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경영권 분쟁 2라운드 돌입 장기화

현대오일뱅크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현대오일뱅크 최대주주인 아랍에미레이트의 투자회사 IPIC가 2대주주인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 계열 주주들의 매각 절차 이의 제기에 대응해 현대측이 보유한 지분 30%를 내놓으라고 맞불작전을 펼쳤다.
주식매입권 행사를 놓고 양측의 주장이 날카롭게 대립함에 따라 상당기간 법적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IPIC 지분 전량매입 권리 주장

지난달 25일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의 IPIC가 보유한 주식 지분 70%를 전량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IPIC가 현대중공업 등 구 현대계열 주주들과 체결한 주주간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IPIC가 소유한 현대오일뱅크 주식 전량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현대중공업은 법정대응까지 마다하지 않고 현대오일뱅크 인수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의 2대주주로 지분 19.87%를 확보하고 있는 동시에 IPIC의 지분에 대해서도 우선매수 청구권을 갖고 있다.
IPIC는 지난해 5월 투자차익을 일부 회수하기 위해 지분을 팔겠다고 공식 선언, 모건스탠리를 통해 매각 작업을 진행해왔다.
최종 인수대상자를 선정한 뒤 현대중공업의 동의를 얻어 지분 50%와 경영권을 넘긴다는 방침을 세웠고, GS칼텍스 롯데 STX 코노코필립스 등으로부터 최종입찰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말 IPIC가 우선매수권을 무시하고 매각을 진행한다며 공식 항의했고, 지난 3월 중순에는 강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GS칼텍스 등을 대상으로 주식매수가처분 신청서까지 제출했다.
이에 대해 현대오일뱅크의 1대주주인 IPIC는 지난 8일 "현대중공업 등 현대주주들이 아무런 근거없는 법적 분쟁과 절차적 방해를 통해 매각절차를 방해해 주주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위반사항이 신속하게 시정되지 않을 경우 주주계약 위반을 선언하고 주주 계약에 따라 현대주주들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30%의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우리에게 매각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 서로 계약 위반 주장 주식매입권 행사 나서

1, 2대 주주가 서로 계약을 위반했다며 상대방의 주식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주식매입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IPIC와 현대중공업 등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보유한 현대계열사들은 지난 2003년 주주간 계약에서 계약 내용을 위반할 경우 위반한 주주가 보유한 지분 전체를 상대방이 매입할 수 있는 주식매입권을 부여했다.
IPIC는 지난 1999년 현대중공업 등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보유한 현대계열사로부터 현대오일뱅크의 주식 50%를 취득했으며 주주간 계약에 따라 지난 2006년 지분 20%를 추가로 획득했다.
주주간 계약 위반 여부가 주식매입권 행사의 근거가 되는 만큼 이 부분을 가리는 것이 이번 분쟁의 핵심이다.
IPIC측은 현대중공업이 근거없는 법적 분쟁을 제기하는 등 매각절차를 방해하는 것 자체가 주주 계약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IPIC측이 자신들의 권리를 훼손해 법적 분쟁을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맺은 주주 계약에는 법적 분쟁 와중에는 지분 매각을 진행할 수 없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IPIC측이 몇가지 사안에 대해 현대중공업의 주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계약 관계 등으로 인해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사 선임건이나 우선매수 청구권과 관련한 절차 위반 등이 현대중공업이 주장하는 위반 내용에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IPIC측은 이와 관련, "이번 분쟁의 일부는 현대주주들이 지명한 김정래 이사(현대중공업의 고위 임원)의 해임안건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지난 3월27일 서산지방법원은 현대주주들의 (해임안 처리 중지) 가처분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국제중재재판소 결론 날때까지 매각 지연

양측의 극단 대립은 결국 지분을 비싸게 매각하려는 IPIC측과 싸게 사려는 현대중공업의 이해 충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주식매입권과 별도로 IPIC가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경우 같은 가격에 우선 매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인수가 목적이라면 IPIC가 진행하고 있는 매각 절차를 그대로 두드라도 지분 인수의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인수 금액이 달라진다. 상대방의 주주 계약 위반에 따른 주식매입권 행사시에는 할인된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IPIC는 지난 1999년 6127억원(5억달러)을 투자해 당시 현대정유 지분 50%를 확보한 뒤 2006년에는 콜 옵션을 행사해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던 지분 20%를 주당 4500원에 추가로 인수했다.
현재 비상장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주당가격은 9000~1만2000원 정도이다. 50%의 지분만 인수하는데도 1조1000억~1조5000억원이 들어간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붙는다면 2조원 내외가 될 것으로 증권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영프리미엄이 보통 20%내외인 반면 IPIC가 60%가량 요구하면서 `50%+경영권` 가격이 치솟아 양측의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IPIC와 현대중공업측이 원만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한 현대오일뱅크 매각은 상당기간 지연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제중재재판소에서 양측의 시비가 가려지기까지 몇년이 걸릴 수 있다.
또 지분 매입에 참여했던 국내외 기업들조차 IPIC가 현대중공업과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 매각작업을 진행한데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어서, 업계에서는 지분 매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경영권 확보 업계 환영

한편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의향을 밝히자 당초 인수후보 1순위였던 GS칼텍스를 제외한 정유업계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현대오일뱅크 최대주주인 IPIC에 지분 전량(70%)에 대한 주식매입권리 행사를 통지키로 결정했다고 공시하자 그동안 GS칼텍스가 현대오일뱅크의 새 주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던 국내 경쟁사들은 물론 현대오일뱅크 직원들까지 반기는 모습이다.
먼저 업계 1위를 도전받았던 SK에너지가 제일 반색이다. 그동안 GS칼텍스가 SK에너지에 도전하겠다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겠다는 야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SK에너지도 SK인천정유와 합병,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보유하게 됐지만 만약 GS칼텍스가 현대오일뱅크를인수하게 되면 정제능력 면에선 자사를 능가하기 때문에 썩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GS칼텍스를 맹추격했던 에쓰오일도 3강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도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수익성 등 질적인 면에선 GS칼텍스를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상황이다.
주유소 업계도 현대오일뱅크가 GS칼텍스로 넘어가면 과점이 더욱 심해져 소비자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며 `현대중공업-현대오일뱅크` 조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 주유소 사업자는 "지금도 정유업계가 사실상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어서 정유사들의 폭리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만약 정유사가 또하나 줄어들면 시장 경쟁은 더욱 약화되고 주유소와 소비자들은 더욱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말했다.
현대오일뱅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경쟁업체인 GS칼텍스가 자사를 인수할 경우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깔려 있다. 또 자본력이 좋은 옛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을 반기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찾아오겠다고 선언하자 GS칼텍스측은 현대오일뱅크 인수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IPIC가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GS칼텍스가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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