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11.3 종합대책 '메스' 대신 '당근'


정부가 지난 3일 내놓은 경기 종합대책은 재정지출을 늘리고 부동산 규제를 풀어 내수 침체를 막겠다는 의도다. 건설에서부터 금융부문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손댔다는 점에서 `종합` 대책이라고 할 만 하지만 시장이 이미 예상했던 내용들이라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상황이 긴급한 만큼 정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경제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특히 건설경기 대책과 감세정책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내놓고 있는 일련의 경제 살리기 정책과도 정반대로 가는 형국이어서 정부의 현실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난도 쇄도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현실도 현실이지만 자꾸 거꾸로만 가는 정부의 인식이 더 문제"라며 "일회성 처방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지금이라도 보다 근본적인 처방에 골몰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33조원 쏟아붓고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경기난국 극복 종합대책` 안에 따르면 경기부양을 위해 지출하는 세금이 종전 예산안에 비해 총 33조원 늘어난다. 올해 유가환급금과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으로 9조원이 줄어들고, 내년도 감세로 10조원의 세수가 덜 걷힌다. 여기에 이번 대책으로 14조원이 추가로 시장에 풀린다.
추가로 풀리는 14조원에 대해서는 재정지출이 10조원 늘어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1조원이 투입된다. 또 3조원 규모의 감세가 추가로 이뤄진다.
이번 대대적인 재정지출로 균형재정은 더욱 멀어질 전망이다. 이번 대책에 따르면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1%에 달하기 때문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조치로 인해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4%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재정지출과 함께 부동산 시장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한다. 강남3구(강남구, 송파구, 서초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체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규제가 풀린다. 덜 걷히는 세금분이 건설경기 활성화에 투입돼 경제성장률 추가 상승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게 정부 의도다.
구체적 골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와 총부채상환비율(DTI) 해제다. 여기에 재건축아파트 단지에 한해 용적률 규제도 완화한다. 과거 주택거품의 온상이었던 아파트 경기 관련 대표적 규제를 모두 무력화하는 셈이다.
정부의 재건축 활성화대책이 발표되면서 강남 저층 재건축을 중심으로 재건축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이번 활성화 대책으로 지난 2003년 말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제정으로 사라지다시피 했던 재건축 시공권 시장 부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재건축이 도급사업 형태로만 진행되고 있고 미분양 문제도 적어 재건축 시공권 수주는 건설사들에게 최대 `알짜` 사업이 될 것"이라며 "지난 2003년 도정법 시행 이후 재건축 단지들의 시공사 선정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 신규 수주 사업장도 많을 것으로 보여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견될 정도"라고 말했다.
대형건설사들은 연말께 재건축 수주 관련부서를 재정비하고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재건축 시공권 사냥`에 나설 방침이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11.3 대책 이전부터 재건축 수주 TF팀 구성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던 상황"이라며 "가능한 빨리 수주 사업부서를 정비해 시공권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소 건설사들은 결국은 대형사만이 재건축 활성화대책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며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내고 있다. 재건축 수주권을 따내려면 조합원 총회의 표결을 통해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본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대형사들이 수주를 독점하곤 했기 때문이다.

추가 위축 막기 위한 대책, 효과는 의문

이밖에 신용보증기금의 건설업체 보증규모 300억원 추가 확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에 추가 출자,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 대책도 포함됐다.
이번 조치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지금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추가 위축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효과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파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 대책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단언하기 힘들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번 정부 대책에도 여전히 정부 정책의 큰 밑그림이 빠져있다는 것 역시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건설경기에 올인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새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데, 여전히 미래 성장을 이끌어갈 비전에 대한 투자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보다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이번 대책이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유는 시장이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정부가 직접 시장을 대신해 필요한 부분에 `메스`를 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도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 위험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우리 경기가 경색국면에 빠지게 된 요인 중 하나가 지난 4~5년 간 생긴 거품이 국제 경제 위기를 맞아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 공급과잉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며 "지금은 필요한 부분에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유도해 건설부문에 선순환이 이뤄질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정부는 다시 거품을 일으키려 한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조금 살아날지 몰라도 이번 대책이 1~2년 후에는 더 큰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청와대 비서관 대운하 재추진 강하게 설파

한편 여권과 정부를 중심으로 중단됐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위한 군불 지피기 작업이 감지되면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가 경제종합대책에서 물관리 명목으로 7800억원을 배정한 것과 아울러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잇달아 대운하 재추진을 강하게 설파하고 나서면서 다양한 추측과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추 전 비서관은 지난 4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대한민국의 미래와 녹색성장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프로젝트"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추 전 비서관은 이날 "국민들 일부가 반대할 지라도 대통령이라면 10년, 20년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며 "(대운하는) 토목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라 건설경기와 자연환경을 위해서도 정말 필요한 프로젝트로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가기 위해서 강을 잘 활용해야 한다" 등등 대운하 사업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추 전 비서관은 반대여론을 의식한 듯 "강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고 복원한 강을 여러 가지로 활용하는 쪽을 고려해야 한다"며 대운하 추진은 하천의 이수 치수 관리 등 환경보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4대강 정비사업`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선 정부가 대운하 건설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이달말로 예정된 정부의 지방경제 활성화 대책 발표 때 `대운하 건설계획`이 포함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1.3 대책에 들어 있는 `미래 대비 물관리`사업은 수자원 활용 관리를 강화하고 재해 예방을 위해 전국의 하천정비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총 7800억원이 투입된다.
구체적으로 국가 지방하천 등 하천 정비 사업에 5000억원, 재해위험정비 저수지 준설 댐 건설 등 사전 재해예방 강화사업에 2800억원이 책정돼 있다. 당초 예산안에 없던 항목이 새로 추가돼 의혹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3일 청와대 정례브리핑에서 `대운하 사업이 다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동관 대변인은 "사회적, 정치적 상상력이 너무나 풍부한 게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절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차기 국가발전패러다임으로 내세우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위해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주축이 돼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내년 초 발족시킬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위원장으로는 이명박 대선캠프와 인수위 시절 한반도 대운하 TF팀에서 활동했던 장석효 전 인수위 한반도대운하TF팀장,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출신인 황기연 한국교통연구원장 등 핵심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으며, 한반도대운하 지지단체인 `친환경물길잇기전국연대`와 `디지털미래연대`가 주축이 된 녹색미래실천연합(가칭 실천연합)이 위원회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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