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사칭 천태백태

국정원 직원을 사칭한 범죄가 지난해에도 기승을 부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서대문 경찰서는 국정원 직원이라며 직장 상사를 속이고 국가사업을 알선해 주겠다며 3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P씨를 구속했다.
인천공항경찰대도 국정원 직원이라며 속인 뒤 항공사 승무원들로부터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H씨를 구속한 바 있다.
국정원의 한 직원은 "아직도 이런 사기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가족들에게도 신분을 말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밝힌 주요 사칭 유형을 살펴봤다.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고하는 곳이 국정원이다.
하지만 이제는 국정원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을 보면 먼저 `의혹의 시선`을 던져야 할 지도 모른다. 국정원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사칭 사례는 2004년 17건에서 2005년에는 45건, 2006년에는 48건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2007년에도 10월까지만 43건이 발생했다.
국정원이 발표한 직원 사칭 범죄 유형에 따르면 관련 주요 사기 수법은 5가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비밀사업` 이라든지 `비자금 관리` 등을 운운하는 것이다. 비공개 국가 차원의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고수익을 조건으로 투자를 꼬시는 유형이다.
L씨(여)는 평소 국정원이라고 속이며 "국정원이 관리하는 어음을 할인하는데 투자하면 큰 돈이 된다"고 친구 등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이 사이 챙긴 돈만 6억여원에 달한다. L씨는 지난 2월 경찰에 구속됐다.

결혼 전제 거액 요구

두 번째 유형은 `국정원 직원`이라고 속여 이성의 환심을 산 뒤 결혼을 전제로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다.
P씨는 2001년 소개로 만난 L씨에게 국정원 직원이라며 결혼을 약속했다. 그는 L씨에게 "대북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며 1억2천여만원을 받고 달아났다.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들은 개인적인 이익 추구를 위해 신분을 노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취업 알선, 민원 조기 해결, 각종 사업 인허가 및 사업자 선정 등에 있어 편의를 봐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다.
P씨는 지난해 초 위조한 국정원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며 K씨 등 3명에게 취업시켜주겠다는 이유로 모두 5천2백만원을 가로챘다 적발됐다.
정보기관원임을 내세워 협박이나 폭행을 휘두르거나 빚을 갚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M씨는 2005년 말 모 업체 주식 경영권을 놓고 법적 다툼던 이모씨에게 찾아가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며 1억2천여만원을 받았다가 검찰에 구속됐다.

때론 `정치권`과 결탁

다섯 번째 유형은 `국정원 사칭범`이 정치권과 결탁을 시도하는 경우다.
L씨는 2006년 6월 주민 모임에서 만난 시장 선거 출마자에게 국정원 간부라고 속이고 경쟁자의 출마를 막아주겠다며 과시하고 다니다 국정원에 신고됐다.
국정원은 이 같은 사회 풍토와 관련 "국정원 직원은 공무원으로서 정치 활동이 일절 금지돼 있고 민원 청탁도 받거나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고 경종을 알렸다. 지난해 말 만난 국정원 관계자는 "평상시도 그렇지만 대선 시기나 총선을 앞두고는 특히 입조심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직원 사칭, 사기 범인들에 대해 "대부분 가짜 신분증과 명함을 사용하고 전화 발신자 표시에 `국가정보원`이라고 찍는 등 과시 정도가 심하다"면서 "일부는 사무실까지 임대해 사기에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가짜 신분이 드러날 경우를 대비, `국정원에서도 모르는 비밀, 특수요원` 이라고 둘러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국정원은 이처럼 직원 사칭이 의심되거나 피해를 당한 경우 국정원으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오진석 기자 ojs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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