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그리고 양지> 노점상들을 찾아서

연일 때 아닌 더위다. 여름이 일찍 찾아온 모양이다. 4월부터 계속된 이 더위에, 계절에 민감한 각종 음식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까. 거리의 사람들이 추운 겨울에 가장 선호하는 오뎅과 오뎅 국물 등은 혹 방치돼(?) 있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 노점상들은 1년 365일 메뉴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날씨를 떠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속에서 어떤 고민들을 하며 버티고 있을까.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골목길 모퉁이의 한 노점상. 노점상 주인은 "오뎅은 당연히 겨울에 잘 팔려요"라고 대답한다. 여기 노점상은 떡볶기와 순대, 튀김 등도 곁들여 판다. 계절이 바뀌면 메뉴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할 수 있는 음식이야 많죠. 근데 메뉴를 바꾸진 못해요. 지금 이것도 불안불안하게 만들며 파는 거에요. 만약 김밥을 만들면 건너편 김밥집이 이 노점상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에요. 이 동네 매출에 비해 점포세가 높은 편이라 점포를 둔 음식가게들이 상당히 민감하거든요. 사실 떡볶기도 마음놓고 못 팔아요. 옆에 있는 떡볶기 가게에 치명적일 수도 있거든요. 제가 만드는 떡볶기의 맛을 떠나 점포를 둔 떡볶기 가게의 매출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오뎅을 비롯해 계절에 맞게 메뉴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이렇듯 주변 상가들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 엄연히 불법노점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장사를 하는 가게들에게 큰 소리 낼 수도 없다. 한편 떡볶기 전문 식당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했다. 떡볶기 식당에 주인은 없었고 마침 근처 컴퓨터 가게의 수리공인 주인 동생에게 어느 정도 한숨 섞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만약 누님(떡볶기 가게 주인) 입장이었으면 저기 노점상 당장 신고해 버렸을 거에요. 지금 누님 사정이 상당히 힘들거든요. 솔직히 저기 노점상 불법이잖아요. 얄미워 죽겠어요."

동생은 노점에서 단 한번도 음식을 사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노점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떠나 다른 특별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갑자기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책상 위를 한번 훑었다. 그리고 기자에게 손을 펴며 새까맣게 된 자신의 손가락을 펼친다.

"이거 봐요. 우리 가게 5분만 문열어놓으면 이렇게 먼지가 쌓여요. 여기 상당히 더러운 거리거든요. 먼지가 장난 아니죠. 거리 끝 마사회 장외발매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와 담뱃재, 좁은 골목임에도 늘 붐비는 자동차의 매연까지…. 거기 노출된 노점상 음식은 얼마나 더럽겠어요. 정이 뚝 떨어져요."


거리에서 오뎅을 자주 먹던 기자도 순간 움찔했다. `웬만하면 사먹지 말아야겠다.`
대로변에 있는 노점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종로의 어느 노점상. "그렇게 따지면 뭐 먹고 사나요?" 라고 말하는 당찬 주인.

계절을 떠나 대부분의 노점에 오뎅은 단골메뉴다. 여기도 마찬가지. 물론 주인은 요즘따라 오뎅은 인기가 없다며 한숨 짓는다. 대신 이곳은 다른 노점에서 찾아보기 힘든 닭염통부위를 꼬치형식으로 구워서 팔고 있다. 그래서 닭꼬치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

동네 골목길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이곳 노점으로 하나 둘씩 들어오는 손님들이 종종 눈에 띈다. 골목길 안 허름한 집들에 살고 있는 이들이다. 주로 나이든 백수나 고령의 손님들. 닭꼬치를 안주로 소주를 한 잔 두 잔 기울인다. 그들이 떠난 후 여기 노점엔 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오가느냐고 묻자 주인은 대답하기 싫다는 눈치다다. 기자는 일부러 닭꼬치와 오뎅을 사먹으며 요리 실력 칭찬까지 해가며 정성을 기울였으나 예상보다 주인은 냉랭했다.


"사진 찍지 마세요!"
`전노련`에 소속돼 있다길래 전노련 사무처 사람들과 친하다고 너스레를 떨며 다가섰으나 어림 반푼도 없었다.
"기자들 무서워요. 손님도 웬지 부담스러워요. 그냥 제가 만드는 음식 맛있게 먹고 가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리저리 달래가며 부담 갖지 말라고, 좋은 취지로 기사를 쓴다고 협박(?)해도 막무가내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닌척, 이것저것 얘기를 건네봐도 통하지 않는다. 

"질문 아닌 질문 하시는 거 알아요. 안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은근히 둘러대며 질문하시네요. 다 보여요."

건진 건 고작 주인의 딸이 대학생이라는 사실 따위의 쓸데 없는 정보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본 결과 누구나 염통 부위를 이렇게 특화시켜서 장사하면 수입이 꽤 짭짤할 것 같았다. 남녀 불문하고 어린 학생들도 자주 찾았다. 주인은 주변에 학교가 많아서 단골 학생들도 많다고 했다. 오뎅은 그렇다치고 닭꼬치만은 계절과 관계없이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주인은 의외의 대답을 한다.
"이상하게 여름이랑 겨울은 장사가 안되더라고요."

왜 그럴까. 기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여름은 더워서 뜨끈뜨끈한 닭꼬치를 안 먹게 되고 겨울은 추워서 이렇게 노출된 노점상에 기다리고 서서 먹는걸 꺼리는 게 아닐까요?"하고 되물었다. 주인은 긴가민가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교 탓이다. 학생들 방학이 끼어있는 계절 아닌가. 닭꼬치가 아무리 맛있어도 일부러 학교 근처까지 나와서 사먹진 않을 것이다.

문을 닫은 노점상들도 눈에 띈다. 호떡을 파는 노점 주인에게 물었다.
"주변에 저런 곳은 왜 문닫았나요?"


주인은 이유야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버티는 것도 한계에 이르지 않았겠느냐고 얘기한다. 날씨와 무관하다. 오뎅, 떡볶기, 튀김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연속으로 줄 서 있으면 당연히 그중 몇 개 노점상은 버티지 못한다는 지론이다. 요리 솜씨에 따른 이유가 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몇몇 노점으로 손님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음식들이 저리 지겹게 나열돼 있으면 의미 없는 경쟁만 하게 되고 위험하죠. 거리의 손님들이 그런 음식을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저쪽처럼 닭염통도 팔고 저처럼 호떡도 팔고 해야죠. 특수화 시켜야죠."

한편 동네 구멍가게나 마트는 날씨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의외로 영향 받는 식품이 있었다.

"계절마다 특별히 매출액이 차이가 나는 건 모르겠어요. 다만 여름 때면 라면 매출액이 떨어져요.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라면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에 라면 잘 팔리거든요. 날씨에 영향 받는 식품은 또 있습니다. 음료수는 여름에 잘 팔리죠. 뭐 그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셔도 알겁니다."


`오뎅만 팔지 않는 한` 날씨 때문에 장사를 망치는 음식 가게는 없어 보인다. 오뎅 국물로 무더워진 속을 시원한 음료수로 달래며 돌아오는 길, 다가올 다른 계절에 노점들이 새로운 음식들로 손님을 반기길 기원해본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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