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쳐지는 서민생활안정, 벌어지는 쓰레기봉투 다툼
외쳐지는 서민생활안정, 벌어지는 쓰레기봉투 다툼
  • 승인 2008.04.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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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 그리고 양지> 선거유세, 그 뒷길에서


#선거유세가 한창인 종로의 한 골목. 사진은 기사 특정내용과 관련없습니다.

선거유세가 한참이었던 지난 8일 종로구의 어느 거리. 손학규 대표가 유권자들 앞에서 일장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화, 서민생활안정, 내 고향은 종로… 대략 이런 내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세워두고 호소하고 있다. 연예인도 눈에 띈다. 선거유세에 굳이 연예인이 왜 따라나서는지는 이해가 안가나 사람들 끌어모으는 데는 그만한 방법도 없지 않나 싶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검정양복의 사내들도 보이지만 경호가 그리 탄탄해 보이진 않는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을 정도. 그래, 이 정도면 민주화라는 호소가 그럴싸해 뵌다.

다소 요란스러운 선거용으로 렌트한 차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동네 주민들과 호기심이 발동한 노인네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서민생활안정을 내걸은 손학규 대표의 얘기를 경청한다. 학교 안간 어린아이들은 서민이고 뭐고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달나라 얘기인양, 마치 불구경이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 선거판에 깽판을 놓기도 한다. 그리고 말리는 어른들.



그나저나 서민생활 안정은 도대체 언제부터 써먹던 얘기던가. 어느 당이건 서민생활안정은 공약의 단골메뉴중 하나인데 이런 유세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안정치 못한 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마이크를 잡고 `서민생활안정` 이라는 구호로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손학규 대표의 렌트카 뒤로 돌아서면 그런 광경은 흔하게 펼쳐진다. 경찰관 몇이 와서 별일도 아닌데 왜 불렀냐는 식의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서민들의 사태`를 수습중이다.

"고발할 겁니다."
노래방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독거노인으로 보이는 할머니 하나가 미안하다며 죄를 사해 달라 간곡히 요청한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노래방 주인은 저토록 매정할까. 여대생 하나도 이 사건에 본의 아니게 끼여들어 난감한 기색이다. 사람들은 선거유세보다 이 광경이 더 흥미로운지 손학규 대표의 연설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독거노인 할머니는 자신이 수집한 쓰레기를 지나다니며 매번 이 동네 노래방 정문의 `쓰레기 봉투`에 쑤셔 넣었단다.



"쓰레기 봉투 살 돈 없고…. 노래방 쓰레기 봉투는 매번 여유로와 보이길래 지나가면서 넣었을 뿐인데…."

노래방 주인의 얘기는 좀 다르다.
"어디 쓰레기 봉투에만 넣었수? 일반 쓰레기를 노래방 앞에 다 버렸잖아요. 이거 봐봐. 속이 꽉차서 더 이상 넣기 힘드니깐 옆에 버젓이 그냥 내버려뒀잖아."

노래방 주인은 낮술이라도 한 잔 한 듯 언성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욕설도 난무했다. 
"이때까지 매번 버린 쓰레기 양만 해도 엄청날 거에요. 하나하나 계산해서 법원에 갈 겁니다. 법원에서 이런 거 처리해주는 걸로 아는데…."

난감해 보이던 여대생은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당시, 이곳을 지나치다가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할머니의 편에 서서 노래방 주인에게 목청을 높였나보다.
기자는 여대생에게 다가가 기자임을 밝히고 사건 전개과정을 들어보려 했지만 여대생은 별일 아니라며 자리를 피하려 한다. 혹시나 자신을 문제삼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다. 

"아니 글쎄, 쓰레기 봉투 그거 얼마나 한다고…."
경찰도 여대생이 불렀다고 한다. 여대생은 경찰을 부른 이유에 대해 얘기한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할머니를 붙잡고 못살게 굴길래 제가 떼어놨어요. 그런데 저한테 쌍욕을 하면서 막 밀치는 거 있죠. 저랑 할머리를 때릴 태세였다니깐요."
이런 얘기 와중 할머니는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노래방 주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젊은 경찰들은 노래방 주인에게 "한번만 봐줍시다 사장님"하고 웃으며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지만 술이 약간 오른 노래방 주인은 여간내기가 아니다.
"내 나이가 올해 몇인줄 알아? 아마 저 할머니 보다 많을 거다. 그런데 저 조그마한 여자 아이까지 나한테 대들잖아. 쟤도 같이 고소해버려 말어?"



여대생도 만만치 않다.
"제가 언제 대들었나요! 먼저 욕한 게 누군데요!"

노래방 주인은 여대생에게 달려들 태세. 순간 장소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경찰은 양쪽을 비호한다. 노래방 주인은 사진을 찍으려던 기자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겁을 주기도 한다. "야 찍으면 그냥 안둬!"

경찰은 노래방 주인에게 한 사업체 사장이면서 쓰레기봉투 몇 장으로 왜 이러냐며 달래기 시작했다. 노래방 주인은 그제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낮췄다.

"요즘 사장이라는 말이 흔해서 그렇지 뭐 특별난 게 있는줄 알어? 동네가 이 모양이라서 장사도 제대로 안 돼. 요즘 또 불경기라고 그러잖아. 태산같아 낮에 소주 한잔했지. 그러고 일찍 문열려고 왔더니 글쎄 저 할머니가 쓰레기를 버리고 있잖아. 쓰레기봉투 저거 얼마 안하지만 얼마나 얄밉겠어."

경찰들은 이 안정된 시기를 놓칠새라 계속해서 다독인다.
"그래요 그래요. 이제 그만하세요. 다들 힘든데 이런 걸로 법정에 가면 서로 피곤하잖아요. 빨리 문 열으셔야죠."

경찰은 여대생에게 할머리를 데리고 사라져달라고 사인을 보낸다. 노래방 주인은 일순 화제를 바꿔 힘겹게 살아온 날들을 경찰들에게 한탄한다. 여대생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읊조리는 할머니를 모시고 뒷길로 사라졌고 노래방 사장은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한숨을 푹푹 쉬며 젊은 경찰의 손을 부비며 경찰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2주후에 법정에서 봅시다` 가 될 뻔한 이 `서민`적인 사건은 비록 욕설이 난무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법정까지 갈 형편이나 여유가 없으므로 해서 `서민`적으로 마무리됐다. 주위를 지켜보던 `서민`들도 상황이 종료되자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손학규 대표의 유세장으로 향했고 일부는 가정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서 연신 `서민생활안정`을 외쳐대던 정치인들의 공약이 일종의 코미디처럼 들리는 현실이기도 하다. 인류가 망할때까지 각 당들이 이고 갈 공약, 다름아닌 `서민생활안정` 이겠지….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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