그 아성을 구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중-동 등 언론계 일각의 저항이 있었지만, 우리 언론과 시민산회는 그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이제 신군부의 총칼 독재보다 더 간교한 삼성독재의 언론인 매수로 국민을 위한 참언론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시민사회와 언론 스스로가 나서 삼성의 언론계 하수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반성작업에 돌입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겉으로는 존경받는 언론인 선배 연하며, 저마다 맡은 언론사 주요 포스트에서 오늘도 삼성독재의 신민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그들이 국민의 힘으로 시민적 의지로 조속히 청산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합니다. 

중앙일보와 언론의 물타기

저는 태영그룹에 의해 매수된 회사 선배에게 속아서, 원치 않는 자리에 합석을 했다가, 핸핸드백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고심 끝에 왕따가 되기로 작정하고, 핸드백을 돌려줬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제가 X파일 테잎을 입수한 사실을 알고 있던 중앙일보는 기자를 보냈습니다. 그 기자가 저희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가 아빠 친구라고 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를 사칭해 취재한 거지요. 전화를 끊으려 하자, 그 기자는 대뜸 핸드백에 돈이 들어있지 않아서 돌려준 것 아니었냐.. 이런 해괴한 질문을 하더군요. 욕을 잔뜩 해주고 끊었습니다.

중앙일보는 다시 반년 뒤, 보도가 불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X파일 내용이, 결국 방송을 타자. 이번엔 제가 공명심에 독선적으로 보도를 했다거나, 타인을 사칭해 취재를 했다거나, 정당한 취재사례비를 건넨 것 가지고, X파일을 돈을 주고 사들였다느니.. 이런 보도로 더러운 지면을 메웠습니다. 중앙일보와 언론이라는 이름, 기자라는 이름을 나눠 쓰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삼성의 언론 하수인들에 대한 조사와 반성작업이 시작되면, 중앙일보는 그야말로 몇몇 기자들을 남겨두고는, 마땅히 조선일보와 같은 반민족 신문과 함께 폐간되거나 아니면 삼성 사보로 원위치 되어야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앙일보는 그때 자신들이 봐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X파일 사태가 진행되고 삼성이 8천억원의 게임비를 내고 사기적 합의국면에 들어가자, 살짝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그러면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그간 엉터리 보도를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중앙일보는 통뼙니까? 이번에 보도하는 걸 보면, 기자가 아니라, 삼성 법무실이 기사를 쓴 준비서면 같습니다. 얼마나 뼈가 두껍길래 두 번 뼈깎을 짓을 하고 있는지 걱정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비단 중앙일보 만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대동소이합니다. x파일 때도 그랬습니다. 그저 드러난 얘기들만 수세적으로 보도합니다. 경마 중계하듯 한발 늦게 쫓아가면서 조그맣게 기사를 씁니다. 그러다 말이 멈추면 중계도 멈춥니다. 아무일 없었다는듯 다른 얘기를 하는거지요. 이번에도 하나도 달라진게 없습니다. 신정아씨 사건 때는 누가 자료를 줘서 기사를 썼습니까? 발품을 팔아 주변을 뒤져서 나온거 아닙니까. 할줄 모르면 모르겠는데, 알면서도 안하면 참 화가 납니다. 김용철 변호사나, 사제단 옆구리만 계속 쑤시면서 입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삼성의 오랜 불법적 관행과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의미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기획하고 발굴해야 합니다. 그리고 ‘삼성=이건희=국가경제’, 라는 잘못된 등식, 오랜 시간 돈으로 구축한 저들의 등식을 깨야합니다. ‘이건희 체제 극복=삼성의 회생=국가경제발전=우리의 행복’이라는 진실을 국민들에게 전달해야합니다. 아니면, 의심받게 됩니다. 국민들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김용철은 내부고발자다

끝으로 국민 여러분들께 한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말은 신뢰가 가는데, 왜 지금 그가 그런 고백을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일부 국민들은 삼성측의 주장대로 그에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거 아니냐? 이렇게 묻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히 아는 게 있습니다. 바로 내부고발 이후에 오는 것들과 내부고발자가 어떤 정신상태를 겪게 되는지입니다. 사실 저는 왕따 전문기자입니다. 피디들 금품수수 관행을 고발해서 MBC 간부들이 무더기로 구속된 적이 있습니다. 타임지 기자가 너같은 놈 첨 봤다며 절 만나러 오더군요. 연예계 노예계약도 고발해서 연예인들이 45일 동안 MBC에 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회사에서 역적으로 찍힌 적도 있었습니다. 쥐구멍에라도 숨어 있고 싶었습니다. 회사내 광고비리를 내부고발해 간부가 해직된 적도 있었구요. 말씀드렸지만, 핸드백 사건도 고발했고, 또 사장부터 국장까지 모두가 반대했던 X파일을 보도하자고 버텼다가, 또 왕따를 당했습니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다면 내부고발을 할 수 없습니다. 사심이 있는 사람중 왕따를 자초하게될 내부고발의 길을 택할 정신나간 사람은 분명 없을 것입니다. 내부고발자 열명중 7명이 자살충동에 빠진다고 합니다. 저도 십분 이해합니다. 이렇게 튼튼해 보이는 저 역시도 한때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게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들고, 그 때마다 매번 식은 땀이 나고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합니다. 내부고발은 밧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번지점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익을 위한 개인의 자살인 것입니다. 다시 이 줄이 나를 제자리에 데려다줄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지난 13일 도로확장 공사 과정에서 50억원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내부고발했다가 해직된 분을 만났습니다. 손을 잡았더니 차가운 손에 뜨거운 땀이 그득했습니다. 정신에서 시작해, 몸까지 무너지고 있었던 겁니다. 죽게 될줄도 모르는 일. 사사로운 이해 따위로 행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내부고발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님에게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용기 있는 일을 했고, 당신의 번지 점프는 성공적이었다. 당신에 대한 믿음의 줄이, 당신을 절벽 위에 다시 안전하게 세워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토록 원했던, 자식들로부터의 존경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양심고백을 자신의 유서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3년전 미국으로 X파일일 테잎을 가지러 갈 때 같은 의미의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김 변호사님의 양심선언을 지지하고 그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의미에서 당시 제가 썼두었던 글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출발 이전, 저의 출장계획은 MBC 사내 삼성 하수인에 의해 디테일한 동선까지 모두 정보보고된 상태였습니다. 

<이번 출장은 자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반하는 일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향후 기자의 숙명은 자본을 경계하는 일이다. 기자의 본분은 시장을 감시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은 기자가 자본으로부터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자본과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라면 젖어서는 안될 일이다. 자본의 공세에 한번 젖게되면, 해일에 몰디브가 잠기듯 한순간에 끝난다. 자본에 젖은 기자는 앞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기자상을 자임할 수 없는 것이다. 시장 안에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시장을 넘어선 통찰과 감시를 수행하기 곤란하다는 얘기다.

오늘 떠나면 나는 내년 초에 돌아올 계획이다. 나의 출장계획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경우,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리고 각오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기자는 어쩌면 목숨 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할 수도 있다. 불명예와 누명.. 자본은 자기 보호를 위해 그 보다 더한 오명을 기자에게 씌우려할 것이다. 두려운 가운데 형용할 수 없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은 이번 출장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분기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대의 좌판 위로 주사위는 던져졌고, 활은 시위를 떠났다. 그저 담대하게 운명의 길을 걸어가리라.> 

<이 글은 14일 오전 외신기자클럽에서 있었던, 기자협회+피디연합회+언론노조+언론연대 등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 `삼성과 정-검-언 동맹을 바로 본다`에서 이상호 기자가 패널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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