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사라져가는 재래시장을 찾아서-동대문시장

시끌벅적한 모습과 함께 넉넉한 인심, 오가는 정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재래시장이 요즈음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재래시장 자리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서는 풍경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할인마트의 등장은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기는 했다. 재래시장과는 달리 편리하고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팔고, 깨끗이 씻겨져 깔끔하게 포장돼 나오는 야채를 팔고, 무엇보다 한 건물 안에서 먹거리 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부분의 물건을 살 수 있게 됨으로써 시간 절약도 용이해졌다. 그래서인지 재래시장은 대형할인점에 대한 경계를 늘 늦추고 있지 않다. <위클리서울>은 연중 특별 기획으로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이 기획물에서는 재래시장의 현주소와 그곳에서 일하며 삶을 엮어가는 시장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다뤄진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동대문 일대의 재래시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연중 매출이 가장 많은 시기인 여름철에 고객들이 대형점 위주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영업시간마저 대폭 늘어나자 재래시장과 중소형 지역 유통점들은 울상을 짓는다.

동대문 인근 대형할인점은 지난달부터 폐점시간을 밤 11시에서 12시까지 1시간 늘려 연장영업에 돌입했다. 수도권 점포의 경우 대부분 폐점시간이 밤 12시인데다 연장영업에 대해 문의하는 소비자들이 늘어 폐점시간을 1시간 연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름철에 한해 밤 12시까지 연장영업을 결정했습니다. 인근 대형점들이 대부분 밤 12시 영업을 하고 있어 경쟁이 불가피해요."



한 야채 장수의 고충이다. 그는 이어 거대유통자본의 횡포라고 지적한다.
"대형마트 1개소가 들어서면 7개의 재래시장이 무너지고 대형슈퍼마켓은 재래시장과 아파트단지 등 지역주민 생활터전 깊숙이 침투해 골목상권마저 초토화시키는 거대유통자본의 횡포에요. 상인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인근 대형할인점 입점 저지 운동을 펴기로 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시와 시의회는 대형슈퍼마켓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예방적 대책을 마련하고 입점을 반대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실정이죠."

그래도 최근 고물가로 인해 야채장수 등 식품쪽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그나마 견딜만 하다는 전언이다. 외식을 자제하는 서민들 덕택이다.
외식비 등을 아끼려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사람이 늘어 솔직히 이곳 매출은 증가한 편이에요. 뭐 이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 그나저나 생필품 파는 상인들이 정말 힘겨워 합니다."



이런 와중 나물 파는 할머니는 여전히 불만이다.
"비싼 옷은 아무 말 없이 사입으면서 나물 파는 할머니한테 500원 깎는 싸가지 없는 아줌마들이 많어. 이거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내가 워낙 흥정에 약해서 말이지."

그나저나 물가가 치솟음에 따라 불똥을 맞는 건 재래시장의 생필품 장수들이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대부분 고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맨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고물가로 인해 자신들만 피해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할인점은 그래도 제자리 걸음이라고 하네요. 어차피 거긴 잘사는 사람들이 애용하니깐요. 그런데 재래시장은 달라요. 가전이나 의류, 잡화 부문은 줄이고 있는 가계 소비가 확연히 보입니다."

수입품을 파는 한 상인도 울상이다. 가방 등 잡화를 파는 박모 씨의 얘기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은 중국에서의 생산 비용도 오르고 물류 비용도 뛰면서 제품 공급도 지난해보다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지난달보다 30% 넘게 매출이 줄었습니다."

큰 규모의 재래시장인 밀리오레 근처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대문 일대 의류상가엔 간간이 관광객과 젊은 소비자들만 상점을 기웃거릴 뿐 정작 상품을 구입하는 쇼핑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의류를 팔고 있는 김 모씨의 얘기다.

"여름 시즌 상품들이 단가가 낮은 데다 지난해 이맘때 비해서도 3분의 1로 줄은 것 같습니다. 일본 관광객들도 명동이나 남대문에서 소비가 많은 것 같고   . 여기는 한산한 편이네요."



의류 도매상들은 그나마 지방에서 올라오는 장사꾼들 때문에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단다.
"여기 도매상들이 많잖아요. 밤 11시 되면 관광버스가 몇 대씩 올라옵니다. 다 지방에서 옷을 왕창 구입하기 위해 올라오는 상인들이죠. 새벽 4시까지 고르고 흥정하고 이러다가 동트기 전에 내려가곤 합니다. 새벽되면 여기 시끌벅적거리죠."

저렴한 가격대로 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던 곱창 전문 식당, 포장마차 등도 최근 손님이 크게 줄어 초저녁에 문을 닫고 들어가는 식당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각종 재료비가 올라 기본적으로 식자재비가 크게 늘어났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 이제는 손해마저 볼 지경입니다. IMF때도 겪어봤지만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이 곳에서 10여년 장사를 했다는 최 모씨는 연일 이어지는 원자재 폭등에 고개를 젓는다.



떡볶기, 미숫가루, 팥빙수를 팔며 소주도 곁들어 파는 주변의 노점상은 다소 여유로운 풍경이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들 부담이 없어요. 주머니에 3000원만 있으면 소주 한 병에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반찬들이 깔리니 주로 주변에서 근무하는 상인들이 자주 찾아요."

서서 먹는 사람도 있고 좁은 식탁에 앉아서 먹는 사람도 있다. 다들 서로 아는 눈치다. 밥솥에는 노점상 주인이 오늘 하루 먹다가 남겨둔 밥이 보인다. 주인은 이내 밥솥을 손님들에게 건네고 손님들은 밑반찬과 밥 그리고 소주를 곁들인다.

미숫가루 한잔에 1000원. 기자는 미숫가루 한잔 마시며 돌아갈 채비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서로 정을 나누며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고유한 모습 아니겠나요. 현재 우리의 편리한 생활만을 고집하기 위해 우리 고유의 문화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죠. 다른 문화재를 보존하듯이 재래시장이라는 문화 또한 보존해 나가야 합니다. 할인마트라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을 하되, 재래시장이라는 특유의 모습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때 재래시장 돌아다니며 잘먹고 살도록 해주겠다며 광고하던데 대형할인점의 횡포는 여전하네요. 가진 자들을 위해 정치하는 것 같습니다."



소주를 한잔하던 이 곳 상인이 기자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할인마트가 삶에서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재래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줄어듦이 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장사가 되느냐 안되느냐에 달렸다. 재래시장이 있는 지역에 할인마트가 들어서려고 하면 많은 상인들은 장사까지 쉬면서 강력히 반대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갈등이 생기며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당분간 그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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