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잃어버린 10년'을 말할 수 있었나?
진정 '잃어버린 10년'을 말할 수 있었나?
  • 승인 2008.04.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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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 그리고 양지> 시장 사람들의 항변

총선은 끝났다. 서민들에게 당장 총선의 영향이 미칠 리는 만무하다. 그저 하던 일 묵묵히 하고 있다. 총선결과가 어찌 됐건 서민생활의 대표적 터라고 할 수 있는 시장과 동네 상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 없다. 총선은 끝났지만 총선 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공약을 내건 모 정당의 발언에 그들 대개는 아직도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대선 때는 투표 안했지만 총선때는 했습니다. 화가 나서요."
취재 도중 가장 먼저 만난 상점 아주머니의 얘기다. 총선전 모 정당의 선거공약이었던 `잃어버린 10년`을 언급하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결과가 어찌됐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앞으로 돌아갈 상황에 대해서도 낙관하지는 않는다.


"제가 말이에요. a,b,c는 몰라도 IMF는 알아요. IMF 때 서민들 금 모을때 힘있고 돈 많은 사람들 달러 장사해서 돈벌고 그 돈으로 이자놀이 해서 배불리 잘 살았으면 조용이나 있을 것이지 뭐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건지 기가 막히네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 모 정당한테 잃어버린 50년은 어쩔 거냐고 물어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하네요."

아주머니는 다소 흥분한 상태로 기자에게, 근로자들 임금 깎이고 비정규직 생기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아느냐며 비정규직 법안도 기업들 어려워진다고 이상하게 만든게 누구냐며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다시 IMF올까 걱정이라고도 전했다.

물건을 사러온 단골로 보이는 아주머니도 한 몫 거든다.
"잃어버린 건 추악한 정치인들의 권력욕인데 입만 벌리면 국민의 뜻이고 자칭 애국자들이 너무 많아 고단해 하는 서민들 뒤에서 지난 국회 임기동안 정치인들 돈 많이 챙긴 것 같더라고요. 왜 역대 선거중 투표율이 저조한지 유권자 탓이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는 단 한명의 국회의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기자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지니는 의미의 파장이 크다고 생각,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흥미로왔다. 


시장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가 "어? 위클리서울, 지하철에서 봤어요"하며 신문 재밌게 봤노라고 호들갑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물음에서도 즉각 반응이 왔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건 정말 웃기잖아요. 10년 전 나라 망하게 했으면 조용히 반성해야 하는 거 아닌지. 도대체 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지 그 10년간 그 사람들이 무너뜨린 대한민국 일으켜 세우느라 온 국민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들한테만 정권 잃어버린 10년이겠죠."

마침 놀러온 옆집 식당 주인도 끼어든다.
"10년 동안 잃어버린 게 뭔지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도 생각해봤습니다. 식견이 짧아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솔직히 뭘 10년 동안 잃어버렸는지…. 잃어버린 게 있다곤 하지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들더군요.
어쨌든 정권은 바뀌었고… 요즘 들어 연일 이어져 나오는 새정부의 정책과 시끄러운 잡음들…말 따로 행동 따로인 정치인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거 한가진 그들이 10년동안 못 긁어모 은거 한꺼번에 왕창 긁어모으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다른 견해도 제시됐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의 유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국민에게 고통과 아픔만 주었다는 실생활의 경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민주화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국민 개개인이 살아가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거죠.
아무리 옳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말이라 하더라도 내가 사는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GNP 2만불 시대에 먹고사는 생활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수가 3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바뀐 정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를 잘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도록 열심히 일할 수 있게 전폭적인 성원을 해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횟집에서 칼을 가는 한 젊은 사내의 말이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던 시장 아주머니들은 그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했다.
"이봐 김씨.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10년 전에 똥 싼거 치운 게 누군데!"

사내도 물론 시장상인들은 다들 까르르 하고 웃는다. 
총선에는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분위기를 보니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듯 해 한쪽으로 표가 쏠렸을 것이란 예상을 해봤다. 그러나 반전이 도사리고 있었다. 기자가 어느 당 찍으셨냐고 슬쩍 떠보자 다들 눈치를 본다.

"그런걸 어떻게 말해요."
`위클리서울`을 재미있게 봤다던 술집 주인 아주머니는 "다들 말은 저렇게 하지만 투표는 오히려 자신들이 저렇게 흉보던 당을 찍었을 확률이 높아요. 왜냐하면 여길 잡고 있던 구의원이 그쪽 당이었거든요. 그 의원이 속한 당을 찍어야 이 동네가 산다, 뭐 이런 논리겠죠."


그 당이 싫으면서도 당장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전언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고 있었지만 투표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이런 모순은 이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잘못된 것 알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지지해야하는 모순된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암담했다.  

IMF때 원인을 제공한 김영삼 정부 시절 여당이 지금의 집권당이다. 시간 경과에 따른 사건들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망할 뻔한 나라를 일으켜 세운 공은 지난 정부와 손을 잡은 일반 서민들의 힘이 컸지 않았나 여겨본다. 그런데 그런 서민들이 당시 망할 뻔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가끔 일부 국내외 학자들이 한국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던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한국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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