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 양지> 촛불문화제의 또다른 풍경

연일 이어지는 촛불문화제에 시청과 광화문 일대는 수천 수만명의 집회 참가자들로 북적거린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저녁시간부터 새벽까지 홀로, 때론 친구, 가족 등과 함께 하며 촛불문화제를 축제로 즐기는 눈치다. 장시간 문화제에 참가하다보면 입이 심심하기도 하고 허기지게 마련. 마침 준비된 도시락을 꺼내드는 시민들도 종종 눈에 띄지만 대부분 참가자들은 준비된 게 없다. 물 한 통으로 장시간 견디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간파했는지 언제부턴가 김밥 장수, 번데기 장수 등 일명 `보따리 아주머니들`이 문화제 장소 곳곳에 포진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다. 보따리 음식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그닥 인기가 없었지만 문화제가 계속될수록 청년층과 중년층이 대거 참여함에 따라 옛맛이 그리웠던 이들 성년들에게 보따리 장수들의 음식은 그야말로 선물보따리인 셈이다. 김밥은 한줄에 2000원, 번데기 한 사발에 1000원, 꽈배기 단팥빵 등의 묶음은 2000원씩 팔려 나갔다. 반응은 날이 갈수록 좋다고 한다.



"대목입니다. 처음에 한 솥만 들고 와서 장사했는데 요즘은 두 솥 세 솥 씩 실어와요. 평소 매출액의 다섯 배를 넘어선답니다. 특히 시청앞 잔디밭은 공원 분위기가 나서 먹거리에 사람들 손이 자주 가나 봅니다."

그럼 평소에 어디서 장사를 했을까.
"딱히 정해진 건 아니에요. 주로 지하철이나 공원에서 하죠. 대학가 근처나 탑골 공원도 그 대상이고요. 지하철이나 어디나 그 자리에 며칠 있어보고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한참 그 자리를 뜨지 않아요. 당분간 그 자리에 출퇴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단골 아닌 단골도 생기는 거고…. 요즘은 여기서 쇠고기 반대 집회하는 시골 노인들이 단골이네요. 그나저나 그 노인네들 자꾸 깎아달라고 해서 큰일이네…. 그러고 보니 단골이 여기 저기 많긴 하네요."



허기진 젊은층과 중장년층들이 주로 애용하는 먹거리기인 하나 청소년들과 갓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 층에서는 인기가 없다고 한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이들이기에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학생들은 집회 참가 직전 편의점이나 제과점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고급먹거리`를 챙겨온다. 집회 도중 배가 고프더라도 보따리 아주머니들의 음식에는 무심하게 지나친다. 지나치고 돌아올 때면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 음식점들의 상표가 달린 비닐 봉지를 보물보따리 마냥 감싸고 있다.
가족단위로 참가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촛불문화제 가는 날은 `소풍 가는 날`이다.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하나 둘씩 꺼내든다. 보따리 아주머니가 파는 메뉴보다 진열된 음식이 많다. 김밥은 물론이고 샌드위치, 햄버거, 치킨, 카푸치노 커피 등 고급 음식 일색이다. 음식을 준비해온 주부들은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눈치다.
"저도 젊은 시절에 길거리서 많이 사먹었죠. 그런데 애도 낳고 살다보니 철이 들었나.(웃음) 당연히 집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에 손이 가죠.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게 먹이고 있어요. 비단 보따리 아주머니 음식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의 음식들은 웬만하면 애들한테 사먹이지 않죠."



보따리 장수 아주머니들도 입을 모은다.
"당연한거 아니겠수. 원래 우리 장사도 특정 부류가 있죠. 이 맛을 알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하죠. 가족단위나 젊은 애들한테 팔려고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요. 그래도 대부분은 군소리 않고 사먹어요. 길거리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안그러면 노점상서 떡볶기, 오뎅 등은 어떻게 사먹나."      

문화제 현장에는 먹거리 뿐 아니라 다른 장사꾼들도 쾌재를 불렀다. 장마도 아닌데 5월과 6월에 걸쳐 비내리는 날이 잦았던 탓. 문화제 참가자들은 때 아닌 소낙비에 당황했고 때마침 비옷과 우산을 파는 장사꾼들의 위치선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청 앞 지하철역은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맞고서도 문화제에 참가하고자 하는 인파들로 인해 입구부터 밀린다. 명절 고속도로도 아닌 것이 입구에서 출구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다.



우산보다는 주로 움직이기 편한 얇은 비옷이 잘 팔린다. 한 장에 1000원. 삽시간에 팔려나간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 앞에서도 없어서 못파에 이른다. 비옷장수는 어느새 자신이 입은 비옷까지 팔아 해치우고 기분좋게 비를 맞으며 돈뭉치를 챙긴다.
"오늘 처음이라 200장 밖에 안들고 왔는데 내일부터는 한 500장씩 챙겨야겠어요. 평소 비올 때 말이죠, 지하철이나 지하철 입구에서는 죽어라 팔아도 안팔리던데 집회때문인지 잘 팔리네요."

가격을 올려도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비옷장수는 고개를 흔든다.
"잘 팔리는 이유가 1000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1000원이나 2000원 사실 별로 차이나는 액수는 아니지만 사람들 심리가 그렇잖아요. 1000원 짜리 한 장 그저 주는 세상이니. 학생들이 대부분 많이 사 입는데 학생들 입장에서도 1000원이 적당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한번 사두면 집회 뿐 아니라 평소 비 올 때도 간편하게 챙길 수 있는 `물건`이잖아요. 그래서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비옷장수는 거리행진에도 따라다닌단다. 먹거리 장수 아주머니들이야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다니기 힘든 문제도 있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음식을 염에 두지 않기에 괜한 고생이라는 전언이다. 하지만 비옷장수의 경우 일기예보에 비 소식만 나오면 거리행진까지 참가해 도중에 비옷을 찾는 시민들에게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행진에 행진을 거듭하게 해줄 `용기와 희망`을 판단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다. 주로 어린 학생들이 열광한다.
"우산은 들고 다니기 불편하고 무거워서 우산 들고 거리 행진이라도 하는 날엔 금새 지쳐요. 그런데 이 비옷은 얇고 가벼워서 부담이 없어요. 아무리 돈 없는 학생이라도 1000원 아껴서 비 맞을 정도로 미련하겠나요."        
무더운 6월이다. 한동안 누그러지지 않을 듯한 촛불문화제 현장이다. 떼돈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리도 좀 벌어보자"고 통곡(?)하는 이들 보따리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6월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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