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고유가시대 소비자 고통 불구 정유사들만 횡재

국내 정유사들이 지난해 영업이익을 1조원씩 거뒀으나 내색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유사들은 지난해 가격담합이 적발된데 이어 "고유가에 연동해 석유제품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곱지않은 시선 때문이다.
특히 정유사 `빅3 업체` 중 SK에너지와 에쓰오일이 비슷한 시점에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빚고 있어 소비자들은 외면한 채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영업이익 최대 달성, 자랑보다 해명 적극적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한 정유사들은 "이익의 상당 부분은 수출로 올린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여전히 이해의 간극은 커 보인다.
지난달 25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는 지난해 매출 27조7919억원에 영업이익은 1조4844억원을 올렸다. 2006년에 비해 영업이익이 27%나 늘었다.
GS칼텍스도 영업이익이 50.5%나 늘어난 1조87억원으로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에쓰오일도 영업이익이 17.6% 증가해 3년 만에 1조원대를 회복, 3사 모두 `영업이익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정유사들은 자랑을 앞세우기에는 소비자의 차가운 눈초리가 신경쓰이는 상태다.
SK에너지의 경우 석유사업이 매출 18조4934원, 영업이익 6150억원으로 각각 11.1%, 87.4% 늘었다. 이 가운데 석유사업 수출액은 8조937억원, 내수가 약 10조4000억원을 차지한다.
정유사들이 "내수로 올린 영업이익 비중은 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며 수치 공개를 않고 있는 것도 소비자의 의심을 사는 부분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지난해 수출액이 전체 매출의 54.3%를 차지해 내수를 앞질렀다"며 "내수 이익률은 3%대에 그치고, 그나마 최근 고유가로 마진폭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특히 "정유사들이 국제유가가 오를 때 가격을 올리고 유가가 내릴 때에는 인하폭도 작게 하면서 이익을 챙기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정유사 관계자들은 “원유가 상승분에 더해 폭리를 취한다는 주장은 오해”라며 “최근 원유가가 제품가격 인상분을 넘어서 마진이 떨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유사 관계자는 "주유소에 공급하는 공장도가는 국제가와 같은 수준"이라며 "주유소에서 마진을 붙이면서 가격이 더 올라간 때문"이라고 화살을 주유소로 돌렸다.
이에 5대 거품빼기 범국민운동본부 이태복 상임대표는 "고유가를 핑계로 정유사만 `횡재`하고 있고, 정부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며 "도입원가를 공개하고, 기름값 산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값 담합 의구심도 현재 진행형

기름값 담합 의구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 추이를 한국석유공사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결과,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난 1월까지 GS·SK와 에쓰오일·현대가 각각 사실상 똑같은 흐름을 보였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가 4개 정유사간 담합을 적발한 2004년 4월∼6월 초순의 양상도 비슷했었다. 지난해 2월 공정위는 4개 정유사에 과징금 527억원을 부과하고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그(적발기간) 뒤에도 계속 담합한 정황은 있지만 증거가 없어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까지 말했었다.
휘발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 국제 원유가격, 환율, 시장경쟁 상황 등을 감안해 조정되고 있다.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직영대리점이나 직영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인 이른바 `판매가격`은 다달이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이 판매가격에다 주유소 마진 등이 추가된 가격이 최종 소비자가격이다.
소비자나 학계에서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기름값이 비슷한 것은 주유소 담합보다는 정유사간 담합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 시장은 과점시장으로, 담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학계 한 관계자는 "주유소에서 파는 정유사의 기름값이 비슷한 것은 기본적으로 정유사들이 비슷한 가격에 기름을 공급하기 때문"이라면서 "정유사들이 담합했다는 충분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담합을 강하게 부인한다. 정유사 협회인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휘발유와 경유의 원재료는 원유로, 제품 판매가는 모두 원유가 변화에 의존해 각 정유사의 판매가 추이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원유는 경질유와 중질유 등 정제기술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수입하는 나라와 계약 기간 등에 따라서도 가격이 다르다"면서 "어떻게 각 사의 원유 비용이 모두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석유수입상인 이지석유 관계자도 "일본엔 정유사가 13곳이나 돼 담합 논란이 없지만 우리나라엔 정유사가 4곳뿐이라 담합 증거는 없어도 선두업체가 가격을 선점하고 나머지 업체가 알아서 그 가격에 맞추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등성과급 지급 문제 등으로 노사갈등

