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시린 발? 그래도 돈벼락 맞은 기분이거든요
추운 날씨, 시린 발? 그래도 돈벼락 맞은 기분이거든요
  • 승인 2008.03.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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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 그리고 양지> 청계천의 동전 줍는 이들

대동강물이 녹아내린다는 우수와 경칩이 지났다. 얼어붙었던 만물도, 사람의 마음도 하나하나 녹기 시작했다. 한편 겨울 막바지에서 완연한 봄으로 이어지기까지 홍역을 치르는 이들도 있다. 기자는 청계천을 지나치다 시민들이 던지고 간 동전들을 줍는 이들을 목격했다. 노숙자처럼 보이는 그들은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그토록 차가운 겨울 냇가에서 동전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꽤 모일 것 같았다. 이제는 그 누구의 동전도 아니니, 구걸하느니 차라리 저 편이 짭짤할 게다.   


하루는 그들을 찾아 취재에 나설까 해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을 어슬렁거리다가 청계천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을 붙잡아 동전줍기하던 이들을 수소문했다. "걔들 우리 얘들인데요." 

그럼 기자가 본 사람들이 모두다 관리자들? 아니다. 관리자들은 유니폼을 입고 활동한다고 한다.

"가끔씩 노숙자들이 동전줍기 할 때도 있겠지요. 저는 여태껏 그런 거 본적은 없지만서도. 근데 그게 좀 애매한 것이…."

관리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입을 연다.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본 거 같은데… 그러니까 누가 돈을 주워가든 법리적으로 유무죄 판단하기가 애매하다고 그러던데요. 일단 주머니에서 던져진 게 아니겠나요. 누구 돈도 아니죠. 실제로 청계천 관리자 아닌 사람이 동전 줍다가 잡혀간 적도 없고…. 하여간 저기 저쪽에 지프차 끌고 가는 우리애들 시청쪽으로 가고 있으니깐 쫓아가서 물어봐요. 시청쪽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나아가며 일을 하죠. 쟤들이 현장서 일하니까 저보다 할말이 많을 겁니다. 기자님 간다고 일단 무전기로 알려놓으리다."   



얼음이 녹더라도 곧 따뜻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들은 겨울과 봄 사이 가장 차가운 곳에 발을 담그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 청계천 관리센터 직원들은 청계천 바닥 청소를 하며 주 2회 가량 시민들이 던지고 간 동전들을 주워 모은다. 동전이 모이면 불우이웃기금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찬물에 발을 담그는 이들의 노고로 불우이웃들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되길 희망하며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모 팀장은 젖은 옷을 털어내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사진이 찍히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본부에서 언론과 접촉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란다. 



"주로 돈보다는 쓰레기를 줍는거죠. 청계천 환경미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중에는 청계천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래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월요일이 피크죠. 주말에 사람들이 붐비는 월요일에 치울게 가장 많죠. 동전도 마찬가지고요. 동전은 대중없는데 주로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줍는 날이 많습니다."

물속을 거니는 이도 있고 청계천 양쪽을 따라 걸으며 집게로 휴지를 줍는 이도 있다. 그리고 도로와 가까운 양 부위를 걸으며 주변을 정리하는 이들도 있다.



"우연찮게 마주쳤네요. 저 위에 사람들은 우리 소속이 아니예요. 청계천 관리팀이랑 상관없는 직원들이죠. 서울 시내를 가꾸는 일반적인 환경미화원이겠죠. 그런데 저들보다 우리가 소속감이 강하긴 해요. 청계천이라는 서울의 상징적인 내천을 관리하니까 좀 달라보이겠죠."

한편 물속에 있던 박모 직원과 변모 직원은 김 팀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월요일임에도 불구, 동전 주울 생각은 않고 휴지 줍는 작업에만 몰두했다. 박 직원은 "오늘은 동전이 별로 없어서요"라면서 동전 줍는 기구도 가지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까 전에 오토바이 타신 분이 지시하고 가셨지요. 바닥 훑어보고 별로 안모였다 싶으면 차후로 미뤄요. 우린 그 지시에 따르는 것이고. 그나저나 오늘은 삽질할 일 없겠네요."

얼마정도 모이느냐는 질문에 그들도 알 길이 없다고 한다.
"10원짜리 100원짜리 500원짜리 심지어 1원짜리도 섞여 있어요. 그 많은 걸 언제 다 세어보나요. 뭐 불우이웃 성금으로 쓰이는 거니 어차피 우리가 세어서 나눌 몫도 아니고…그건 본부에 한번 물어봐요. 그런데 그런 것도 가르쳐주려나."



옆에 있던 변 직원이 끼어든다.
"이봐요 기자양반. 대충 계산이 안되우? 청계천 하루인파가 평균 5만이고 주말 인파가 20만이라고 하오. 일주일에 50만 가까이 되는 인구가 찾으니 10명당 한명이 100원씩만 던져도… 이야 꽤 된다 돼. 그러니 노숙자들이 덤비는 거지. 그 사람들도 불우이웃이니 할말은 없다만."

그 돈이 다 성금으로 가느냐고 슬쩍 떠본다.
"글쎄요. 그건 우리가 대답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관리센터에서 취급하는 문제라서요. 설마 우리가 손을 댈까요. 근데 아까 변 직원이 예상한 액수만큼은 안될거에요. 돈 던지는 사람 그리 흔치 않거든요. 들고가다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것 같은데 한 두 주먹씩 움켜쥔다해서, 100원짜리 10원짜리 섞이면 얼마나 되겠어요. 꼭 그렇게라도 해서 존심을 구겨야겠나요. 허허."



찬바람과 시린 발로 고생하지만 박 팀장은 그래도 동전을 주울 때가 가장 흥이 난다고 말한다. "돈벼락 맞은 기분이거든요."
`휴지나 동전을 던지지 마시오` 라는 간판은 없다. 그렇다면 관리센터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던진 동전을 생각 끝에 청계천 관리 센터 측에서 불우이웃성금 조성안으로 채택했나보다.



박 팀장은 설명한다. "시청쪽에 가장 많이 떨어져있어요. 종로 근처만 가면 동전이 바닥나 있죠. 그만큼 그 쪽엔 인적이 드물다는 거죠. 근데 희한하게 쓰레기 양은 종로에서 동대문으로 가는 방향쪽이 더 많아요. 인적이 드무니 남의 눈치 안보고 버릴 수 있는 환경 탓인가봐요. 거참…."

인터뷰가 막바지에 달했을 때 기사의 방향성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봄이 와도 아직도 차가운 바닥에서 고전하는 청계천 관리팀에 대한 단순한 발견적 갈래와 청계천 하류에 대한 단상으로. 즉 겨울의 끝과 끝나지 않은 겨울, 동시에 불우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는 봄.   



청계천의 하류 풍경은 아직 얼어붙어 있는 것 같다. 청계천의 하류에도 봄이 흘러내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동전 몇푼이지만 시민들의 발걸음이 청계천 하류 동대문과 신설동으로도 이어졌으면 한다. 신기하게도 청계천의 상류와 하류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동대문 즈음 내려오니, 10원짜리 동전 한닢 찾아보기 힘들다. 휴지조각만 너풀거린다. 겨울 시리즈의 끝, 봄 시리즈의 시작임과 동시에 그것이 봄이 와도 겨울과 매한가지인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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