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 등은 없고 돈만 있는 광복절 사면 논란

광복 63주년과 건국 60주년이 되는 광복절을 맞아 경제인과 정치인 등에 대해 대대적인 특별사면이 단행된 가운데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몇몇 재벌 총수는 형 확정판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특별사면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형집행면제 특별사면 조치로 풀려났다.

6월4일 민생사범 사면
이번 정치·경제인 위한 쇼?

정부는 지난 8.15 광복절 대사면의 의미를 "경제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화합과 동반의 시대를 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취임 100일을 기념한 지난 6월4일 사면이 일반 영세민과 생계형 운전자 등 소외계층 282만여 명을 위한 민생사범이었다면, 이번 사면은 정치인과 경제인, 선거사범, 징계 공무원 등이 대거 망라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기업인 사면에 대해) 일각에서 비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부정적이지만 기업인들이 해외활동을 하는 데 불편하고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점을 감안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제기된 일부 경제인의 사면은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통령은 "사면을 계기로 대기업들이 보다 공격적으로 경영에 나서 달라"며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정부는 국민통합을 위해 한광옥, 김옥두, 박창달, 박찬종 전 의원 등 정치인과 징계공무원 32만여 명을 사면복권 조치했다.

양심수, 국가보안법 위반자
대신 재벌총수 구해

대통령의 사면권 남발은 대개 사법 정의와는 반대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늘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특히 사면된 재벌총수 중 일부는 형이 확정된 지 불과 서너 달도 채 안됐고, 현재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이행 중인 경우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번 정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불신만을 안겨줬다"며 "법과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채 비리 재벌총수의 이익만을 챙겨주는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이 오히려 국민통합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구속노동자 후원회 등은 "굳이 특별사면에 대한 명분을 찾으려면 8.15 광복절에서 찾아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는 400여 명이 넘는 양심수나 국가보안법 위반자 대신 재벌총수들을 구했다"고 말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10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최 전 회장은 외화밀반출과 계열사 불법대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과 함께 1500여 억원의 추징금 납부명령을 받았으나 아직 한푼도 납부하지 않고 있다.
반면 법무부는 권노갑 전 의원의 경우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이 사면대상에 들지 못한 한 원인이라고 설명해 추징금 납부 여부가 사면 복권에 어떤 기준으로 작용했는 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은 폭력사범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인이라는 지위 때문에 사면대상에 올랐다. 김 회장은 지난해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지난해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특별복권이 된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추진단장을 맡았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 전 부시장은 청계천 복원추진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3년 12월 부동산 개발업체로부터 을지로2가의 층고제한을 풀어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06년 6월 징역 5년에 추징금 2억5500여만 원을 선고받았다.

엄정한 수사 강조
현정부 입장과 정반대

이같은 사면 내용과 관련,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며 각종 사안에 대해 검경의 엄정한 수사를 강조해온 현정부의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재벌 총수의 사면이 경제살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데도 경제인을 대거 사면시킨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현 정부가 내세우는 법과 원칙 주장은 허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지난 12일 논평을 통해 "사면권은 법원의 판단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의하여 남용되어 왔고, 한나라당조차도 야당 시절 사면의 남용을 지적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무분별한 기업인에 대한 사면 남발은 투명경영을 통한 경제선진화를 저해할 뿐 아니라 법치주의를 무력화함으로써 실제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어 "판결이 확정된지 겨우 두달여 만에 사면이 이루어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판결이 휴지가 된 경우도 있다"며 "사면권의 남발은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법부의 권능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하나의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수많은 판사들과 검사들이 고심을 하고 결정을 하는 것인데 사면을 통해 쉽게 원점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국가기강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로 이는 국가의 자기부정"이라며 "판결선고가 나더라도 그것을 설득하고 국민이 받아들이는데는 시간이 필요함에도 일부 인사의 경우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시점에서 사면됐다. 국민들은 이를 보고 사법부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쇼를 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최근 형이 확정된 대기업 총수들의 특별사면 조치에 대해 "어려운 국내외 경제여건 하에서 투자 촉진과 적극적인 해외진출 및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상황임을 특별히 감안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는 또 "특별사면됐더라도 추징금은 따라다닌다"며 추후 계속 추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특별사면 비난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디에…

지난 노무현 정부 등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재벌총수 등을 특별사면 해주던 것을 강력하게 비난하던 국회의원들이 이번 사면에는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전여옥 의원, 원희룡 의원 등은 지난 국회 때 특경가법의 배임,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 특별사면을 금지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발의한 바 있다.
또 박재완 국정기회수석과 박형준 홍보기획관도 이같은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공동발의 했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관계자는 "지난해 말 대통령의 사면권을 통제하자며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한나라당 소속 전 현직 의원들은 이번 사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며 "당시의 소신을 지금은 완전히 포기한 것인지 정치인으로써 국민에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면에 대해 법조계 인사들조차 `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면`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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