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경제단체와 국방부, 뉴라이트 등의 보수진영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서술 문제를 거론하면서 일기 시작한 파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권력을 등에 업은 비전문가 단체들이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몰아세우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채택된 역사 교과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강제적으로 수정하려 한다며 성토하고 있다. 수정안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최근 서울시내 고등학교 교장을 대상으로 역사교과서 연수회를 열기도 했다. 
역사학계는 `좌편향` 문제 제기가 과거 사실에 대한 학문적인 해석여부와는 상관없이 특정 당파나 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지만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식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국의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에 이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까지 가세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묘연하기만 하다.

교과서를 정치판으로…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보수진영에서는 반드시 수정해야 할 교과서의 반 대한민국적 내용으로 ▲6.25전쟁을 북한에 의한 도발이 아닌 동서냉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서술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민족이 원하지 않는 방향이었고, 미국의 새로운 식민지인 것처럼 서술 ▲실제로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포고령(포고문) 자료로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처럼 묘사 ▲남북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 ▲건국이후 북한에 대해선 우호적으로 서술한 반면, 남한은 비하했다는 주장 등을 들고 있다.
최근 청와대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역사교과서 개편문제와 관련한 이른바 편향 논란에 대해 "과거에 좌편향이었던 역사교과서를 우편향으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한쪽으로 쏠려 있던 것을 제자리로 갖다 놓겠다는 것이지, 또 다른 쪽으로 쏠리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더욱이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것은 어느 정부를 떠나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라며 "이를 무슨 이념적 편향이니, 독재를 미워하느니, 역사학계에 대한 탄압이니,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사학계는 경악하고 있다. 하원호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는 "역사교과서가 박정희 이후 극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었다"며 "그걸 객관화시키기 위해서 그동안 작업을 한 것이며 현재 교과서는 어떤 면에서 오히려 우편향적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지금 뉴라이트가 내놓은 대안들은 박정희 시절 교과서 내용보다 더 심각하다"며 "이는 좌편향 문제가 아니라 현재 중도적인 입장의 교과서에서 극우로 돌리려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뉴라이트 진영이 무엇을 노리고 글을 쓰는지 뻔히 보인다"며 "식민지 친일파가 근대화 세력이며 해방이후 독재정권과 재벌에 초점을 두고 해방 전후의 친일파와 독재정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신용옥 상임이사는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근현대사에서 독립운동과 민중들의 입장은 그저 `들러리`라고 말한다. 뉴라이트는 일제 식민지 근대화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도 관대하다는 평가다. 여기서 근대화 세력이 아닌 쪽은 도태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
신 이사는 "따라서 근대화세력보다는 오히려 그런 근대화 틈새에서 시달리던 일반대중에 대한 관심을 교과서 상에서 한결 더 높여놔야 교과서가 객관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나 뉴라이트는 최근 출간한 대안교과서와 관련해서도 일관되게 보통사람의 역사를 썼다고 한다. 개화파가 보통사람이라고 하는데 보통사람은 농민이며 해방이후에도 재벌이 보통사람이 아니라 일반 민중"이라고 지적했다. 해방이후 독재와 재별 이면에 민주화세력을 쌍두마차로 갖다놓기도 하지만 박정희 시대가 끝나면 민주화세력을 좌익으로 매도해버린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신 이사는 "일본의 한국사 전공 교수들도 역사 교과서 수정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일부 세력들이 역사교과서 수정을 주도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이는 권력 지향적인 성향을 지닌 세력들의 생떼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학제간 통합에도 거시적 기술은 필요해

