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동대문운동장 철거 작업에 살 길 없는 노점상

지난달 18일,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철거 작업에 착수했다.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주변 노점상인들은 `대책없는` 서울시의 철거작업에 반발하고 나섰다. 상인들의 반발에 공사는 잠시 중단된 상태다. 노점도 리모델링해서 공원에 걸맞는 환경을 유지할 것이니 노점 운영을 보장해달라는 게 상인들의 입장이다. 운동장 건물내 합법적 점포 몇 개는 벌써 문 닫았다. 점포 몇몇이 서울시와 합의하고 떠난 걸로 미루어 보면 공사는 조만간 재개된다. 
 



10년 전에 지역장을 맡기도 했던 이병수 서울노점상연합회 회장은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철거 방침에 반대해 지난 12일, 다시 지역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바로 전날인 18일, 서울시의 대책없는 운동장 철거에 강력히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운동장 주변 250여명의 상인들은 철거작업중인 인부들과 부닥쳤다. 운동장 폐쇄작업이 노점상 주변에 펜스를 쳐야하는 작업과 동반되어 이뤄지기 때문에 시 직원과 노점상들과의 직접적인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폭풍전야, 언제 다시 밀려올지 모를 공권력

이 회장은 "펜스를 치고 쫓아내지 않으면 시위 않는다. 조감도도 이미 앞으로 리모델링하는 운동장에 맞춰서 아름답게 그려놨다"고 얘기했다. 공원과 시의 정책에 부흥하는 장사, 상생원리다. 이 회장은 또 "정 안되면 대체부지라도 마련해달라"면서 "종합경기장 노점상들처럼 대체 부지를 마련해주면 이렇게 마찰 할 일이 없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에 따르면 동대문운동장 주변 노점은 평균 20년 넘게 장사한 상인들의 일터다. 이 회장은 "대책없이 상인들을 거리로 내모는 서울시의 정책이 유감스럽다"면서 "서울시가 목적하는 풍경에, 머리 좀 굴려서 노점상들의 생계도 보장하는 차원에서 서로 합의한다면, 좋은 그림도 나올 듯 싶은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장은 "이게 다 없는 사람의 설움"이라며 "물리적으로 저지, 죽기살기로 버티겠다"고 전했다.



"여기 사람들 다 순박하다. 우린 싸울 생각 없다. 정부가 생존권만 보장해준다면…. 왜냐. 우린 이 장사가 전부다.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대책 없이 불도저가 쳐들어오면 그땐 자신을 비롯해 상인들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 길이 없는 현실, 투쟁이 희망인 것이다. 


#이병수 회장

대화로 풀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당연히 대화로 풀고 싶다"면서 "우리가 제시한 조감도와 시청측의 조감도를 테이블에서 맞대고 협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18일 협상하기 위해 시청직원이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동대문운동장은 현재 폭풍전야다.  

막걸리 한잔 하슈, 커피 한잔 하슈

이 회장은 상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순찰을 돌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상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 회장은 일단은 한숨이 놓인 것인지, 이날은 시청직원이 오지 않는 탓인지, 기자를 데리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포장마차 하세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 "난 청바지 장수요"하고 응수한다.



"어이 김 사장! 여기 막걸리 한 사발 주쇼. 그건 그렇고…. 아까 뭐라고 했죠? 아… 난 20년 넘게 청바지만 팔았지요. 지금쯤 몇 개나 팔렸을려나. 구둣가게 동료가 대신 팔아주고 있을 것이요. 술이나 한잔 받지요, 기자 양반."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며 그들의 애환과 함께 한다. 테이블에 앉아 여기 저기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이 회장은 "사진 왠만하면 찍지 말지. 좋은 건물들이랑 비교되잖수. 그럼 국민들도 기사에 나온 사진 보고 상대적으로 덜 깨끗해 보이는 노점을 무시할 수도 있잖수"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식사중인 여성 상인들은 사진기를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어머 찍지 마세요. 어쩜 좋아."

이 회장은 "내일 신문에 대문짝하게 나올게다. 당신들 밥먹는 게 애처로와 보여서 국민들도 우리 편이 되지 않을까 하하" 하고 크게 웃다가도, 씁쓸하게 미소짓는 표정으로 여운을 남긴다. 기자 한마디 덧붙일 수 밖에 없는 상황. "전노련(전국노점상총연합회)을 통해 왔어요. 기사 이상하게 안쓸테니 걱정마세요. 그나저나 전노련은 어떤 식으로 도와주나요?"



그러고 보니 이 회장은 전노련 창설 멤버였다. "그래요? 전 전노련 창립 멤버예요. 요즘은 장사에만 신경쓰지만…. 20년 넘었죠. 거기 김 아무개 박 아무개 다 내 동료들이지. 근데 말이죠. 전노련에만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에요. 우리가 뭔가를 해야지 그들도 도와주는 거지, 우리가 가만 있는데 누가 도와주겠나요.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비워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청바지 하나에 8000원, 손님은 그것도 깎으려 한다. 이 회장은 손님에게 "저기 건너편에는 이런 거 18만원씩 한다니깐. 같은 바지라도 여긴 싸게 파는 거지" 하고 으름장을 놓는다. 건너편에는 운동장 상가내 점포인 나이키 등의 명품 가게가 줄지어 서 있다.



동대문운동장 인근 노점은 250개 정도, 상인들 수는 500여명이다. 이 회장에 따르면 요즘 노점의 7∼80%는 장사가 안된단다. 옆 구둣가게 아저씨는 이에 이렇게 응수한다. "이제 잘 되겠지. 이명박씨가 경제 살려준댔잖아. 여기도 이제 장사 잘 될거야." "정말요?"하고 되묻자 구둣가게 아저씨는 "대통령은 하늘의 운을 타고 난거 아니겠수. 대세에 따라 나도 이씨 뽑았수"하고 대선 결과에 흡족해 한다. 

누구나 불법적 망에 걸려있지 않는가

동대문운동장역을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대통령후보 사진들처럼, 운동장 리모델링 조망도가 공약처럼 붙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그림 좋다`고 말하겠지만, 노점상인들 입장은 어떨까. 벽보를 떼고싶은 심정일 거다. 사람들은 그 이면에 노점상들의 불안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자는 우리 국민들을 믿는다. 서울시청의 대책 없는 정책의 내막을 알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 정책에 조소를 던진다는 것을….



어떤 이는 노점을 두고 "불법이니 당연히 사라져도 할 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이 사회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동대문이나 여타 노점상에서 구매한 전력을 가지고 있을 거다. 한번씩 거쳤을 거다. 수년, 많게는 수십년을 노점상 문화를 접한 사람들, 그것 또한 불법을 용인했던 구매욕 아니었겠나 싶다. 파는건 불법이며 그걸 사는 건 불법이 아니었다는 억지인가.


모두 다 책임이 있다. 이제 와서 내 일이 아니라고 뒤돌아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꾸로 말하면 불법으로 구매하는 대부분의 국민이 있으니 장사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국가의 중책을 맞고 있는 정치인들조차 정략적 구매를 제외하고서도 오고 가는 길, 한 두 번씩은 불법이라고 부르는 노점상에서 `막걸리 한 사발씩` 했을 거 아닌가. 이로 미루어 비단 상인들만을 불법이라고 몰아세울 수 없는 것이다. 암담한 동대문운동장의 겨울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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