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길음시장

시장안에 찜질방? 원자재값 상승으로 상인들의 삶은 고단해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인식이 그리 곱지(?) 않은 젊은 사람들도 찜질방을 오가며 시장에 가세해 상인들의 어깨를 덜어줄 수 도 있을법해 보이는 시장, 이번호엔 그 `길음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찜질방 때문에 특별한 부분이 있었던가. 초장부터 까놓고 얘기하자면 상인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찜질방과는 무관해 보였다.   



시장 입구부터 음식냄새가 진동한다. 시장 먹거리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먹거리 상인들은 쉴새없이 바쁘다. 반찬가게 주인은 막간을 이용해 시뻘건 김치를 한포기 한포기 정리하며 품질에 대해 얘기한다.    



"전 여기서 10년 장사를 했는데, 다른 상인들은 20년이 대부분이고 좀 했다 싶은 분들은 30년 했어요. `그냥 있어도 팔리겠지` 하는 의식들은 바꿔야 돼요. 동대문 쪽 시장들은  10∼20대를 대상으로 하잖아요. 젊은 층은 그쪽이고 여기는 40∼50대들이 많습니다. 그 연령대는 음식맛이나 옷 품질 금방 알아채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죠."



20년 전통이라고 적힌 순대국밥집. 오랜 시간 우려낸 국물맛이 이 시장의 나이를 가늠케 해준다. 간판에는 20년이라고 적혔지만 할머니의 얘기는 좀 다르다.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30년이라고 적어놓으면 너무 오래돼 거부감이 들것 같더라고. 그래서 20년이라 고쳐서 적어놨어."
"할머니,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식당은 오래된 것을 좋아해요"라고 하자 그래도 식당 나이를 깍는 게 마음이 편하단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지만 나이야 무슨 상관이랴. 맛이 중요하지. 식사시간도 아닌데 손님들은 끊이질 않는다. 시장 인근에 사는 단골들이 대부분이다.



흔히 시장이나 노점상에서 볼 수 있는, 당면만 첨가된 순대와 각종 돼지고기 부위가 국물속에 숨어 있다. 요즘은 순대요리가 고급화 돼 순대 속에 야채와 고기를 넣는 순대 전문 식당이 많아 순대만 놓고 따지자면 이 집의 순대 맛은 상대적으로 형편없다. 그러나 할머니가 수십년간 끓여온 국물맛의 깊이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나 보다. 한 그릇에 3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도 한 몫 하는 듯 하다.

주차장만 있으면 장사가 더 잘될 것 같다는 얘기에 할머니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여기가 차가 댈 곳이 없어. 주차장이 없으니깐 대대적으로 손님을 맞기가 힘들지. 인근 아파트 주부들이나 나이든 노인들이 주로 이곳을 찾아. 지금 일반 사람들은 다 대형마트로 가버려. 그리로 가버리고 점점 죽는 거지. 다른 작은 시장들도 장사 안돼서 사는게 팍팍하다고 하더라고. 상가는 꽉꽉 들어차야 하는데 말이지. 그래도 여기는 아직도 먹거리 인식이 좋아. 찜질방이 있으니 젊은 애들도 순대국밥 많이 찾는거 같아."



단골로 보이는 한 노인분은 약간 다른 의견을 제기했다.
"젊은 애들이 찾긴 뭘 찾아. 찜질방에 가면 입맛에 맞는게 더 많은데 이런 시장터에 앉아 잘도 사먹겠다. 빈대떡이나 오뎅, 순대, 이런거 쳐다도 안보는 것 같아. 여기 둘러봐. 다 노인네들이지. 간혹 가다 젊은 주부들 보이고 말야."



노인은 또 과일가게를 가리키며 "저 봐, 저기 과일 다 상하겠다. 상하겠어"라며 노파심을 발동시켰다. 그러나 평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는 노인의 얘기에 반박한다.



"젊은 애들이 순대국밥이나 빈대떡은 안먹는다 쳐도 과일은 잘 사먹어. 지금 안보여서 그렇지, 평소에 저기도 장사 잘돼. 젊은 애들이 찜질방 오고가면서 과일을 많이 사가. 특히 젊은 여자들이 과일을 많이 찾지."

오뎅, 튀김 등도 삽시간에 바닥난다. 주인은 냉장고에서 오뎅과 튀김 재료를 가져가 손님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급히 손을 쓴다. 주변 손님들은 장시간 선 채로 주인이 반죽하는 밀가루를 쳐다보곤 한다.



"먹는게 남는 거죠. 여기서 한 20년 장사했는데, 지금까지 바빠서 힘들었지 적자 나서 힘든 적은 없어요. 이봐요. 만드는 과정도 투명하고 테이블 주변도 깔끔하잖아요. 손님들이 몰려들 수 밖에요." 

먹거리는 그나마 버틸만 하지만 의류 상가는 울상이다. 동대문시장 등 큰 의류 시장 때문에 타격이 큰 것 같다. 인적이 드문 의류상가 한 모퉁이의 주인은 주변에 고급화된 건물이 없어서 문제라고 한다.   

"동대문에는 우후죽순으로 신상가가 들어섰잖아요. 중국에서 온 제품들이 대부분 동대문으로 가거든요. 다른 곳보다 싸기도 하죠. 그러니 동대문으로 다 갈 수 밖에요. 사실 가격도 낮은 만큼 품질도 낮은데 사람들이 물건 구분을 못하는 것 같네요. 시장물건은 무조건 저렴해야한다는 인식이 있으니 말이죠.
그러니 이런 시장은 죽을 수 밖에 없죠. 젊은 사람들에겐  `쇼핑=동대문` 이렇게 돼버렸지, 동대문이 또 얼마나 광고를 해대나요. 심하게 하잖아. 길음시장같은 곳은 광고도 안 해. 하긴 광고를 한다해도 볼 것도 없고…. 찜질방 광고나 할까나. 한 상가에 다용도 시설로 영화관도 만드는 등 젊은 사람들 시선을 고려해야 하는데 말이죠." 

놀러온 식당 아주머니도 거든다.
"아무래도 가격이 제일 중요한 요인이에요. 예전엔 백화점 다음으로 남대문 물건을 알아줬어요. 근데 지금은 남대문이나 백화점 품질은 같거든요. 근데 동대문은 중국에서 물어와 가격 너무 싸게 때려요. 보면 메이커 디자인들 몰래 도용하고 소비자들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고…. 일전에 남대문서 옷장사 한적 있는데 남대문 와서는 가격이 왜 이리 비싸냐며 불만이더라고요."



재래시장에 대한 상인들 스스로의 인식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나름 견해를 늘어놓는 아주머니다.
"선진국 가보면 `재래시장`이란 게 보편적으로 다 있어요. 거기서 개발해서 발전하는 거거든요. 제가 보기엔 품질을 높이고 상인 스스로가 서비스 개선하고자 하는 정신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옛날 분들이 장사를 많이 해요. 연세 드신 분들은 광고도 안 하고 서비스도 없으니…. `가만히 앉아도 그냥 팔리겠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저런 얘기를 정리해보니 현 시장들의 문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능동성`으로 귀결된다. 대부분 상인들 나이가 지긋해 새로운 방법들과 마주하는 것에 미숙하다. 그러나 먹거리 상인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음식 개발에 여념이 없고, 의류 상가들도 어떤 방향으로 판매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것 같다. 비단 길음시장 뿐 아니라 최근 허덕이고 있는 재래시장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의 현대화까지는 아닐지라도 최근 시장 상인들의 생존여부는 `능동성`에 달린 것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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