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그리고 양지> 봄볕 내리쬐이는 청계천



완연한 봄이다. 평일 낮시간부터 청계천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물었던 신설동 인근 하류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날은 드물 터. 낙후된 하류가 이 정도면 상류는 바글바글 거릴 것이 뻔하다. 웬일인지 청계천 관리 직원들의 차도 보인다. 이곳까지 내려와서 환경미화에 여념이 없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지라 취약지점으로 여겨졌던 이곳에까지 관심을 두는 모양새다. 청계천 하류에도 봄은 오는가.

어느덧 봄볕이 진하게 내리쬐인다. 20대 커플부터 60대 노부부까지 연령대별로 곱게 차려 입고 천변로를 활보한다. 외국인 커플도 보인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걷는 국제 커플도 보인다. 모처럼 밝은 모습이다. 커플들의 천국이다. 기자의 눈에 커플들만 보이는 것인지 실제 유독 커플이 많은 날인지 판단하기 까다로운 `봄날`이다. 커플과 더불어 일반 `솔로` 들도 활보한다. 기자는 커플 아니면 솔로일 것이라는 이 양극의 사견하에 이날따라 유독 붐비는 청계천 하류를 거닐어 본다.

외국인(호주)과 손을 꼬옥 잡고 지나가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그녀. 외국어에 서툰 기자는 외국인에게 살짝 눈인사만 건네고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만남을 가지게 됐는지 물어본다.



"학교에서 만났어요. 호주에서 온 교환학생인데 한국남자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점도 있고…."

영어공부 하려고 만난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런 건 아니예요. 영어는 원래 잘해요.(빙긋) 이 친구랑은 처음부터 영어로 말하고 답했어요. 요즘 영어 잘하는 애들 많아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웃음) 그런데 이 친구가 한국말에는 아직 서툴러서 한국말로는 대화하지 않아요."

호주에서 온 그 학생이나 그녀 모두 얼굴은 밝아 보인다. 저녁에는 상암월드컵 경기장서 데이트도 즐긴단다. 요즘식으로 쿨한 세대라고 하지만 저급한 `쿨`은 아닌 듯 보여 보기 좋다. 하지만 한가지 우려도 든다. 그녀에 따르면 요즘 학생들은 영어가 생활화 돼 있어 한국 친구들끼리 만나서도 영어로 대화한단다. 강남의 커피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호주에서 온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볼 생각은 없냐는 물음에 "본격적으로 가르칠 시간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뭐가 저리 좋을꼬…."
어느 노부부의 질투 어린 발언이다. 자식농사 마치고 연금을 받아가며 사는 부부다. 부부는 한참을 걷다가 지친 기색. 커다란 바위에 나란히 앉아서 지나치는 사람들 풍경을 감상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보인다.



"아이 자꾸 왜이래요!"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의 연령대인, 식당 아줌마 같이 푸근한 인상인 아내는 남편의 스킨십에 치를 떤다. 남편은 "뭐가 어때서 그러누. 간지러워서 그러누?"하며 털털하게 웃는다.

"요즘은 말이야. 늙은 사람들도 활발해야해.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하난 잘만들어놨어. 평소 집에서 심심한 노인네들 이런데 오면 우울증도 안걸리고 좋잖아. 나이 먹고 갈 때 없는 영감들 치매 예방에도 좋고 말이지."

두 분은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서로의 등을 두들겨 준다. 어깨도 주물러 준다. 아내는 한쪽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여보, 저기 보슈. 우리 정민이랑 나이가 비슷하것구만. 쟤들도 결혼했겠구만"하고 얼마전에 장가간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며느리 집안이 넉넉하지 않지만 하도 이쁜 짓만 해서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고도 얘기한다.



그런데 저쪽 상황은 달랐다.       
지는 태양 아래 눈에 띄는 저쪽, 젊은 커플은 무슨 영문인지 지쳐 보인다. 곧 결혼할 커플이라고 한다. 3년간 연애 끝에 결혼을 앞둔 그들이 서로를 쓸쓸하게 주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 가정이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결혼이 두 사람과의 만남이지만 한 가정과 다른 가정의 만남이기도 하니깐요. 수준이 비슷한 가정끼리 만나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서인지…요즘은 신랑, 신부측 집에서 결혼자금을 50대 50으로 나눠서 내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게 문제예요. 저희 집은 중산층이지만 겉만 화려하지 알맹이는 없는 집안인데 그렇다고 해서 집안 자존심 때문인지 자금에 있어 양보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신부측의 이러한 고민에 예비 신랑은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이랑 상의해볼게"라며 자기가 나서서 일을 수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자존심이 워낙 쎄서 빚을 내더라도 내야 할 돈은 내는 분이라고 대답한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살 집 한 채 얻어주는 것이 그들 부모님의 몫.

아직 마련치 않았지만 오르는 집값은 이제 막 행복에 겨워야 할 그들에게 드리운 그림자다. 있는 집이 더 내면 될 터이지만 그 놈의 자존심이 무언지 새삼 실감나게 한다. 그들은 이 문제로 헤어질 일은 없다고 한다. 서로를 확인한 상태. 물론 상대적으로 한쪽 집안이 기울어질 문제는 발생하겠지만 말이다. 한동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먼 산 바라보며 말이 없던 두 사람은 이내 일어나 손을 꼬옥 잡고 일어선다. 소리 없이 걷는다. 상류를 향해.   

청계천 하류, 사람들이 붐비는 것이 고무적인 게 분명하나 한 두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띤다. 상류에 비해 물이 탁하다는 것과, 얕은 바닥임에도 동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물이 탁하니 동전을 던질리도 만무하다. 보이지도 않는 동전을 미관상 던질 이유가 있을까.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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