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그리고 양지> 소방서와 경찰서를 찾아서

최근 들어 소방서와 경찰서가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소방서는 숭례문으로 경찰서는 어린이 유괴 납치 사건으로 하여금 국민들의 질타를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아니 원인은 제쳐두고 이 두 기관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어떠할까. 숭례문이 불탔다고 해서 소방관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지 말고 또한 어린이 유괴 납치건을 경찰관의 근무태만으로만 몰지 말았으면 하는 취지에서 기약없이 길을 나섰다. 먼저 종로에 있는 한 소방서에 들렀다.

홍보팀의 송 모 대원 이하 몇몇 소방관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이들과 함께 인근 식당을 찾았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은 얘기를 하면서도 엄청난 속도전을 치르더라는 것이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 다들 수저를 놓아버렸다.

"기자님, 천천히 드세요. 우린 앉아서 얘기 좀 나눌게요."
눈치를 봐서는 다들 좀이 쑤셔 보인다. "저도 다 먹었어요. 그냥 나갑시다."
항상 24시간 긴장상태로 대기중인 소방관들의 모습이다. 식사시간때 불이라도 나면 냉큼 일어서야 하기에 한술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식습관이 몸에 배인 듯 하다. 인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평일 점심시간 `뜨락 축제`로 한창이다. 세종문화회관 출신의 음악가들이 거리 공연으로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점심시간 `잠깐` 즐겁게 다가온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소방관들의 애환도 흘러나온다. 송 대원의 얘기다.



"소방관들 일주일 근무시간이 무려 84∼86시간이에요. 일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노동자들 근무시간도 초과하는 시간이죠. 아침 9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격일제로 근무한답니다. 놀라운 수치죠."
"전쟁 나면 가장 바쁘겠어요"라는 기자의 농담에 다들 `어이 없어` 하기도 했다. 하여간 주말 얘기도 나온다.   
"토·일요일이 어딨나요. 토·일요일 없는 건 그렇다치고 일반사람들이랑 생활 사이클이 달라서 잘 어울리지도 못해요. 특별한 일 아니면 친구들 만나기도 힘들죠. 그저 같이 근무하는 소방관들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대부분이에요. 아침에 집에 가도 문제에요. 요즘 다들 맞벌이 부부라 집에도 없고 아이들도 학교 가고 없죠. 가끔씩 술 안마시고 집에 가면 이게 내가 지향하던 삶인가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근무 외 시간은 어떻게 어울릴까. 정 모 대원도 마찬가지로 주로 낮술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치고 같이 근무한 동료들이랑 술을 마시죠. 아침부터 술을 마시다보면 어느덧 해가 중천에 뜹니다. 어쩔 땐 저게 태양인지, 달인지 분간이 안가죠. 허허. 술을 안마시면 되지 않느냐고요? 마실 수밖에 없어요. 왜냐? 이건 어찌보면 핑계일수 있지만…. 불이 한 달에 20번 정도 나거든요. 물론 20번 넘게 날 때도 있고요. 큰불이라도 나면 집에서 쉬던 사람도 출동명령 떨어지고요. 하여간 삼일에 두 번꼴이라 칩시다. 불 한번 끄고 그 날을 정리하면 목구멍에서 시커먼 가래가 올라와요. 그거 세척하려면 기름기 많은 음식에 소주 한잔이 절실하죠. 시골에서 농약치고 기관지 세척하기 위해 고기 구워먹는 농민들이나 매 한가지에요."

김 모 대원은 "그래서 소방관이 빨리 죽더라"고 말한다. 김 대원에 따르면 얼마전에 퇴임한 60대 소방관은 퇴임한지 1년도 안돼 폐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신랑감으로 소방관을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단다. 김 대원도 아직 총각이다.      


송 대원은 "결혼 못한 40대 노총각 노처녀, 우리 소방관에도 많습니다. 허허. 여기 소방서는 아직 그런적 없지만 다른 소방관에서는 아내가 바람나서 파탄 난 경우도 종종 들려옵니다.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일이 발생하고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거겠죠. 일반인들과 생활할 수 없는 이런 현실, 이래서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이고 나발이고 도중에 관두는 사람도 꽤 있답니다. 조만간 3교대로 바뀔 수 있다던데 기대해 봐야죠."

