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경악스런 '외교통일부' 안건, 보수언론도 '당혹'

지난 16일 발표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통일부 외교통상부 흡수 안건이 사실상 `통일부 폐지`라는 결과로 해석돼 각계 각층에서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일부 보수언론조차도 사설을 통해 "좀 더 고민하라"며 질책하기도 했다.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은 헌법 정신과 남북기본합의서에 위배된다는 사실도 부각됐다. 이런 가운데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한나라당은 강경 기조이며 이명박 당선자는 "통일부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외교부가 통일부와 합쳤다"고 우기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정치적 `협상설`도 불거져 인수위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헌법 정신과 남북기본합의서에 위배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일문제를 외교의 한 부분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남북문제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변질되어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설득력 없는 `통일부 폐지안`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관계연구실장은 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부와 외교통상부를 통합했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해명에 "설득력이 약하다"고 잘라 말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간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실장은 "남북한간의 관계가 특수 관계인만큼 특수관계를 다루는 통일부 업무와 일반적인 국가간 관계를 다루는 외교통상부 업무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통상부에서는 국가 통합의 문제까지 다루지 않지만, 통일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남북한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합 문제를 다루고 준비해야 한다"며 "통일부가 대상으로 하는 국가는 북한 1개 국가로 외교통상부가 다루는 국가와 수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다루는 분야는 훨씬 넓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정 실장은 "그런데 통일부에서 경제와 사회문화 기능을 떼어내 다른 부서로 이관하게 되면 통일을 종합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부서가 사라지게 된다"며 "통일부와 외교통상부를 통합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평화연구센터 서보혁 연구위원도 외교부와 통일부는 엄연히 다른 성격을 지닌 부서라며 "통일부는 누구나 인정했듯 특수한 영역이므로 존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위원은 "노무현 정권의 정책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은 어이가 없는 결과"라고 비난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는 건지 심히 우려된다"며 "논박할 가치도 없겠지만 말문도 막힌 상태"라고 성토했다. 서 위원은 "한마디로 통일철학이나 국정운영 철학이 없는 정권"이라며 "당장 눈에 보이는 양적 결과만 바라보는, 순박한 실용주의 사고"라고 꼬집었다.

북에 보내는 위험천만한 메시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은 "한마디로 당선자의 입장에서 지향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조 실장은 "이명박 정권은 `통일부`라는 상징성을 와해시킴으로써 거꾸로 `통일부 부재`라는, 기존 정권과 다르다는 그들 나름의 논리로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했다"며 "이는 북을 겨냥한 메시지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 통일부의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저의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개선한다는 약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공약에서 건질 것은 비핵화 뿐이라는 결론이다. 조 실장은 향후 5년 동안 오로지 비핵화에 모든 부분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이 점 또한 일관될 수 없는 정책의 부실성 때문에 어긋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평화네트워크 김욱식 대표도 "이 결정안은 북에게 잘못된 메시지로 전달 될 우려가 있다"고 입을 열었다. 신뢰구축과 전략적 구축 양자 다 부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명박 정권은 `통미봉북`을 지향, 앞으로 어떤 사태를 몰고 올지 모를 일"이라고 우려했다.

외교통일부? 국제사회 웃음거리 전락할 것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 결정안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교수는 "남북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도출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를테면 외교부는 한·미를 다룬다고 볼 때, 통일부는 남·북 문제를 다룬다"며 "만약 `외교통일부`라는 성격으로 승인될 경우 특수한 한국적 상황상 `외교력`, `대북 협상력` 양자 모두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 실장의 견해와 뜻을 같이 했다. 미국과 협상 와중에도 북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북한과 협상 와중에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다각적인 설명이다.
김 교수는 새롭게 선보일 `외교통일부`는 북한의 외교부·통전부에 상응하는 외교적 형식과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대북관계를 떠나 앞서 지적한 바를 넘어서 외교력 전반에 문제가 생긴다"고 분석하면서 "외교통일부가 되는 순간 한국의 외교력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또 통일부 존립의 중요성에 관해 독일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독일은 통일이 되고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그 이유는 통일부에 해당하는 `내독관계성`을 통일이 되자마자 폐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런 측면에서 독일은 내독관계성을 통일 이후에도 당분간 존속시키지 못한 점을 후회했다"면서 "남북이 통일이 되더라도 통일부는 당분간 존재해야할 중요한 기구"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자협회 김경호 회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6일 확정 발표한 통일부 폐지안이 현실화되면 평화통일의 노력의 상징인 통일부가 39년만에 사라지게 된다"며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은 남북관계를 외교정책의 하위 범주로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통일문제를 정치 협상물로 전락시키다니

일부 전문가들은 "결국 통일부는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판의 노름`이라는 시각에서다. 인수위 박형준 기획조정분과 위원은 통일부 폐지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협상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해 "정부조직개편이 정치적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박재완 정부개혁·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팀장도 "국회 협상용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은 향후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때 대통합민주신당 등 구 여권에 가장 큰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4ㆍ9 총선에도 직간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원내 통과가 목표지만 정치는 타협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둔 대목만 보더라도 `협상론`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미 통합신당은 반응이 왔다. "개편안의 방향은 잘 잡았다"고 평가를 수정했다. 하지만 신당은 통일부 회생만큼은 관철시킬 태세다. 통일부 폐지는 반대여론이 크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국회 처리과정에서 존폐여부가 가려질지라도 집권을 앞둔 세력이 민족적 숙원인 통일 문제를 협상의 대상물로 전락시킨 점은 민족적 수치"라고 입을 모았고 "남북관계는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북을 향한 위험한 외교술의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작가회의는 "분단국가에서 통일을 관리하는 정부부처를 폐지한다는 것은 곧 통일을 민족의 삶과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그저 정략적 판단의 잣대로만 활용하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명박 정권이 분단체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개발독재형의 기득권자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한국작가회의는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서 통일부를 폐지, 북을 향한 외교술을 택하는 순간 세련된 외교술은 남게 될지 몰라도 거꾸로 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포기한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도 했다. 남북관계가 핵실험 이상으로 긴장되고 안보에 위협상황이 발생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포기와 그로 인한 증시폭락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통일부, 기존 업무 차질 없이 진행중

한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통폐합 방안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기분"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통일부의 폐지로 미래의 남북관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전했다. 그는 또 "현 상황은 남북간 화해, 협력을 여는 초기단계이며, 7년만에 정상회담도 열렸고 핵문제 해결과정도 어렵게 진행되는 상황"이라며 "남북관계를 진행하고 관리하는 책임 있는 부서의 폐지는 타당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정황상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됐던 통일부 분위기는 의외로 침착했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인수위의 결정을 떠나 남북 문제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고 얘기했다. 그는 "때문에 기존 계획했던 업무들 모두 차질 없이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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