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같은 사람들 그저 들러리지 뭐..."
"우리같은 사람들 그저 들러리지 뭐..."
  • 승인 2008.09.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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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경동시장

전국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는 경동시장의 오후.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한낮 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상인들이 풀죽은 채 앉아 있을 줄만 알았다. 명절을 앞둔 지난 겨울 어느날 왁자지껄한 풍경이 떠올랐다. 경동시장은 늘 그럴 것 같다. 손님이 붐비는 만큼 장사도 잘 되는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 기자와 같이 구경꾼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도 많다. 그중에는 아예 살 생각 없이 구경오는 사람과 꼭 사야한다는 강박증보다는 대형마트 등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혹 쓸만한 물건이라도 있나 싶어 근처를 지나치다 그저 구경오는 이들도 있다.

"시끄러우면 뭐해. 활기가 넘치는 것 같으면 뭐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들러리지 뭐."

쌀을 파는 할머니의 얘기다.

"사실 이 쌀이 명품이라고는 할 수 없어. 그렇다고 불량식품도 아니지. 흔히 슈퍼나 마트에서 적당한 가격에 파는 수준과 그리 틀리지 않거든. 그런데 시장에서 파니깐 뭐 하나 부족한가 싶은 거지. 우리나라 사람들 비싼게 좋은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가격을 아예 올려버릴까 생각도 하는데, 오히려 `시장 쌀이 뭐 볼게 있어 비싸게 파냐`며 소비자 불만만 쌓여 역풍 맞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   

 

할머니에 따르면 일반 마트나 슈퍼마켓의 쌀과 동급 비교로 따져 봤을 때 20% 정도 저렴한 가격이라고 한다. 흥이 나면 한줌 더 퍼줄 수도 있다는 할머니.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눈길 한번 안주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머니는 자신이 들고 온 밥솥에 직접 이 쌀을 담아 끼니때면 식사를 챙겨 먹기도 한단다.

마침 바로 옆에서 쌀 장사를 하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팔아야 할 쌀을 점심 식사로 때우고 있다. 무더운 탓, 할아버지는 찬물에 밥을 만다.

"무슨 돈이 있다고 밥을 시켜먹겠어. 저쪽 저기 김치 파는 아줌마랑 협상했어. 나는 끼니때마다 밥을 날라주고 아줌마는 김치랑 밑반찬을 제공하지.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도우면서 사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식당서 주문해 먹는 이들도 있지만, 보통 그런 상인들은 여기서 꽤 돈 좀 버는 이들이지. 쌀 한 줌, 풀 한 포기 파는 사람들은 무슨 돈이 있겠어. 밥 사먹으면 하루 일당 다 날아가 버리지."



할아버지는 지나치는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얻어온 김치를 찬물과 섞인 밥알들 위에 얹고 한술 한술 시원하게 삼킨다.

"여기서 십수년 이러고 있는데 장사 잘되는 집 보면 사실 질투도 나. 그런데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물건도 실생활에 많이 적용되는 것이니 장사도 잘되는 거겠지. 내 경우는 이 나이에 이것 말고 딱히 팔 것도 없어. 이 쌀 시골서 들고 오는 좋은 쌀인데도 사실 씹다보면 돌이 나와서 문제야. 요즘 마트 가면 돌맹이 다 제거돼서 시판되잖아. 이 쌀 품질이 좋아도 요즘 젊은 사람들 구미에 맞지는 않지. 가끔 가다 늙은이들이 유심히 살펴보다가 사가는 거지. 그런 늙은이들은 집이 잘살든 못살든 간에 아직까지 쌀에서 돌 건져내는 재미로 사는가벼. 하긴 그 재미라도 있어야 치매라도 예방하지. 허허."  