보수진영에서 역사학계의 반발을 `학제간 통합에 인색한 역사학계의 이기적인 학문적 풍토`라고 폄하한 것과 관련,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역사는 종합적인 과목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등의 학제간 연구에서 성찰하고 도출된 결과를 원칙적으로 거절할 의사는 없다"면서도 "문제는 토론이 전제되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과 정치적인 압력으로 교과부를 움직여서 자신들 의도대로 수정을 요하는 것을 본다면 과연 그들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반박했다.
학제간 통합과 관련해 윤 회장은 "어디까지나 역사교과서니깐 활발한 논의들을 역사학자들은 수용해야 한다"며 "그러나 경제파트, 정치파트, 이런 식으로 따로 떼어 가면 거시적으로 역사적으로 기술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이를테면 경제사가 역사와 만날 때, 본연의 경제학, 경제사적 시각으로 역사를 보면 사회, 정치, 경제를 통합적으로 아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사적 고찰을 하는 것이냐, 역사학 안에서 나머지 분야들을 살피는 것이냐, 이 두 입장은 전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후자를 수용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윤 회장은 "두 가지 용서하기 힘든 것이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에 있다"며 일제시대 근대화 문제와 역사교사들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윤 회장은 "대부분의 상식과 역사적 연구는 일본이 수탈을 위해 조선을 최소한 성장시켜준 것뿐이며 자본주의 경제가 도래한 것 또한 결과적인 현상이지 일본이 조선에게 선의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다"며 "역사학계 내에서도 진보, 보수, 중도가 있지만 친일파와 관한 한 어느 역사학자도 뉴라이트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민주화도 산업화 덕분에 이루어졌다`는 뉴라이트의 주장 역시 어떤 역사학자도 공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윤 회장은 또 "뉴라이트 때문에 역사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며 "지금까지 좌편향인지도 모르고 교육했거나, 알면서도 숨겼다라는 식인데 향후 사람들이 역사교사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공교롭게도 뉴라이트 역사학계에는 한국사 전공자가 없다. 그나마 있는 역사학자들도 모두 서양사 전공자들이라는 전언이다.  
윤 회장은 "우리 사회가 가뜩이나 고민할게 많은데 역사교과서까지 정치판으로 끌여 들여도 되느냐"며 "뉴라이트 쪽에서는 역사교과서 때문에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못갖는다고 하는데 지금 정치권의 행태가 학생들의 자긍심을 훼손할 것이며 향후 기성세대를 불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정된 교과서가 만약 검인증 교과서로 채택된다하더라도 전국에 있는 역사교사들은 뉴라이트의 주장이 들어 있는 교과서 선택을 지양할 방침이다. 윤 회장은 학교장이 교사들에게 강제로 쓰라고 지시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역사를 전공한 교사들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역사학계 전부 들고 일어나나

역사학계의 이러한 반발은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역사교사와 교수들에 이어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지난 10일 "이명박 정부가 냉전적 이데올로기와 좁은 경제적 관점으로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몰아세우고, 역사 교과서에 대해 부당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며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
고려·서강·서울·성균관·연세대 등 최근 20여개 대학의 역사 전공 대학원생들은 `역사 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 모임`이라는 공동기구를 만들었다. 연세대 대학원 사학과 장미현 씨는 "일부 뉴라이트 계열 단체는 경제성장이라는 잣대로 지난 독재정권의 부당한 권력욕을 미화하기 위해 `시대정신`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운운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런 단체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역사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에는 역사 교과서 탄압으로 시작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학문적 영역까지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전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에 반대하는 역사학계 서명운동을 주도해 온 한국역사연구회는 이날 서명운동을 마무리한 결과,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한 국외 역사학자 113명을 포함해 모두 660명의 역사학자들이 서명에 참여하고 1455만여원을 모금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같은 날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서울시내 고등학교 교장을 대상으로 역사교과서 연수를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공 교육감은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11월말까지 재선정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역사교사들은 물론 일부 교장들조차 "교과서 선정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해야 할 일인데, 교육감이 나서서 바꾸라고 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교과서 재선정을 둘러싸고 학교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법을 지켜야 할 교육청과 교과부가 스스로 규정을 어기고 있다"며 "교육청이 연수를 통해 교과서를 바꾸라고 하는 것은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선택한 역사교사들을 모두 좌편향으로 모는 명예훼손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성명서를 통해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를 채택한 학교는 50% 가까이 되고 이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라면서 "공 교육감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두를 요구받고도 당뇨병 증세가 갑자기 악화돼서 입원한 전력이 있다. 국정감사 출두요구에는 환자가 되고, 교과서를 바꾸라고 윽박지를 때는 투사가 되는 것 같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역사학계와 뉴라이트와의 혈투는 20일 `역사교과서를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그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론장에서도 늘 토론이 없었던 `이명박 사단`과의 토론회가 어떤 의미를 지닐지는 미지수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