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으로 대통령이 된 경제 대통령. 그러나 청계천과 맞붙은 종로 5가 광장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안하는 게 나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상인들로 붐빈다. 

"청계천 복원을 안 한 게 더 나았지. 주차할 곳이 없으니깐…. 청계천을 한 후에 그러니깐 저기 있는 먹거리들만 잘 돼."

주차장을 만든다는 얘기만 무성하게 나돌지 실제 언제 만들어질지는 미지수다. 
"말로만 백날 해봐야 뭐해 원. 건물주야 임대료만 받아먹으면 조그만 점포야 죽든 살든 관심 없겠지만… 결국은 함께 다 죽는 거야. 나라 임금이 백성들 배를 생각해야 하는데, 가만히 보면 지네들 배 채우는 것만 관심이 있어.



저기 가보면 조개구이 집이 있어. 어디서 가져오는지 신선하지도 않더만. 바다에서 직접 가지고 온다는데 양식이겠지. 진짜 잡아서 바로 들여오는 거겠어? 사람들이 양식 맛이랑 실제 잡은 거랑 맛의 차이를 잘 모르니 뭔지도 모르고 좋다고 먹는 거지. 얘길 들어보니깐, 거기 조개구이집 조카가 기자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자꾸 거기만 비춰주고…."

생선을 파는 할머니는 조개구이집은 케이블 티브이에 자주 나온다며 심통이다.
"계속 조개구이만 방송에 나가. 장사 잘되는 데는 더 잘 되는데, 다른 상인들은 임대료도 못 내서 지금 힘들어 해. 청계천 나고 공기는 좋아졌어. 하지만 인생이란 게 백년도 못살잖아. 공기가 좋아지면 뭐해. 돈이 우선 들어와야지. 빈대떡, 소주, 막걸리 마시고 방뇨하려 시장 돌아다니고 화장실이 2층에 있는데 노인네들이 화장실에 안 가고 남의 집 점포 앞에서 볼일을 본다고. 그럼 점점 점포는 나빠지고…. 지금 상황이 그래. 어떤 미친놈이 장사가 잘 된다고 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도끼 들고 쫓아간다."



이불가게 아주머니도 "시장 자체가 죽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빈대떡, 술 파는 노점만 잘된다니깐. 종일 놀러 와서 구경하다가 여기 와서 먹고 가. 그리고 아무데서나 오줌 싸고 가버려. 더 지저분해졌어."
아주머니는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재래시장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며 재래시장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이다.

"경기가 살아나야지. 지금 젊은 사람들은 백화점을 더 선호하잖아. 재래시장을 선호해줘야 해. 지금 상태로는 4~5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없어지면 재래시장도 함께 사라질 거야. 단일 품목 면에서는 오히려 물건이 백화점보다는 다양하지. 그리고 재래시장은 지역경제의 주춧돌이야. 재래시장이 없어지면 이제는 주춧돌 없는 백화점만 남는 거야."



상대적으로 인근의 과일 파는 할머니는 분주해 보인다.
"장사가 잘 되느냐고?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죄다 들었나 놨다 구경만 하다가 그냥 가버려. 청계천에 다니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들이 많거든. 왜냐하면 전철표가 공짜잖아. 그러니깐 산에 갔다가 시장에 왔다가 하면서 술 먹고 사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지. 여기 녹두빈대떡이 싸잖아. 4000원 밖에 안하고. 그거 하나 시키고 다섯 명 정도가  막걸리 두어병 마시면 좋잖아. 그렇게 놀러오는 분들이 이런 거 사갖고 가는 분이 없지. 과일 무겁다고 하니깐. 그래서 나도 지금 이거 치우고 먹거리 쪽으로 해볼까 생각중이야. 강냉이나 쪄서 팔까 싶어."



할머니는 청계천이 예전만큼 못해도 정치인들 탓은 하지 않는다. 열반에 이르렀나? 하루 이틀도 아니라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 그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늘어놓는다.

"내가 지금 70이야. 6.25 때 시골 갔다가 부모님이 폭격 맞아서 돌아가셨어. 지금 내 남동생이 둘인데 60세, 65세야. 내가 열 몇 살 때 동생 둘을 책임지게 된 거야. 그래서 나 공부도 많이 못하고 동생들 공부 가르치느라 시집도 늦게 갔어. 밥 먹고 살라니깐 마늘 까고, 깨소금 팔고 별 것 다 했어. 그러다가 중간에는 할 게 없어서 솥 같은데다가 복숭아 넣어다 팔고, 딸기 나올 철에는 딸기 사다가 버스 몇 번 갈아타고 신촌역에 가서 팔고, 배가 나올 가을철에는 또 배 갖다가 팔곤 했지. 그때 생각하면 요즘은 과일 장사하기 정말 쉬워. 단 팔리지 않아서 문제지. 그때는 과일이 없으니깐 나오면 많이 팔렸거든. 그래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어."



