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복분자 축제와 뱀딸기

복분자 축제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위치하고 있는 도솔산 선운사에서 복분자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달려갔다. 장마 중에도 햇살이 눈부시니, 그렇게 마음이 산뜻할 수가 없다. 하늘도 축제를 축하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새로 뚫린 도로 덕분에 막힘없이 달릴 수 있으니 시원한 기분을 만끽한다.



축제는 즐겁다.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마음이 들뜨게 한다. 그런데 복분자 축제는 더욱 더 의미가 있다. 건강을 키워주는 먹을거리 웰빙축제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관이 총 동원되어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온 몸으로 누릴 수 있는 축제일수록 참여를 통해서 빛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복분자는 지리적 표시제를 처음으로 얻은 고창의 특산품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건강식품이다. 복분자라는 말은 요강이 뒤집어 진다는 뜻이다. 복분자를 먹게 되면 그만큼 건강해진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식품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축제장에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복분자를 시음하는 곳과 복분자 체취 체험 그리고 요강 던지기 대회와 각종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기획되고 준비되어 있어 좋다.



축제를 즐기고 나서 선운사로 향하였다. 선운사는 백제시대에 검단 선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산사로 향하는 입구에 서 있는 부도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백파 율사를 비롯한 고승 대덕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제법무아의 진리를 터득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철학을 실천하신 선풍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축제에 심취하여 찾는 이가 드문 천연 기념물 제367호 송악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륙에서는 가장 큰 나무로서 사시사철 늘푸른 넝쿨 식물이다. 바위를 타고 왕성한 세력으로 자라는 송악을 통해 삶의 기상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천왕문에 들어서니, 만세루가 반겨준다. 열려져 있는 문 사이로 보물 제 290 호인 선운사 대웅보전의 모습이 들어온다. 만세루는 공부하는 강당이니, 그 사이로 대웅보전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그 사이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운사 6층 석탑의 이끼가 새롭게 다가온다.



선운사는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하여 도솔암에 있는 금동보살상, 그리고 동학난 때 비기를 간직하고 있었던 마애석불 등 많은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동백숲이며, 장사송 등 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는 이 지방의 불교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거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득도하신 보리수나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곳에서 가져온 손자나무라는 안내판의 설명을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보리수나무 꽃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일까? 누구는 말을 먹고 산다고 하였다. 보리수 꽃을 바라보면서 격려와 칭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잘 한다고 칭찬을 듣게 되면 더욱 더 잘하게 되고 그 것밖에 못하느냐고 핀잔을 듣게 되면 결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고 한다.

복분자 축제의 체험을 통해 삶의 기쁨을 누리고 아울러 천년 고찰 도솔산 선운사의 아늑한 분위기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삐 서둘러 간다고 하여도 가야할 길은 결국 모두 다 똑같은 길이 아닌가? 석탑 위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를 바라보면서 인생 또한 지나고 나서 바라보면 너무 허망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축제의 즐거움을 누린 여행이었다.

뱀딸기와 유혹

"야! 뱀딸기다." 어찌나 빨간지 주변이 온통 붉은색이다. 언제 그렇게 익었을까? 누구를 그렇게 사랑하여 저리도 곱게 타오르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논두렁에 홀로 익어가고 있는 뱀딸기의 모습은 고독을 느끼게 된다.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도 그대로 전달된다.

뱀은 유혹의 화신이다. 아름다운 것에 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딸기는 달콤함이다. 뱀과 딸기가 합쳐진 이름을 풀이하면 그 뜻은 분명해진다. 유혹의 달콤함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우뚝하다. 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논두렁에 유혹의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유혹에는 필연적으로 독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아름다움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 것 또한 참담한 것이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은 넘어가도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으로 그런 정서를 억누르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고 고통이 된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하였던가? 그러나 사랑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고 시련이 있다. 감당해야 할 고통이 감내하기 어려워 우정을 그리워한다. 사랑하지 않고 친구로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큰 아픔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것은 큰 오산이다. 우정에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아픔이 있는 것이다.

사랑의 고통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려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우정에도 이런 시련은 있는 것이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또한 크기만 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견뎌야 하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편안함을 위하여 우정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문제는 집착이다. 사랑을 하던 우정을 깊이 하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랑에도 아픔이 있고 우정에도 시련은 있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긍정의 힘이다.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소유하지 못하고 소유할 수 없게 되면 자신이나 상대방을 가두려고만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긍정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던 용서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친구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다. 이렇게 긍정하게 되면 가능성이 확장된다. 가능성은 새로운 세상이다. 기존의 세상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일도 새로운 우주에서는 가능해지는 법이다.
긍정하게 되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나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이 얼마나 위대한 힘이란 말인가? 마음 한 번 돌리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긍정이다. 그런데 왜 그 것을 하지 못할까? 오만과 교만 그리고 아집과 고집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무아라는 진리를 터득하게 되면 오만도 사라지고 아집도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긍정할 수 있게 되고 나와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그 어떤 유혹에도 아무렇지 않게 된다. 유혹하면 넘어가면 된다. 그리고 긍정하고 인정하게 되면 만사형통이 된다. 무엇 하나 문제될 것이 없다. 그냥 자유인이 될 수 있다.

논두렁에 빨갛게 익은 뱀딸기를 바라보면서 사랑을 생각하고 유혹을 떠올렸다. 그러나 긍정의 힘을 위대성을 실감하게 된다. 자유인이 된다면 유혹은 이미 유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유혹에서 초월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재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허망한 생각에 젖으면서 웃는다. 뱀딸기가 참으로 곱다. <춘성 정기상님은 전북 봉동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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