정유사 `빅3 업체` 중 SK에너지와 에쓰오일이 비슷한 시점에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에너지는 지난달 25일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500∼67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지난해 이미 배포한 200%를 합하면 모두 700∼870%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이다. 그런데 성과급은 직원 개인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됐다. 노조에 따르면 노조 전·현직 간부와 산재피해자들에게 성과급이 적게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노사 관행과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임명호 노조 위원장은 "성과급 배분은 노사 협의를 거쳐 정하도록 돼 있고, 2007년 임금합의서에 2004∼2006년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토록 명시했다"며 "회사측은 노사 합의절차를 무시하고, 성과급을 균등하게 지급하던 노사관행도 파기했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또 "일하다 다친 환자와 노조간부를 성과급 차별지급 대상으로 삼은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지난 12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이며 차등성과급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성과급이 적게 지급돼 문제가 되고 있다. 회사측은 최근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경영 성과급을 지급했다. 지난해 지급된 500%를 합하면 700%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이다.
문제는 성과급 지급비율이 노사합의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노사는 2006∼2007년 연속으로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에 성과급 950% 지급에 합의했다. 노사는 특히 2007년 영업이익이 2006년보다 초과할 경우 초과이익률만큼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키로 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성과급 배분에 대한 노조의 특별교섭 요구를 듣지 않고 성과급을 줄여서 지급했다.
노조는 "2006년과 2007년 임단협에서 사내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 대기업 고임금 억제정책 동참, 노사관계 안정적 정착 등 고통분담 차원에서 1조원 이상의 경영흑자 속에서도 임금동결에 합의했다"며 "이 과정에서 회사는 임금합의서를 통해 `경영실적에 따른 성과금 지급을 문서화한다`고 합의했지만 이를 이행않고 최고경영자가 성과금 200%를 일방적으로 결정, 지급하는 등 파행적 노사관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난달 23일 회사가 1조8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발표한 뒤 다음날과 지난달 30일 두차례에 걸쳐 임금합의서에 근거한 특별교섭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흑자 행진의 성과를 직원들과 나눠도 모자랄 판에, 일부 대주주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겨간 결과"라고 분석했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사다. 지난해 주식 배당으로만 7000억원 이상을 받았다.
신진규 위원장은 "회사측이 고임금 여론을 악용해 노사합의를 파기한 것은, 외국계 주주의 배당에 집착하는 국부유출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신 위원장 역시 지난 6일부터 단식농성 중이다.

“고유가 대책, 폭리의혹 규명이 우선”

한편 노회찬 의원은 최근 정부와 주유소협회 사이에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는 ‘주유소 판매가격 정보공개’사업과 관련, “유가폭등으로 인해 발생한 소비자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정유사 폭리 의혹 규명에는 소극적인 정부가 만만한 주유소를 상대로 채찍을 휘두르는 꼴”이라며 “최종 소매가격인 주유소 가격정보 공개도 중요하지만 우선 정유사들이 적정하게 휘발유 가격을 결정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가격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 보다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가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애초에 휘발유 가격이 적정한 것인지, 정유사들이 부당하게 높게 가격을 책정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부터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유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정유사들이 ‘영업이익 1조원’시절을 맞이하고 있으며, 수백%의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노 의원은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정유사들이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내고 있는 시장구조에서 ‘원유도입원가’가 아닌 ‘국제제품가격’ 기준으로 휘발유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합리적인 것인지, 내수용과 수출용 정제비용이 어떻게 산출되는지 공개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며 정유사들의 원가공개를 촉구했다.
노 의원은 “고유가로 인한 피해는 자가용 운전자 뿐 아니라 택시기사, 화물차 운전자 등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보고있다”며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가 모두 적극 협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합리적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정책추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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