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선 최대 공약 이러지도, 저러지도...

`대운하 구상`이 민심의 늪에 제동이 걸렸다. 총선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대운하 구상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이재오 의원의 낙선이 상당한 충격이 됐다는 전언이다.
청와대는 최근 국정과제 보고회의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제외시켰다. 60%를 넘는 반대여론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비롯 18대 총선 당선자들 대부분도 반대 주장이 높은 것으로 전해져 청와대의 입지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청와대가 `대운하 구상`을 놓고 한 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정부는 대운하 사업을 193개 국정과제에서 제외한 데 이어 청와대 또는 국토해양부 산하에 두려던 추진기구 계획도 보류했다.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상정하려던 대운하 특별법도 당분간 연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청와대 인사는 "반대 여론이 높아 당분간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청와대와 정부가 직접 나서지는 않기로 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 인사는 "방미를 마치고 돌아온 이 대통령의 시야가 더 넓어졌을 것"이라며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쌓여있는데 대운하 구상에만 올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대운하 사업 백지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여론수렴을 더 거치겠다는 것이지 변화된 것은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반드시 국민들을 설득해 추진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입장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여당도 등 돌린 `대선 공약`

대운하 구상`의 물줄기를 돌린 것은 다름 아닌 `민심`이었다.
전도사를 자처한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이재오 의원이 "대운하 공약을 심판하겠다"던 문국현 대표에게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이 의원은 선거전 "건설은 버릴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강력 추진을 주장했었다.
총선에서 당선된 친이계만 100여명에 달하지만 `대운하 구상`에 대한 의지는 예전같지 않다.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에서도 반대와 입장 유보가 찬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당선자 중에서도 조건부를 포함 찬성한 응답률은 33.3%에 그쳤고 유보와 반대(조건부 포함)가 각각 48.6%와 11.1%였다.
한국일보 조사에서도 당선자의 절반이 넘는 135명(53.8%)이 `반대한다`고 답했고 `찬성한다`는 의견은 47명(18.7%)에 그쳤다.
각종 조사에서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60%를 넘는 흐름을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청와대는 인수위 시절부터 대운하 추진을 물밑에서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외 홍보 등 외부 작업엔 소극적이었지만 실무팀들이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현대건설·대우건설·삼성물산 건설부문·GS건설·대립산업 등 건설사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밀약`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청와대는 총선에서 18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해 대운하 구상을 연내에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나도 속았다"고 할 정도로 선거 결과는 과반수 의석을 겨우 넘었을 뿐이다.
당내 친 박근혜 전 대표 진영과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연대 당선자들은 일치감치 `대운하 추진 반대`에 방점을 찍은 상황이어서 분위기는 더욱 비관적으로 흐르게 됐다.
4월 총선 이후 민자 건설사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제안공고를 내고 6월 안으로 `한반도대운하 특별법`을 상정해 통과시키겠다는 계획도 사실상 어렵게 됐다.
총선 전 대운하론자들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국민의 검증을 받은 것과 같다"며 "찬반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시행사 확정→ 운하 설계→2009년 초 운하 착공 이라는 로드맵도 변경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시범 운영 등 대안 검토 중

청와대와 한나라당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몰두하는 야상이다.
이 대통령은 "운하 문제를 당에 맡기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반해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대운하와 관련된 환경이 더욱 나빠져 6월 특별법 통과는 불가능하다. 그보다 서민생활을 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영산강이나 낙동강 준설을 통해 대운하를 시범적으로 건설, 운영하거나 경인운하를 연내 마무리해 여론을 반전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간단체인 한반도대운하연구회에 여론 수렴과 홍보 방안 마련 등을 맡기는 방안도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포석 중 하나다.
대운하 구상을 애초부터 반대해왔던 친박 진영과 야당들은 반대 여론의 힘을 바탕으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4월 총선을 통해 물줄기를 돌린 `대운하 구상` 공약이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진석 기자 ojs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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