장사가 잘됐다는데 왜 먹고 살기가 힘들었을까.
"쌀값이 비싸니깐. 남동생들 등록금 보태고 쌀 사가면 없어. 고무신도 사기 힘들었어. 지금은 정말 살기가 좋아졌어. 쌀값이 싸잖아. 요즘 못 살 사람 없어. 암만 살기 어렵다고 해도  요즘 `몰라서` 그렇지. 힘들다 그래도 그때 노력에 비하면 요즘 못 살 사람 없어."



곁에서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도 한 수 거든다. 할머니는 실제 나이 많은 백수 둘의 인생을 180도 변화시킨 장본인이라며 으쓱거린다. 못 살 사람을 살린 것이다.
"예전에 IMF터지고 나서 맨 날 술 먹고 살던 남자 둘이 있었거든. 하나는 49세고 하나는 47세래. 여기 와서 빈대떡 하나 사다 들고 가서는 둘이 술 마시고 그러더라고. 노숙자지. 그래서 내가 둘을 불러다가 옛날 이야기를 다 해줬어. 가난에 쪼들린 이야기들 말이야. 보니깐 직장에 떨어져서 노숙자 한다고 하더라고. 하나는 아이가 둘이 있고 다른 사람은 하나가 있대. 집이 신촌인걸로 기억난다. 왜 노숙하냐고 물어보니깐 마누라한테 미안해서 못 들어가겠대. 나온 지가 6개월 정도 됐다고 하더라고. 생각을 해봐, 마누라는 남편이 혹시 어디서 죽었나 해서 애 붙잡고 얼마나 울었겠어.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애`를 보라고 했어. 요즘은 여자들 나오면 식당일은 구할 수 있으니깐. 여자가 나와 일하면 돈 백은 벌잖아. 내가 첨 이야기하니깐 젊은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잘 받아들이더라고. 차비 줄테니깐 가라고. 그리고 1만원 주고 이발부터 하라고 했어. 머리를 말끔하게 자르고 집에 들어가서 마누라 손잡고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과일도 줄테니깐 사들고 집에 들어가라니깐 그건 됐다고 지들 돈 있다고 하더라고."



대체 어떤 말을 했길래 그들이 집으로 향했을까. 당시 옆에서 지켜본 과일장수 할머니가 끼여든다. 
"별 소리를 다 했지. 엄마 아버지 잃어버리고 2~3일은 보통으로 밥 못 먹고 산 얘기들,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했던 얘기들. 그 후에  4개월 지나서 남자가 왔더라고. 아주 말끔하게 해서 말야. `시키는 대로 마누라는 밖에 나가서 일하고 저도 조그만 일자리 구해서 얼마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야. 나중에 몇 달 지나서 다른 한 사람도 왔더라고. `할머니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면서 말야."
곁에서 박스를 줍던 할머니는 노숙자들도 먹고 자는 거 보면 한국이 부자나라 된 것 같다고 얘기한다. 예전에는 다들 가난해서 동전 한 잎 던져줄 돈도 없었단다. 비꼬는 건지 정말 한국이 부자나라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할머니는 청계천 인근 시장들이 망하든 흥하든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그저 작고 큰 경험들을 통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일단 노숙하면 자기 생활은 돼. 아직도 한국 사람들이 인정이 많아서 노숙자들에게 돈 주잖아. 한국이 부자가 됐어. 노숙자들이 먹고 놀잖아. 그런 사람들, 종이라도 줍고 하면 거지 생활 안해도 되거든. 100원이 열 번 모이면 1000원이 되고 1000원이 열 번 모이면 1만원 돼. 부자가 따로 있어? 노력하면 부자지. 난 50년간 일하면서 논지가 3년 됐어. 장사하면서 설날, 추석 때도 놀아본 적이 없어. 무직자든 실업자든, 자기가 인간적으로 느껴야지, 나도 뭔가를 찾아야겠다, 지가 스스로 느껴야지 남이 그걸 대신 해주나?"

청계천이 어떻든 정치가 어떻든 뭐든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얘기 같다. 과연 그럴까. 남의 탓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 기로에 서서 다양한 이 흘러나오는 청계천 광장시장의 풍경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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