쌀을 파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점포 개념도 노점상 개념도 아닌 길바닥 장사 개념이랄까. 그야말로 시장의 들러리 같다. 다소 시장을 비대하게끔 보이게 해주는 들러리 역할. 그 들러리중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들러리도 있다.
도로로 인접한 위치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경동시장 정문에 바짝 기대어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이 정문의 건축물은 여간 밉상이 아니다. 건축물의 기둥만 아니었다면 과일상자가 이렇게 삐져나오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도로로 삐져나온 과일상자 탓에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온다.



"뭐여. 나보고 굶어 죽으란 소리여! 안그래도 장사 안되는데 이걸 또 어디다 치워? 상자 쑤셔 넣을 공간이 어딨어?"

아주머니는 씩씩 거리며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다.

경찰도 애꿎은 표정을 지으며 "아줌마. 아줌마가 차에 치여 죽겠어요. 아줌마 차에 치이면 우리도 죽어요.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에요? 제발 좀 안으로 쑤셔 넣어봐요"하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그러나 손님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 이상 쑤셔 넣을 공간이 없다는 것. 기둥 건너편의 아주머니도 거든다. 어차피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왜 그래 김씨. 애들이 또 쑤셔넣으라 하는겨? 안되지. 더 이상 들어갈 때 없지."

두 아주머니의 강경한 태세에 순찰차는 한숨을 쉬며 퇴장한다. 두 아주머니는 허리끈을 졸라매며 다시 자기 자리로 복귀한다.



"여기서 장사한 게 30년째여. 어느날 저 기둥이 생기더니 자꾸 이런 일이 생기네 그려. 기둥으로 이득 본 장사치가 많을 테지만 우리는 위치선정 잘못하는 바람에 어느날부터 순찰차의 표적이 돼버렸네 그려. 게다가 여기 정문이 생길지 누가 알았겠어. 정문 생기고 나서는 당연히 매출이 줄었지. 누가 시장 정문 앞에서 얼쩡거리겠어. 도로도 코앞이고, 어서 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손님들 태반이지."     

시장 하나에도 자본의 논리가 숨을 쉬고 있다. 그게 어떤 과정이었던 돈 좀 쥔 사람들은 시장의 중심권에 자리잡고 있다. 들러리(?)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손님들이 많이 멈추어선 점포로 이동해봤다. 한 점포에는 손님들이 주인공(?)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생닭집이다.

1만원에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며 생닭을 여섯마리씩 들고 가는 노인이 보였다. 도대체 한 마리에 얼마이길래? 방금 여섯마리를 들고간 노인은 이중 가장 작은 놈을 묶어간 모양이다. 가장 작은 놈은 2000원대. 가장 큰 놈은 한 마리에 6000원씩 판다고 한다. 큰 놈과 가장 장은 놈의 크기가 세 배 가까이 차이나는 걸 보니 그럴만도 하다.

닭도 종류가 많았다. 토종닭, 일반 닭, 그리고 크기에 따른 분류. 토종닭은 한 마리에 10000원선이다. 전체적으로 일반 마트보다 10%는 저렴해 보인다. 시장 중심에 위치해 장사가 잘되는 이유도 있지만 나름 노하우도 있다.

"최고의 품질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켜주는 것이죠. 게다가 토종닭이라고 하면 대형마트 이미지보다 시장에서의 이미지가 잘 들어맞잖아요. 마트에서 토종닭이라? 어울리나요? 왠지 속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중심권에 놓여있던 고깃집들은 닭고기에 비하면 풀이 죽은 편이다. 쇠고기 사태와 아울러 삼겹살 가격의 폭등이 주 원인인 것 같다.

"아주 돌아버리죠. 쇠고기도 안먹고, 돼지고기는 비싸서 못먹고… 그래서 닭집만 살판 난거죠 뭐."

그래도 쇠고기 사태 이전까지는 한우가 잘 팔려 살맛 났다고 한다. 그러나 쇠고기 파동이 잠잠해지면 곧 원상복귀 할 것 같다고 얘기한다. 이들 점포는 앞서 들러리와는 상반된 모습. 그러나 시장의 주인공은 뭐니뭐니 해도 도로에 인접해 배수진을 친 들러리 아닐까.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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