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바로 앞 통인시장이 안보입니까?
이명박 대통령, 바로 앞 통인시장이 안보입니까?
  • 승인 2008.07.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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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청와대앞 통인시장

통인시장은 시장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시장 같다. 안그래도 인적이 드물어 시장이 어디 붙어있는지 찾기조차 까다롭다. 대로변 골목이지만,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시장티`가 안난다. 물론 광화문 방향 건너편은 시민들로 북적거리지만, 청와대 인근 이곳 시장은 잔인하리만큼 엄숙하고 조용하다. 한마디로 시장 `맛`이 안난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사는 곳. 조심스럽게 시장 입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시장 입구에서 얼마 안되는 거리에 떡볶이를 굽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보통 떡볶이 하면 시뻘건 고추장 범벅이 떠오를 테지만 이 집의 떡볶이는 빛깔이 예사롭지 않다.

"옛날 떡볶이야. 간장을 발라서 간을 맞추지. 아마 우리 집처럼 만드는 곳 없을걸…."

전쟁통에 피난하며 먹었음직한 모양새다. 그래도 인심은 후하다. 1000원 어치 사면 세 식구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왜 이렇게 주냐고? 이쁜 딸 같고 배가 고파 보이길래 말이지. 한 말 가면, 두 말 세 말 하는 거 보면 사람을 알 수 있지. 할머니 정성이지. 난 내 집에 온 사람들 안 그래. 이제 맘 비우고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말이지. 일할 날이 가깝겠어? 갈 날이 가깝겠어? 그러니깐 돈만 밝히지는 않지."

몇몇 방송국에서 이곳 시장을 스케치하며 떡볶이를 취재하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매번 거절했단다. 

"광고해서 뭐하겠어? 해봤자 효과는 `일주일`이야. 거기 의지하면 큰 오산이야. 요즘 시국이 어렵잖아. 기자도 정성을 들여서 글을 써야 하는 거야. 펜 하나 놀리는 건 몇 사람 죽일 수 있는 거야. 요즘 이 동네도 말이 아니지. 밤이면 밤마다 시민들이 몰려와서 투정을 해대니…. 말 한마디, 펜 하나에 상대방 죽이고 살리고 하니 똘똘하게 행동해야 해. 가장 높은 사람들도 잘 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면 그 사람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있어도 밑에 사람들은 그 말도 다 따른다고 `충성`하다가 일 커지는 게 아니겠어."



떡볶이를 씹고 있던 할아버지도 한 수 거든다. 할머니의 말벗 같다. 
"이명박 정부 문제가 참 많아. 말 조심하고, 행동 조심해야지. 국가가 혼자 알아서 돌아가는 게 아니잖아. 밑에 사람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큰일이 터지는 거지. 대통령이 시장 시절 자기 임기 끝나고 가버리고 나서 이곳 상인들이 피해를 많이 봤어. 청계천 쪽도 마찬가지겠지.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내놨어야하는데 말이야."

인근 과일가게는 파리의 계절답게 파리만 날리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최근 몇 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전문가들이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던데 하나도 들어맞는 게 없어. 통계나 수치, 하여튼 난 그런 건 모르고…. 내가 경기가 좋아진다고 느끼는 게 중요한 거지. 돈 좀 벌었다 싶으면 그 해 경기가 좋다는 거지. 없는 서민이 없는 서민과 부딪히고 살면 한계가 있는 거 같아. 담벼락을 기대도 튼튼한 담벼락에 기대야지, 튼튼하지 못하면 자칫 담벼락에 깔리잖아.

각종 TV 토론회에 나와 하는 얘기를 보면 왜 이런 얘기는 하지 않는 거야. 넥타이 메고 있으니깐 자기 딴에 다 편해 보이는 건가. 난 츄리닝만 입고 살아서 그런 건지도…."

맞은편에서 족발을 파는 아저씨 역시 시장 이야기를 다루는 방송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고 한다.

"9시 뉴스, `기획 취재` 하는 거 보면 한심해. 뭐랄까… 열심히 했다는 건 보이는데 속속들이 까발리고 그러지는 않으니, 실상을 액면 그대로 까발리고 그러지는 못하는 거 같아.
TV에 재래시장 문제가 나오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단 말이지. 작년에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이 나왔잖아. 정부 기획예산처에 가서 집행된 예산이 얼마인지 두드려 봐.
인프라 구축을 한다고 하는데 그 예산들이 `선심성`이 대부분이야. 허공으로 날아간 거야. `인프라 구축`을 하려면 길게 봐서 `기초`를 닦아야 하는데 말이야. 집에 있는 애새끼가 비실비실한데 약만 먹인다고 나을 수 있을 것 같아? 효과는 단지 먹을 때 그 때 뿐이야. 체질을 바꿔야지."



기자는 상인회에 가서 건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며 답답해들 한다. 

"상인회 가서 이런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혀. 실상을 알고 싶어? 이렇게 백날 취재하는 것도 실상을 알지 못해. 내가 시장 아르바이트를 시켜줄게. 여기 와서 고정간첩으로 열흘만 일해 보면 실상이 파악이 돼. 옛날 간첩들이 정보 수집을 했잖아. 드러내놓고 밝히는 게 아니라 고정간첩으로 말이야. 뭐니 뭐니 해도 실상을 아는 데는 고정간첩이 최고지. 나중에 여기 와서 고정간첩을 해봐. 허허."



시장 구석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높으신 분들에 대해선 이제 포기했다는 눈치다.
"난 말이지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고 여기저기서 방안들을 내놓는데, 정치인이나 관료들 이제 건성으로 일해도 좋아."



기자는 그들이 서민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고, 서민들은 요구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한 이불 덮고 사는 부부 사이에도 진정성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 거고, 선거 때 주둥이만 나불 되는 사람에게 `진정성`을 기대해봤자 얼마나 할 수 있겠어. 월급 받고 건성으로 일하는 관료나 기자들에게 진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말이지. 건성으로 일해도 좋아. 아니지. 복지부동도 OK야. 단 뒷통수나 치지 말라는 거야."
촛불정국으로 경비가 삼엄한 청와대 인근 통인 시장. 시장 입구에서 길거리 과일 장수인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엄숙한 최근 동네 분위기랑 경제 사정이랑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아주머니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세상이 어떻게 되던 자신들과 같은 시장 장사치들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서민경제 외치던 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코앞에서 신음하는 통인시장을 오랜 시간 보고만 있을 것 같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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