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해임·체포 뒤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언론장악 시나리오

KBS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됐고 체포됐다. 정부 여당이 `정연주 몰아내기`에 발벗고 나선 결과다. 검찰은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때를 맞춰 경찰은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를 불법체포했고, 한상렬 진보연대 공동대표도 구속했다. MBC는 광우병 논란을 보도한 에 대해 사과방송했다. 시민단체와 언론관계자들은 전방위적 현정권의 언론장악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를 금치 못한다.

 


시민단체와 언론 관계자들은 "KBS의 친한나라당 이사들은 이번 정연주 사장 해임안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해임된 정연주 전 사장이 검찰에 강제 구인되면서 "70년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이래 30년 만에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고 얘기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약칭 동아투위의 막내기자로 1975년 동아일보에서 강제해직된 정연주 전 사장은 이제 유신독재 시절을 방불케 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쿠데타로 30여년 만에 다시 공영방송 사장직에서 강제로 쫓겨난 `늙은 투사`가 된 셈이다.   

정연주 죽이기  

여당과 보수세력들은 정 전 사장의 배임죄와 두 자녀의 군대 문제 등을 내세운다. 이들이 주장하는 정 전 사장의 죄목만 봤을 때 과거 보수정당이 지속적으로 벌여온 불법적 만행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배임죄` 란 형법에서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얻거나 제 3자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해 임무를 맡긴 본인에게 손해를 입힘으로써 성립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다.
흔히 공무원 또는 회사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국가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경우에 그 공무원 또는 회사원은 국가 또는 회사에 대해 배임죄를 범한 것으로 된다.
8월 7일 감사원은 정연주 전 사장이 2005년 법인세 반환 청구소송을 통해 최대 3431억원의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56억원만 돌려 받고 소송을 취하해 KBS에 최대 2875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KBS 이사회측에 정연주 전 사장 해임요구안을 제출했다. 감사원요구에 따라 KBS 이사회는 해임제청안을 가결해 이명박 대통령이 정 사장 해임결정안에 서명했다고 한다.
현행 방송법상 대통령이 KBS 사장 해임권을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각계는 `정 전 사장이 배임죄`라는 감사원 발표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정 전 사장의 배임행위로 인해 2875억원의 이익을 본 사람은 정 전 사장 자신도 그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그 누구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보통 배임범죄자의 경우 전언했듯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배임을 저지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 전 사장의 경우는 유별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정 전 사장의 배임행위로 인해 `2875억원`이라는 부당 이득을 취해 그 천문학적 거액을 나라살림과 국민 안녕을 위해 써버린 셈이라고 비꼬면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만일 정 전 사장의 배임행위가 일반적인 것이라면 그 배임행위에 의해 이익을 취한 자는 그 배임죄를 저지른 자, 즉 정 사장에게 일정액의 반대급부를 지급하는 것이 통례다. 그런데 감사원 발표의 어디에도 국가가 정 전 사장에게 반대급부를 지급했다는 말은 없다. 이에 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서는 "법적으로 적용 불가능한 수사를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아들 병역비리로 대선에서 참패한 경험이 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형평성을 내세우며 문제 삼았던 정 전 사장의 자녀 군 문제의 경우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 전 사장이 과거 `동아투위` 시절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외치다 국가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어린 자녀들과 미국으로 도피한 결과에서 초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털어도 나지 않는 먼지

표적수사라는 비난마저 감수한 감사원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정연주 사장에게 특별한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에서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은 `천연기념물 정연주`"라며 "정 전 사장이 불법적으로 해임되고 검찰에 체포된 것은 방송의 자유가 질식한, 방송의 자유가 목 매달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은 "BBC같은 경우는 수신료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90%가 되는데 KBS는 30% 수준"이라며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니까 경영혁신 하라 해서, 그 과정에서 손해를 입은 측이 반발해 안티 정연주 세력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 전 사장이 KBS 부실경영을 지적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KBS가 이익을 봐야하는 회사라면 공영방송이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상업방송"이라며 "국민들은 오히려 조선일보가 더 편파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조선일보가 가장 신뢰도 높고 공정하다고 보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아울러 "국민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점은 국세청이 KBS에게 과세를 잘못했다는 것"이라며 "정 전 사장은 혐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방송장악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돌발적이고 매우 노골적인 방송장악의 형태가 정 전 사장의 탄압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전 사장을 해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현행법을 위반한 분"이라고 꼬집으며 "지난 2000년 통합방송법 때 임면권이 임명권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정확히 방송법, 공공기관 운영법 위반으로 공정한 검찰이라면 즉각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철학과 홍윤기 교수도 "현 정부와 검찰이 없는 먼지를 만들어서 털어내는 것"이라며 "정치적 인상이 짙다는 얘기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는 정 전 사장의 KBS 시절 방송이 과연 편향적이었냐 아니었냐 라는 물음이 가장 핵심적이며 그것이 1차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며 "그 결과는 전혀 편향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현 정부가 정연주 전 사장을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라고 몰아붙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 정권에 유리한 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또 "현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미루어 본다면 정 전 사장이 해임되고 후임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진정한 코드인사`가 임명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방송해온 KBS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정연주 전 사장은 신뢰할 수 있어도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인사는 `조중동` 만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미노 효과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KBS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MBC도 한풀 꺾인 기세다. 과거 해직기자들로 구성된 언론시민단체의 수장을 체포했다는 점에서도 현 정부의 탄압 수위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KBS 사태를 목도하면서 질릴 대로 질린 탓인지 엄기영 사장 등 MBC 경영진은 이명박 정부에게 꼬리를 내렸다. MBC는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고발한 과 관련, "의 기획의도와 사실관계의 정확성, MBC의 미래를 총체적으로 판단해서 사과제재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대국민사과명령을 받아들이면서 재심청구를 포기했다.
이후 여론은 물론 MBC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박성제 MBC 노조위원장은 "엄기영 사장과 경영진의 결정은 공영방송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라며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방송을, 그런 제작진의 행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특히 구성원들의 반발이 분명히 예상되는데도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은 그만큼 정권 차원의 압박이 거셌음을 미루어서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며 "MBC와 을 사랑해주시고 기대를 많이 주신 시청자나 국민 여러분께 오히려 사과 방송을 막지 못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은 그런 심정"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서울지방경찰청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박석운 공동대표를 긴급체포했다.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다. 민언련이 동아투위 등 과거 해직기자들이 만든 전통 있는 언론 수호 단체인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번 체포건도 다분히 상징적이다. 경찰은 거기다 영장도 없이 불법체포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번지고 있다. 이에 광우병 대책회의는 지난 13일 종로경찰서 앞에서 박 대표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서울지방경찰청 강력수사대 박 모 경장 등 4명을 불법체포감금죄로 고소했다.
KBS 사태를 비롯 대한민국 언론에 드리워진 먹구름의 색깔이 한층 진해지고 있다. 향후 이명박 정부의 언론 탄압 수위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우려가 크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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