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그리고 양지> 보문시장의 무허가 점포들

최근들어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재래시장 보문시장에 대한 단속이 다소 강화됐다. 무허가 점포들이라는 점에서인데 중요한 건 이곳이 소방도로라는 이유에서다. 원래는 소방도로인데 상인들로 인해 무허가 점포가 하나둘씩 생겨났다는 한 구청직원의 목소리도 들린다.


단속내용에는 주로 좁은 시장골목에 툭 튀어나온 물건들과 음식들을 길이 넓혀지도록 그리고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점포 쪽으로 밀어넣으라는 지시가 담겨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물건들을 당길 여유도 없거니와 그들 뒤로는 바로 개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맞은편엔 합법적으로 세워진 건물 속에서 장사를 하는 점포가 있어 그 주인들보고 물건을 당기거나 밀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로 포장마차류로 이루어진 무허가 점포들. 법대로 따져 국가에서 밀어붙이면, 한마디로 그들을 낭떠러지로 몰아내는 것이다. 아니면 대운하 파서 남은 모래 모셔와 점포 바로 뒤, 물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그 여유있는 공간을 적당히 메워 점포를 든든히 받쳐주던가.   

 
보문시장이 먼저인지, 소방도로가 먼저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상인들도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소방도로라고 닦아놓은 곳에 무허가점포들이 들어섰던 건지, 무허가 점포들이 들어선 후 이곳을 소방도로로 칭한 건지는 너무 오래된 역사라 시장의 상인들은 다들 머리만 긁적인다. 보문시장은 수십년동안 장사해온 상인들로 구성된 편인데 그들도 언제부터 소방도로였지는지 의아해 한다. 인근 소방서와 경찰서 그리고 구청 직원 등이 "소방도로"라고 꽤 오랫동안 인식시켜준 탓인지 이제는 반신반의하는 편이다.


소방도로면 어떠리. 다들 이제껏 별탈 없이 장사해온 편이다. 게다가 20년 가까이 장사를 한 김 모씨(58세)는 자신이 여기서 발붙인 이래로 한번도 불이 난적 없다고도 말한다. 그 이전에도 불이 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단다. 그런데 단속이 강화된 이유는 아무래도 정권교체시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며칠후면 소방서, 경찰서, 구청, 이 세곳에서 한꺼번에 단속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까지 정권교체 시기때 그들이 이렇게 민감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불난적도 없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김 모씨는 고개를 저으며 기자에게 오히려 이유가 뭐겠냐고 되묻는다.

"글쎄요. 보문시장의 안정을 위해서겠죠. 불나면 큰일나잖아요. 국가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곁에 있는 박 모(56세)씨는 "지금 무슨 소리하냐"며 장난기 섞인 기자의 대답을 꾸짖는다.



"구청에 시민들 제보가 늘 들어왔었대. 자주 들어오는 편은 아니고 말야. 제보자는 소방도로라는 사실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길이 좁고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어. 특히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이 극성이거든. 유모차 갈 길도 없다고 제보하나봐.
하긴 길이 좁긴 좁지. 그나저나 그럼 우리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여기 와서 물건을 사지 말던가. 필요한 거 사가서 길이 좁다고 투덜거리는데 여기 무허가로 장사하는 사람들 다 몰아내라는 소린가?"

이렇게 얘기하는 와중에 시장상인들과 친하게 보이는 동네 주민 몇몇이 지나간다. 인사 인사 인사. 제보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제보의 성격과는 달리 그저 평화로워 보이는 보문시장의 풍경이다.


그런데 길이 좁다는 제보와 소방도로라는 조건. 그 두 조건이 합세해 누군가 독한 마음을 먹으면 더 이상 이들에게는 시장을 사수하기 위해 주장할 논리나 권리는 사라질 법하다. 하지만 야채를 파는 할머니께서는 다소 여유롭게 받아들인다.
"설마 장사 접으라고 하겠어. 여기서 몇십년을 장사했는데. 이때까지 여기 시장서 그런 문제는 없었어. 정권 바뀌고 으레 소방서, 경찰서, 구청에서 폼잡는 거겠지. 근데 걔들이 요즘 들어 자주 찾아오는 것 같기는 하더만."

김 모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잘한 건 없죠. 법적으로도 그렇고…. 이때까지 장사하게 해준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죠. 이제껏 운이 좋았죠. 국유지에 이렇게 많은 영역을 침범했으니. 그런데 이렇게 툭 튀어나오지 않으면 먹고 살길이 없는 거죠.
다른 곳의 상인들은 구청 직원들이 대거 투입되는 바람에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지금까지 별탈없이 지냈으니 단속이 심해졌다고 해서 먼저 대응하고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설마 별일 있겠나요."


그러면서도 약간은 불안한 기색인가 보다. 어떻게 된 게 소방서, 경찰서, 구청 직원들이 앞으로 언제 오는지 손에 꿰고 있다. 1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나오더라도 언제 왔다 갔는지 눈에 띄지도 않던 구청 직원들이 최근 들어 얼굴 외울 정도로 체크하고 가니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시장바닥, 뭐 하나 잘못되면 당장 길바닥에 주저앉게 생겼으니 신경이 날카로와진 탓이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반복하는 길게 이어진 시장길은 사실 소방차는 커녕 리어카도 통과할 수 없는 좁은 길들이 대부분이다. 불나면 끝장. 무허가 점포를 개천 쪽으로 싹 다밀어버리더라도 소방차 정도의 대형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다. 불이 나면 어떤 상황에 치닫게 되냐고 물어봤더니 김 모씨는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며 매운 손으로 기자의 어깨를 친다.

"만약 불나면 뒤로 다 빼야겠죠. 그건 맞은편의 건물에 불이 나던 이쪽에 불이 나던 마찬가지죠. 포장 다 접고 저기 뒤에 뚝 가장자리에 바짝 붙이던가 급하다 싶으면 그냥 뚝밑으로 그냥 쓸어버리던가…."


길이 좁다는 제보, 소방도로라는 조건. 여기서 이들의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불이라도 나면 도로의 특성상 다 쓸려버릴게 뻔한 무허가 점포. 그러나 불이 난적이 없기에 그 고민은 잠시 접도록 하자. 앞선 제보와 조건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모하느냐가 관건이다. 강화된다면 답 없다. 만약 현 정부가 깨끗한 소방도로 건설에 나서면 청계천 청소했듯 불도저식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들 상인들은 마음 깊숙이 굳게 믿고 있다. 이곳만은 절대 그런 불행한 일 없다는 것을…. 제보와 소방도로 명목으로 나오는 세 기관의 행보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박 모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아직은 살아 숨쉬는 싱싱한 생선들을 가리키며 카메라에 담아 시장 광고라도 해달라는 농담도 던진다. 세 기관의 행보, 괜한 걱정이었나?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