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느껴본 한국사회에 있어 '노인의 성'

한국 사회에서 노인문제의 심각성은 자주 회자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동물이라지만 노인의 경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제도적인 혜택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중성으로 여겨진 노인에 대한 인식전환, 바야흐로 노령화시대가 도래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오는 2026년에 65세 이상의 노인이 인구의 5분의 1에 미치게 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이에 정부는 노후보장을 위해 노인수발보장제도 도입, 노인요양보호시설 강화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 사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노인의 성`에 관한 문제이다. 

통계에 따르면 남자 노인의 89.4%, 여자 노인의 30.9%가 정상적 성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한 TV프로그램 제작진이 만난 7∼80대 노인들은 한 달에 2번 정도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갖고 있으며,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고 밝혔다. 최모(64세) 씨는 "남성의 경우 지푸라기 잡을 힘만 있어도 하고 싶은 게 바로 성행위"라며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바로 성욕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종묘공원이 성해방구?

상황이 이렇지만 대부분 노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그래서 서울에서 외로운 노인들의 아지트는 탑골공원과 종묘를 찾았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모(73) 씨는 "절친한 관계가 아니면 함께 있어도 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며 "농담은 할 수 있어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꺼린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70대 중반의 강모 씨는 "이 나이에 성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추한 것 같고 스스로 부끄럽다"며 "조용히 곱게 늙어 죽는 것이 속 편하다"고 전했다. 그렇다. 공원에 모인 대부분의 노인들은 성에 대해서는 쉬쉬하며 그들 나름의 소통방식으로 그들만의 리그전을 치르고 있다. 사회적 시선 즉 보이지 않는 손 탓인지, 나이 들고 외로움을 달래기엔 그저 말동무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대부분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건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그들의 생은 정오를 넘어 황혼에 이르렀으나 그러나 몸과 마음은 아직은 가을인가. 유난히 하늘이 높은 탑골공원 정좌아래, 그래서인지 틈새시장공략 일명 박카스아줌마들의 위세는 그칠 줄을 모른다. 박카스아줌마란 이른바 노인들에게 매춘행각을 벌이는 이들을 말한다. 탑골공원은 하나의 작은 도시인 것이다. 대도시의 대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종묘공원만의 시스템을 담고 있는 하나의 작은 사회인 것이다.         

취재 도중 성남에서 올라왔다는 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른바 박카스아줌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재미 삼아 놀러온 것이다. 그는 "많은 노인들이 탑골공원에 가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고 해서 한번 올라와봤다"며 "이 나이에 젊은 사람들이 가는 사창가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말했다. 수원에서 올라왔다는 또 다른 노인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사실상 노인들이 설 자리는 없다"며 "노인들을 너무 홀대하는 사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천원씩 받고 막 이래"

종묘공원은 탑골공원보다 정이 철철 넘치는 곳이다.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도 불구하고 종묘는 붐볐다. 종종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15년 동안 일주일에 4번씩 종묘를 찾는다는 김모(75세)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5월에 구청에서 나와서 싹 청소했어"라며 "이제 박카스아줌마나 그런 부류들 없이 깨끗해. 500원씩 받고 파는 사람도 있었는데 1000원씩도 받고 막 이랬지"라고 얘기했다. 김씨는 기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귀찮은 듯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했다. 양해를 구하자 "저쪽에 누워 자는 사람한테 막걸리값 2000원만 주고 와. 그럼 인터뷰도 하고 노래도 불러줄게" 라며 반으름장을 놓았다. 구석 모퉁이에서 누워서 자고 있는 늙은 걸인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결국 늙은 걸인의 손에 2000원을 쥐어주었다. 하지만 김씨는 흥정에 재미 붙인 듯 또 다시 기자에게 농담식으로 또다른 조건을 요구했다. "막걸리 사줘!"

김씨는 "예전에는 3명중 1명이 여자들이었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며 "할머니들은 따로 모여서 노는 곳이 있어"라고 얘기했다. 특이하게도 김씨는 기타를 들고 다녔는데 "밤에는 업소에서 연주하고 낮에는 심심하면 여기 나와서 공짜로 연주해 얼마나 건전하냐"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잠시뒤 김씨는 즉석에서 `목포의 눈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종로 2가에서 5가까지 공짜연주를 하고 다니고 있단다. 물론 어르신들 사이에선 대단한 유명인사다.

종묘공원 한쪽에선 많은 이들이 장기와 바둑 등을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기를 두고 있던 정모(72세) 씨는 "예전엔 질서가 없었는데 요즘 종묘에는 술 마시고 깽판치는 사람도 없어"라고 말했다.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과 어떻게 친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오고가다 만난 거지 뭐.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끼리 인사하고 지나치다 보면 금새 친해져" 라고 답했다. 그리고 정씨 또한 요즘 종묘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완전무결하지는 못한 듯 그늘진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되었다.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박카스아줌마에 관한 물음에 사실 대부분의 노인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연애라면 모를까, 어차피 그들 역시 박카스아줌마란 올바른 소통경로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노인들도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보게 젊은이. 그런 얘기 말고 딴 얘기하지"라는 말에선 애써 태연한 척하는 모습이 비쳤지만 자신들이 처한 외롭고 고독한 상황들에 대한 비애의 조각들이 묻어 나왔다.
"이 나이에 무슨 재미를 찾겠어.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바둑이나 장기, 살아온 얘기들 하면서 맞장구 치고 웃는 거지. 누가 돈 좀 꺼내면 때론 막걸리 한잔하고 말이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부분일지라도 이제 작은 소통 그 자체가 어르신들에겐 삶의 기적과 같이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얘기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랑 어울리려 하겠어? 그나마 이런 장소가 있어 우리끼리 여기서 놀고 얘기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거지."     
    
더 이상 쉬쉬해선 안돼

노년층의 성욕구 해소 문제가 더 이상 쉬쉬해야 하는 일만은 아니다. 노인들의 성매매는 성병이나 에이즈에 감염되는 등 말년을 비극적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는 그들의 성생활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례로 2002년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용감한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일흔을 넘긴 실제 두 노인커플이 출연하여 만남을 출발로 섹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아무런 미학적 장치나 장애 없이 날 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펼쳐 놓는다. 사회적 인식이나 상식선에서 영화를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보는 내내 불편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영화관계자들은 "그 불편함은 앞으로 우리가 떠안고 극복해야할 몫이다"고 전한다. 문제는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난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었다.

영화를 봤다는 최모씨는 작품을 노인의 근원적 고독에 빗대었다. 최씨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는 노인들의 외로움의 근원은 그들의 본능을 억제시키는 조장된 사회적 분위기다"며 "우리들만의 영역에 껴주지도 않을 가면 최소한, 자유롭게 연애하는 그들의 광경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죽기 직전까지 유효하다. 이 와중에 성은 혹자 말대로 삶의 근원적 동력인 셈이다. 그러나 노인의 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억압적이기보다는 폭압적이다. 이는 유교사회의 전통 속에서 한국사회가 지닌 노인에 대한 전통관과 위배된다는 지적에 기인한다. 노인의 성은 그 자체로 주책이요, 추한 것으로 매도되고 있으며 노인 스스로도 성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며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회가 진정 열린사회라면 교육에서나 공론장 문화에서 기존의 노인에 대한 선입견을 주지시기키 보다는 보다 합리적인 토대와 방안을 모색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무언의 폭력이 된다. 네덜란드 속담처럼 `더러운 사랑이란 없고 깨끗한 석탄 푸대란 없다.` 파스칼의 말대로, `사랑에는 연령대가 없고 그것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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