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 의료민영화정책 논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 이어 민심의 화살이 이명박 정부의 각종 민영화 정책을 정조준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영화 `식코`가 때마침 국내 개봉을 하면서 미국식 의료보험을 지켜본 국민들의 불안감은 한층 더 증폭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해 의무적으로 진료하도록 하는 제도) 폐지 논란 등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보건복지가족부가 "건강보험 민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당연지정제 유지 방침을 재차 밝히며 `여론 진화`에 나서는 분위기지만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과 맞물려 국민들의 정부 불신은 높아지고 있다.

미 쇠고기 수입파동 맞물려 정부 불신 높아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20일 당초 보도일정에도 없던 `건강보험 민영화에 대한 정부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복지부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당연지정제 폐지, 미국식 민영보험 도입, 건강보험 민영화 등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해 확인되지 아니한 여러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광우병 `괴담`에 이은 `의료민영화 괴담론`을 꺼내들었다.
골자는 두 가지다.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현재처럼 그대로 유지하고 그에 따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확고히 하겠다는 것.
복지부는 건강보험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최근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과도 전혀 무관하며, 검토한 적도 그럴 계획도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주체가 되는 현재의 건강보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서 네덜란드 방식으로 개편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혜택이 매우 높지만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장기간 진료대기 등 우리나라 여건과 맞지 않아 그대로 도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실제로 복지부는 네덜란드식 의료보험 개혁 연구를 위해 보험정책과 임종규 팀장을 필두로 건보공단 관계자들이 지난달 14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로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현지 출장 결과, 오히려 우리나라가 전국민 의료보장 실시, 환자의 의료기관 접근 용이,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단일보험체계 등으로 네덜란드보다 앞서가는 면도 상당히 많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정부가 건강보험민영화 괴담을 잠재우기 위해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 미국식 의료체계로 갈 것이란 불안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논란의 불씨를 정부 스스로 지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줄곧 `의료 산업화`를 강조하고 있는데다 기획재정부와 복지부가 의료정책에 있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당초 기획재정부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이유로 `공 사보험 정보 공유` 추진 방침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은 건보공단에 있는 개인의 질병정보가 민간기업에 제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개인 질병 정보를 민영보험사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단 논란이 중단됐지만, 여전히 정부부처간 엇박자는 계속되고 있다.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도입 의료양극화 확대

복지부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와 관련해서 "일부 국민들이 `건강보험 민영화`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오해하고 있다"며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는 병실료 차액 등 공보험인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 공보험을 보충하기 위한 차원에서 민영의료보험의 적정화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민영의료보험은 공보험 `보충형`에 한정하고 있고, 때문에 `건강보험 민영화`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는 관계가 없다는 게 복지부의 주장이다. 복지부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라는 용어보다 `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의 보완관계 및 명확화`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고 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복지부의 설명과 달리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지난 13일과 20일부터 환자들이 부담한 실비용 대부분을 보장해주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상품 판매에 본격 돌입했다. 두 회사가 내놓은 상품은 질병의 종류와 상관없이 환자 개인이 실제 부담한 치료비(건강보험 본인부담금+건강보험 외 비급여)의 80%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도입과 관련해 그동안 보건의료단체들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악화시키고, 의료양극화를 확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촉구해왔다.
실손형 보험 구매 계층은 공보험 보장성 확대의 필요성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설령 공보험의 보장성이 줄어들더라도 이들은 실손형 보험으로 그 빈 자리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또 실손형 보험업계로서는 공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될수록 이윤을 창출할 시장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공보험의 보장성이 줄어들고, 그 영역을 민영보험으로 채워야지만 보험업계는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예컨대 현재 64% 수준에 불과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굳이 실손형 보험을 따로 구매할 이유도 없고, 당연히 실손형 상품을 판매할 시장도 줄어들게 된다.
이 지점에서 그간 당연지정제와 전국민건강보험 의무가입제 폐지 `괴담`이 떠돌았다. 보험사가 본 입장에서는 당연지정제와 건강보험 의무가입제가 자신들의 시장을 넓히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이 `걸림돌`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여 왔던 것.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현 정부는 40%에 이르는 본인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커녕 오히려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해결을 하고 있다"며 "즉 40%를 국민이 각자 알아서 민영의료보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당장은 건강보험 60과 민영의료보험 40의 비율로 시작하지만 신 의료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확대되는 현실에서 갈수록 민영의료보험의 영역이 커지게 되고 그 비율은 곧 역전될 것"이라며 "결국 의료의 이용은 건강보험에 가입이 아닌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실손형 보험 도입 등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에 따른 의료 양극화를 경고했다.

의료비 비싸 큰 질병 발생시 빈곤층 추락 우려

한편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복지부가 지난 20일 `건강보험 민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나 단지 오해를 해명하기 위한 자료로 "복지부는 국민들이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즉, 국민들이 정작 불안해하는 것은 `의료서비스의 민영화, 산업화`로 복지부는 이에 전혀 해명을 하지 않았고 국민들 특히 네티즌들이 의료민영화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된 것은 영화 식코의 상영과 관련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방향이 궁극적으로 미국적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보험회사가 국민들을 가려 보험에 가입시키며 특히 질병을 가진 자는 절대 보험회사가 가입시켜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보험회사가 이윤 확대를 위해 심지어 보험가입자가 사망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의사들을 통해 이런 행동을 정당화할 지도 모르며 보험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갖고 있더라도 의료비가 너무 비싸 가정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건강네트워크는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밀어붙이는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만약 병원의 영리법인을 허용하면 돈벌이를 위한 진료, 상업화된 진료가 나타날 것이 뻔하고 경제특구지역에서 건강보험 수가를 따르지 않는 비싼 진료비의 병원이 등장하는 한편 전국민의 개인질병정보를 보험회사에게 넘겨주려는 태도 등을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는 건세 측의 설명이다.
특히 건강보험 확대정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방안을 검토하는 것을 지적하며 "병원의 영리법인 허용을 즉각 중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네트워크는 "전국민의 개인질병정보를 민간보험회사에 넘겨주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민간의료보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특구내 건강보험 진료수가의 적용을 받지 않고 진료비가 비싼 병원을 세울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 보장수준을 80%로 끌어올리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한편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예산을 확대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보건의료서비스로 개선할 것"을 당부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영리병원으로 인한 의료비 폭등도 건강보험의 재정에 무리를 줄 것이고,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역시 건강보험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허용되면 결국 건강보험 제도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또 "병원협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리병원이 허용이 되면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의사를 밝힌 병원이 무려 80%나 된다"며 "기껏 공공병원이 10%에 불과한 현실에서 건강보험증만으로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영리병원 허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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