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순간 지낸 아이들, 사랑 먹고 자라지요"
"힘든 순간 지낸 아이들, 사랑 먹고 자라지요"
  • 승인 2007.12.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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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추운 겨울 희망은 있다> 밤골아이네 공부방

<위클리서울>은 지난 몇 주 동안 `추운 겨울이 두려운 사람들`이라는 연속 기획으로 취재에 나섰다. 주 대상이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이다 보니 그들의 `불투명한 앞날`을 `희망` 해왔다. 국가 정책의 문제점을 들추어낸 면도 없잖아 있어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에 급급했다. 이번 호의 취재대상은 비록 그 선상에 위치해 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라는 점을 감안, 기사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한다. 어린이 공부방, `밤골아이네`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 취재요청을 했을 때 김희경(유리안나 수녀) 원장은 완강히 거부했다. 기존의 언론들이 희망적인 기사를 쓸 것이라는 약속으로 일관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함` 이었다는 전언이다. 공부방 아이들 역시 기사를 보고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역차별이라는 부정적 요소가 작용했던 탓이다. 이와 관련 김희경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매스컴에서 저소득층 지역의 공부방을 소개한다며 연일 지치고 힘든 안타까운 모습들만을 강조해 보도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것은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이에요. 공부방에 다니는 모든 친구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희망을 찾고 하루 하루를 즐겁게 맞이하고 보냈으면 합니다." 



현재 전국의 공부방은 1200여곳. 이중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곳은 72곳, 서울지역의 가톨릭 공부방은 19곳이다. 공부방이 지역아동센터로 바뀌면서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조건`이 까다롭고 운영은 여전히 힘겹다.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비싼 교육비를 지부하며 두 세 개의 학원을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 틈 속에 상대적으로 빈곤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하고 감싸안아 줄 수 있는 교육복지관인 공부방은 질과 수준을 떠나 그 수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때문에 운 좋게 공부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몇몇을 제외한 영세지역의 아이들은 여전히 무관심과 사회적 냉대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

84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영세 맞벌이 부부의 탁아시설로 시작된 `밤골아이네` 공부방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상황적 요구에 따라 공부방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당시 재정적 어려움을 포함, 운영상의 난항을 겪어오던 중 서울 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의 요청으로 지난 95년부터 그리스도의 성혈흠숭 수녀회에서 공부방 운영을 맡게 되었다.

밤골아이네는 5명의 담당 실무교사와 50명의 중고등부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져 있다. 김희경 원장은 아이들의 행동 하나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인사 잘 하기, 저학년 챙기기, 약속이나 예의 지키기, 옷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기 등… 아이들에게 맘껏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대하지만 맞벌이 가정의 아이가 대다수인 만큼 비어있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부족했던 가정교육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대기자가 무려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 많은 밤골아이네. 등록된 아이들은 초등학생(75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함)에서 고등학생까지 120여명으로 규모가 꽤 크다. 공부방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특별프로그램(초등부는 연극, 놀이, 견학, 영어, 중고등부는 스카우트, 리더십 향상 등)으로 수업이 이뤄져 부모님들이 더 좋아한다. 게다가 균형잡힌 영양공급이 필요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영양식단으로 이루어진 급식까지 제공하는 만큼 이곳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또 예비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1:1멘토링 영어 수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사회나 부모가 믿는 만큼 신바람 나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평범한 진리가 밤골아이네 공부방에 가득하다.



공부방의 아이들과 함께 선생 모두 별명을 지니고 있다. 달님, 나비, 진달래, 별님, 풀잎, 구름, 해바라기, 목련, 인디안, 초코… 라는 아이들의 별명을 비롯해 체리, 수박, 초록, 딸기 이모들 삼촌들, 실무교사, 자원봉사자들이 한 가족처럼 아이들이 지어 준 예쁜 이름들을 갖고 지낸다. 희망과 기쁨이 담긴 이름이 마음에 든다. 첫인상의 이미지로 이름을 붙여주는데 그 이름에는 아이들의 동심과 정겨움, 그리고 창의력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모 오늘 저 100점 받았어요!" 올해 2학년인 영태가 공부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 원장은 "우와 잘했네. 우리 영태. 무슨 시험인데?"라고 응수한다. "받아쓰기 쪽지시험!"

학교를 마치고 일등으로 공부방에 오는 시합을 했는지, 허겁지겁 공부방에 도착했다. 함께 온 녀석은 100점이 아닌지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딴청을 부린다. 영태는 입 부위와 옷에 음식물 흔적을 묻히고 있다. 방금 점심식사를 마치고 온 것 같다. 공부방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기자가 "영태야 사진 한번 찍자"라고 말하니 "초상권 침해"라며 인상을 구긴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사진 찍는 걸 반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생각과 달리 왜곡해서 보도되는 것을 아이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열흘 전쯤 공부방도 새내기 환영식을 갖는다. 작년에 공부방에 들어와 콧물 누렇게 흘리며, 이모 선생님 말씀엔 아랑곳하지 않고, 책상 밑에 들어가 애먹이던 영태. 작년에 비해 몸도 마음도 제법 많이 큰 그런 영태의 모습에 선생님들은 뿌듯해 한다. 하루에도 수를 셀 수 없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잔소리로 자란다는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올해 수능을 마치고 일찍 공부방으로 귀가(?)한 고3 셋. 그 중 한 명은 이미 수시에 합격한 상태. 나머지 둘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단다.

"저는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할 거에요. 공부방에서 깨달은 게 많거든요. 이 다음에 원장님 같은 훌륭한 사람 되려고요."



김 원장과 학생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한편에서는 코 흘리던 꼬맹이가 어느덧 멋지고 예쁜 청년이 되어 김 원장을 내려다보며 어리광을 부린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과 생각을 서로 나누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 원장은 "아이를 낳아보진 못했지만 부모들이 자녀에게 품는 대견하고 든든한 느낌, 표현하지 못하는 뭉클함과도 같은 느낌들도 가져요"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이들과의 만남이 늘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사정과 사연이 있는 가정에서 가정형편이 좋지 않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쁨도 받아 본 녀석이 받아 본다고` 이상을 갖고 의미 부여를 통해 아이들의 버릇없음과 일탈과 게으름 등을 지켜보며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순간도 많다.

"힘든 순간을 지내고 시간이 훌쩍 지나 아이들이 사랑을 먹고 자라지요."

밤골아이네 출신 대학생 박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부모의 경제력과 자식의 성적이 비례해요. 그런 면에서 밤골아이네 공부방 아이들의 평균성적이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과 교양이 부재하는 건 아니에요. 차별화 할 이유가 없죠. 부모의 경제력으로 아이들을 평가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그렇다. 아이들은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하고,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그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제 꿈은 의사예요!","저는 박지성 형아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래요!","저는 첩보원이 될래요. 얍얍." 꿈도 가지각색이다. 
한 아이는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한다. 눈이 오면 눈싸움할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은 기자에게 마치 이렇게 합창하는 것 같다.

"번지수가 틀렸네요.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도 않고 겨울이 두렵지도 않아요!"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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