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그리고 양지> 골목길의 요구르트 아줌마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 모퉁이에 서 있는 요구르트 배달 수레. 와야할 요구르트 `아줌마`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요구르트 아줌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60대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수레에 다가가더니 요구르트를 꺼내 하나 하나씩 헤아리며 봉투 속에 담는다. 십수개쯤 될 것 같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지폐와 동전을 셈하더니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표정으로 노란 박스의 요구르트 통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노인은 구부정 걸음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인적이 드물지만 횡단보도 신호등이 한번 바뀌거나 버스가 한 대씩 사람들을 쏟아내고 지나치면 붐빌 정도는 아니지만 일정 정도 그 골목길을 지나친다. 5분에 한번씩 그렇다. 골목길 군데군데 국밥집 같은 식당들도 보이고 식당을 지나치면 붉은 주택가도 빽빽이 들어 서 있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요구르트 박스에 관심이 없는 건지 돈을 발견하지 못한 건지 지나치던 그 누구도 박스에 손을 뻗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돈을 훔쳐간다면, 요구르트 아줌마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노인의 행동은 바람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경솔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본다.



요구르트 아줌마는 요구르트가 분실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훔쳐가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돼요. 보통 동네 단골들이 제가 없을 때 그런 식으로 계산하고 가거든요. 단골의 경우 다음에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면서 `언제 어떻게 돈을 지불하고 우유나 요구르트를 가져갔다`는 식으로 전해줘요. 회사로 돌아가서 하루 매출액 계산해보면 돈이 비는 경우도 없고요."

국어책을 읽는 듯한 대답.

"설마 이걸로 문제삼는 건 아니죠?"하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면 기자가 혹시나 문제삼을 것을 대비해 계산상 그렇게 말하는 거 같기도 하다. 왜 없겠나.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경미하지만 종종 일어날 수 있을 성 싶다. 그래서 기사의 취지를 상세히 설명해주고 다시 한번 물었다.

"사실 금액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그런데 그게 누군가가 훔치거나 해서 일어나는 일 만은 아닐 거라 봐요."

그럴 경우 요구르트회사가 어떤 식으로 나올까 궁금했다. 이를테면 회사에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해야하는지 말이다. 아줌마는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린다. 바로 옆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채소장수 아저씨가 아줌마 당혹하는 상황이 보기 딱하다는 듯, 기자에게 `이보게` 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끼어든다. 여름 휴가 가서 선탠한 얼굴 같다. 1년 내내 그럴 얼굴이겠지만….



"금액이야 어디든 다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어. 그게 사람 사는 거고. 회사 사장이 아무리 독해도 그런 일로 배달하는 아줌마들을 의심하거나 나무라지는 않을 거라고 봐. 나도 예전에 잠깐 회사 다닌 적 있어. 막노동이었지. 공사판에 부장이라는 놈이 엄청 까다롭더라고. 지는 일도 안하고 어디 놀러다니면서, 간식값, 술값, 하나하나 따지면서 공사 담당자인 소장을 엄청 나무라더만. 돈 다 어디 쓰냐고. 소장이랑 나는 허구 헌날 관둬야겠다고 하소연했지."

그래서 어쨌다는 건지…?
뒷담화를 즐겨하는 그. 그런 그지만 이제껏 살아보니 세상에 진짜 독한 놈은 없더라고 한다.

"지도 인간인데 별수 있겠어? 살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야."
그래서 그는 늘 뒷담화 이후엔 능청스럽게도 방금 전까지도 `씹었던` 사람을 웃으며 대한다고 한다. 부딪히다 보면,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소통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생의 지독한 긍정일까. 아니면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연연 않는, 연륜으로 대변되는 여유일까.

그는 요구르트에 대해서도 일갈을 가한다. 아무리 세상이 이 모양이라도 힘들게 일하는 요구르트 아줌마를 `엿먹이는`, 정말 그러한 탕아가 있겠냐는 소리다. 아무리 독한 도둑도 그 정도 인간적 고민은 하고 개념을 수립(?)해 절도에 나선다는 것.       

과거에는 훔친 자보다 훔칠 수 있도록 방치한 자를 더 나쁘다고 했다. 가진 자들이야 거기에 관해 어떤 논쟁을 하던 일반 서민들에게 그런 논쟁은 무의미해 보인다. 아줌마 부재시 요구르트와 요구르트 값을 치른 돈을 분실한 경우가 없다는 말을 믿어본다면,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성숙했나 하는 긍지도 든다. 자그마한 요구르트 하나.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다만 고위층의 도덕적 의무부재가 서민들의 이 작지만 질서 있는 풍경에 칼질을 하고 서민들에게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기자 스스로에게 물었다. 인간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선에 관해. 옹졸한 과거사를 더듬으며 아직은 어리광스러운, 용서의 미덕과 여유로움. 먼 훗날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타인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이 옹졸함에 한가지 바램을 되뇌였다. 기자를 의심한 자, 기자가 의심한 자, 의심스러운 모든 현상들, 그리고 각을 세운 자, 떠난 자, 누명을 씌운 자들에게 한결 여유롭게 다가 설 수 있는 정신적 건강.
기자 마음도 몇날 며칠 울거내느라 한없이 뚜껑이 닫혀있는 인적 드문 시골 곰탕집의 솥단지 마냥, 허기진 손님의 속을 한없이 달래는 것 마냥, 뜨문뜨문 열리기라도 했으면….

그런데 한가지 모순이 발생한다. 고위층의 비리에 대해서도 관대해져야 할까?
최규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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