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석의 사진으로 보는 세상>

사진에 마음을 빼앗기면 세상을 사진으로 보는 못된(?) 버릇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강박관념은 이미지 노예로 전락하는 초기 단계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그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면 순간순간 사진 요소를 찾아내고 슬며시 미소를 짓는가 하면,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반드시 챙기고 나서야만 마음이 놓이고, 차를 몰고 가다가도 사진에 담고 싶은 풍광이 나타나면 갓길에 차 세우고 촬영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이는 꿈에서도 촬영을 한다는, 그런 증증의 증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증세를 가리켜 어느 사진 평론가는 `육안의 순수성을 잃고 카메라라고 하는 기계의 눈에 종속되는 이미지의 노예, 사진의 노예가 되는, 그래서 사진가를 종종 <이미지 사냥꾼> 혹은 <이미지 포획자>`라며, 세상을 오로지 카메라의 눈으로만 보려는 이미지 채집자로 전락한 초짜 사진가들을 야무지게 꼬집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없어도 <결정적 순간>을 놓쳤다고 애석해하지도 않고,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카메라 앵글에 관심두기보다는 내용에 빨려들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지 않는, 드디어 보이는 것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그런 단계에 이르면 사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언제나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남은 인생 내내 사진을 찍어도 과연 그런 경지에 발끝이라도 들이밀 수 있을지… 도저히 가망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피사체를 마음으로 내적 소통을 할 수는 그 때를 소망해 봅니다.

2007년에 <잎 시리즈>로 195장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바 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사진이 195장이면 실제 잎을 소재로 찍은 사진은 그 열배는 넘을 것입니다. 많은 사진 중에서도 그래도 내놓을만 하다는 것만 블로그에 올렸다고 보면 그렇습니다. 금년은 9월 14일(추석) 현재 위 사진의 일련번호로 확인되듯이 100장에서 1장이 부족한 99장입니다. 잎을 소재로 택한 시작은 단순하였습니다. 꽃은 많은 사진가들이 이미 많이 찍었으니, 꽃보다는 관심이 덜한 잎을 찍어 보자는 소박한 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잎만 보면 앵글을 들이대는 작업을 하다보니 잎이라는 잎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계, 그러니까 잎 이미지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2008년 잎-99>를 보면서 이제 100장에서 남은 1장에서는 바로 잎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그런 환희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최소한 10년이라도 한가지 소재를 찍고 나서야 그런 환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나, 살아갈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괜히 성급하게 스스로에게 다그쳐 봅니다.

주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 순간>이란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이다. <놓친 고기가 더 크다>는 식으로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고홍석님은 전북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포토아카데미(http://cafe.daum.net/photoac)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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