24시간 항시 긴장하는 소방관. 이날 뜨락 축제가 막을 내리자 대기시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대원중 일부는 소방차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어 긴장감에 있어서는 흡사하겠지만 경찰관들의 속내는 이와 좀 다를 것으로 기대하며 경찰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된 것일까. 경찰서는 소방서와는 달리 서내로의 접근부터가 까다로웠다. 서울시내 한 복판의 어느 경찰서. 입구에서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충성!"
"…도대체 강력 몇 팀 누굴 만나러 오셨냐구요. 약속은 하고 오셨나요?"
"아 글쎄 약속했다니깐요."

마침 신분을 밝히지 않았던 터, 말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다고 했던가. 먼저 신분을 밝히는 것보다 오히려 이 방법이 더 수월하리라 판단하고 기자는 자세를 슬쩍 틀어 어깨에 매고 있던 카메라 가방을 어필한다.

경계업무를 보고 있던 보초는 흠칫하며 "기자…세요? 취재하러 오셨나보네요. 저쪽으로 들어가세요"하고 그냥 길을 터줘버린다. 무혈입성한 강력계 문 앞에 들어서자 짜증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문을 슬쩍 여니 다들 분주하기 짝이 없다. 서류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러다 어느 형사가 기자를 보더니 딱 멈추어 섰다. "누구세요? 사진기 치우세요."

자초지정을 얘기하자 서류를 들고 어디론가 가려던 그는 무게중심을 문밖으로 둔채 고개만 돌리고 빠르게 답변한다. 

"지금 그럴 시간 없습니다. 우리 지금 다 사건 때문에 나갑니다. 그리고 허가 없이 취재 못해요. 뭘 취재하려는지 몰라도 먼저 홍보담당관한테 가서 허락을 맞고 약속날짜를 잡으세요. 아니면 바로 윗층의 폭력팀 당직실 가서 문의해봐요. 거긴 시간이 좀 날려나."

폭력팀으로 향했다. 분명히 폭력팀 당직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당직실이면 단칸방 정도인줄 예상했는데 너비가 100평은 돼 보였다. 여기도 마찬가지, 은행업무 보듯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항상 무엇인가를 경계하는 형사의 눈. 바쁜 와중에도 기자가 문 앞에 들어서자 마자 발동됐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형사 한 명이 우렁찬 목소리로 "어떻게 왔나요?"하며 눈을 부라린다.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기자를 주시한다. 취지를 설명해봤자 턱도 없다. 홍보담당관에서 먼저 가서 허락 받고 다시 여기 와서 어쩌고 저쩌고….

한번 취재하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일단 폭렴팀 윗층에 있다던 홍보실로 향했다. 그 와중 `서장실`이 눈에 띄었다. 라는 친밀감을 자극하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래. 복잡한 과정 생략하자. 서장한테 부탁하자.`

불행히도 서장실은 비어 있었고 홍보실로 향했다. 홍보관의 설명 역시 기자의 귀를 피곤하게 했다. 취재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 기자는 잘라 물었다. "그냥 서장한테 부탁할게요."

홍보관은 화들짝 놀라며 "무슨 소리하세요. 안돼요"하고 강하게 부정한다.
"저기 `누구나 만날 수 있다`고 적혔던데요?"
홍보관은 이리저리 둘러대며 먼저 전화를 달라고 부탁한다. 언제 전화하고 언제 약속 잡자는 것인지…. 그렇게 기약없이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경찰서 입구에서는 별 제재 받지 않고 운이 좋아 들어왔지만 막상 들어오니 군대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보안과 원칙과 위계질서`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경찰서. 그 숨 막히는 위계질서에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숨가쁘게 생활하는 현장의 한 단면을 본 것으로도 취재 계획과 별개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사들에게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한 국가의 군대로 따지면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움직임들을 기자는 분명히 보았다. 이는 물어보나 마나 예상된 대답들이 나올 것으로 짐작이 가는 현상들인 셈이다. 만약 인터뷰 없는 기사가 존재한다면 기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두고 사진 한컷 제대로 못찍어 나름 의미 있는 현장스케치로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이 스스로 답답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들은 어린 아이 유괴사건과 관련 근무태만이란 비난해 대해 핑계댈 시간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 여겨본다. 물론 소방서가 시간이 남아 돌아 취재에 응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 두는 바이다. 끝으로 화재율과 범죄율이 줄어들기를 염원한다. 공민재 기자 selfcom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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