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도법스님과 함께한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

2004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단장 도법스님)가 5년째 접어들었다. 이름 그대로 순례단은 만물의 생명과 평화에 대해 고민하며 여기까지 왔다. 인간의 문제에서부터 자연의 문제까지 세상 모든 문제들을 도보 순례를 통해 고민해왔다.


#도법스님
이러한 대승적 고민은 이전에 있었던 고민이기도 하며 예견된 고민이기도 했다. 따라서 순례의 의미에 정치적 접근은 불허되며 도법 스님의 말대로 "문명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고민이기도 하다.    


#지역민들과 고민을 나누는 순례단

그동안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지역 사람들과 함께 걸어온 순례단이다. 순례단은 지난 5일부터 탁발순례 마지막 코스인 서울 지역 순례에 임했다. <위클리서울>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수지구 코스를 순례중인 순례단과 함께 했다.

"내가 먼저 평화가 되겠다"

급박하고 삭막한 현대 사회에 한 줄기 밝은 빛이 되고자 염원하는 순례단의 화두를 몇 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다. 순례단의 화두는 곧 `그 누군가의 화두`이기에 고민을 안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기본적으로 순례의 취지는 생명평화의 삶의 문화를 가꾸어 나가자는데 있다. 생명평화의 문제의식과 논리로 타인과의 만남을 기약한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해와 존중, 배려의 풍토를 가꾸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너와 나, 남성과 여성, 단체와 단체, 지역과 지역, 진보와 보수, 남과 북, 인간과 자연간의 갈등과 대립 등의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순례는 보다 의미 있어 진다. 

그래서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순례단을 총괄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고양본부 이성구 상임대표는 "순례의 의미가 한가지에 국한돼 있지 않고 다양하다보니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그 지역 사람들의 고민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지역에 대한 순례단의 고민은 남다르다. 지역의 실상이 어떤지 이해하고 배우려고 길을 나선다. 순례단은 모든 지역에서 지역주민들과 만나서 대화를 했다. 지역 내, 그리고 지역과 지역간의 소통을 도모한다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지역 스스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한다. 지역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과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고민해왔다. `제주도 생명평화의 섬`이라든지 `지리산 통합문화권`에 대한 문제도 이에 해당된다.  



이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음직한 문제들을 떠안고 길을 나서는 순례단의 발길은, 하지만 그리 무겁지 않다. 평화를 원한다면 내 안에서 먼저 평화를 찾자는 마인드로 순례의 의미에 접근하는 순례단이기에 말이다.
성수동 서울숲 주변 거리에서 순례단을 바라보는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도 역시 지독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내 안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순례의 길은 간절하게 다가온다. 순례단은 이제 그늘진 서울 한복판으로 향한다.     

순례단, 서울의 그늘을 걷다.

왕십리 뉴타운 제2, 3구역은 청계천과 인접해 있어 공구공장들이 많다. 그 사이로 골목길 한켠에 자리 잡은 철거투쟁천막 앞에서 순례단은 세입자대책위원회 주민들과 상공인대책위원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너무 많은 개발로 인해 점점 많은 서민들이 4년 안에 2번 넘게 이사를 해야 한다며 울상을 짓는다. 이렇게 가다간 점점 경기도 외곽 지역으로 몰려나게 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니 계속 여기 산다면 빚에 허덕이지는 않을까" 한탄한다고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의 경우 민영으로 재개발을 맡겼기 때문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없고 단지 행정적인 절차만 밟을 수 있다. 그나저나 성동구 20개동 중에 제일 작은 동 인구가 1만2000명인데 올해 1월과 비교했을 때 8월은 32만 여명으로 1만 명의 철거민이 이주했다고 한다. 이제 2000여명이 남은 셈. 순례단원의 탄식도 이어진다. 성동희망나눔 이경희 순례단원은 `투쟁만이 살길이다`이라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순례후 서로를 바라보며 절을 올린다

순례단은 각종 공구 기계 상가를 지나 성동건강복지센터(노동자 건강센터)에서 이 지역 환경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노동자 건서는 유해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건강검진, 건강한 일터와 삶을 꾸리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 동네는 아파트 주거지와 물류가 드나드는 거리에 학교도 함께 있어, 대체로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이다.

빡빡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순례단은 한강으로 향했다. 탁 트인 한강을 걸으며 그늘진 감정 상태를 잠시나마 달랜다. 오늘의 종착점은 성수대교. 성수대교 인근 잔디밭에 모인 순례단은 100번의 절로 순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루를 마감했다.            
 
우리 삶, 그물코처럼 얽혀 있어

5년째 전국 각지를 돌다가 서울에 입성한 순례단이다. 지금까지 각 지역을 돌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했다. 각 지역의 교회나 성당, 절, 시민사회 단체 등의 단체 시설에서 `얻어 먹고 얻어 잤다.` 때론 교회에서 밥을 얻어먹고, 성당에서 잠을 자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최근에는 한강을 끼고 성수동을 도보 순례하며 자그마하게 마련된 자리에서 숙식을 제공받았다.


#한강을 걷는 순례단

교회와 성당에 들러 설법도 하고 대화해보니 굳이 종교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생명평화라는 공통의 이상만 갖고도 저절로 소통이 됐다. 이렇듯 우리 산하를 걸으며 생명평화 사상을 전해온 순례단의 길고 길었던 탁발순례는 서울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9월5일부터 100일 동안 서울순례에 나서 12월쯤 5년여에 걸친 전 순례 여정을 마치는 것이다.

2004년 3월 몇몇 도반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서 지금까지 2만5000여리 라는 기나긴 여정을 갈무리하며 도법 스님은 "세계의 근원이 하나이며, 모두가 그물코처럼 의존한다"며 생명평화 사상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아울러 그는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자각하고 다른 삶을 위태롭게 하거나 이기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며 "인류의 다양해진 종교문화와 인지발달에 맞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례는 `문명`이라는 거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