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역사교과서 그리고 시장 할머니에게 준 목도리

식민지 정책의 요체란 타국의 언어를 말살하는 것이다. 언어는 그 나라의 관습과 역사 등 한 국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과거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에게 그러했듯이 타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부터 말살시켜왔다. 조선에게 일본이 창씨개명을 시도한 점도 같은 이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말 보다는 영어에 능통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어공용화를 언급할 때부터 수상쩍었다. 이 나라가 부와 명예만 가져다 주지 않았다면 영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갔을 위인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공용화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분명 경솔했다는 지적이다. 영어를 공용으로 쓰는 나라가 있지만 이 나라들은 대부분 희랍 문화의 전통과 궤를 함께 하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게 영어라는 공용어는 자신들의 고유 문화의 균열을 초래하는 것과도 다소 거리가 있고 배우기도 용이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영어에 젖기엔 그리 쉽지 않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공용화 언급과 맞물리는 친미적인 성향은 `미국 식민지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현기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는 잘하는데 우리말에 능통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TV 토론에 나와 패널들의 질문에 동문서답 한다던지 일방향으로 몰아붙이며 소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우리말에 대한 이해력과 언어구사에 혼선을 빚는다는 것이 시사하고 상징하는 바는 크다. 언어는 의식을 지배하는 바, 적어도 겉으로 나타난 이 대통령의 `언어영역`은 자신이 살아온 땅의 공동체적 의식과 문화와 역사를 체화해 낼 그릇이 부족하다는 혐의가 짙다. 그러니, 당연히 역사도 이상하게 바라본다. 이는 결국 불현듯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과거인 친일 문제로 부각된다. 21세기 들어 멀쩡히 다듬어진 교과서를 두고 `좌편향적` `일본 봐주자` 식의 폭탄발언이 그렇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지금까지 논한 언어적인 문제의식에서 비켜갈 수 없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언어영역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한 국가의 수장 밑에서 집필진들은 과연 그 나라의 역사를 올곧게 그려낼 수 있을까. 양심과 소신을 갖고 수정을 요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도 현 정부의 브레인인 뉴라이트 학자들은 양심도 소신도 없어 보인다. 뉴라이트 내에서도 순수성을 잃고 정치적으로 몰락했다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현대사 특강`을 주제로 최근 서울시내 고등학교에서 매일같이 강의하는 내용도 그러하다. 해방이후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등의 군사독재 체제는 시대적 상황상 정당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반하는 체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체제가 친일세력들이 만든 체제니 강의 내용이 이쯤 진행되다 보면 당연히 일제 시대는 근대국가의 지렛대라고 귀결되어버린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역사의식조차 부재한 비역사전공자들의 강의내용이 갈증조작과 이념공세까지 이어지니 학생들과 교사들은 "균형을 잃은 강의"라고 맞받아치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기존 교과서는 긴 시간 수정을 거친 `객관적`인 교과서라고. 그리고 역사는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과정을 `반성`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역사의 과정을 반성할 의향이 없어 보이는 이들 `이명박 사단`은 공교롭게도 친일의 역사 역시 반성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 뻔뻔함은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렇듯 현 정부는 국민들을 `극우편향`으로 세뇌시키기 위해 역사교과서부터 손을 보고 있지만 그러나 이제 국민들은 과거의 `좀비`가 아니다. 상식이 통하는 일반시민들은 정부가 행하는 잘못을 인지하고 있다.

"가만있는 교과서 문제는 왜 들고 나와서 또 이렇게 혼란을 야기시키느냐" "제발 대통령께서는 쓸데없는 데 신경 쓰시지 말고 살린다던 경제나 살려달라"는 식이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TV 토론회까지 이어질 정도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와중 경제는 여전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교과서 문제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 저의는 과연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의 경제상황과 분위기를 봤을 때 내년 4월 계약이 완료되면 많은 수의 비정규직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내년엔 취업문이 바늘구멍보다 좁다고 하니 미취업자들은 한층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젊은이들이여 어디든 도전하라`고 보채고 있지만 젊은 층들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무슨 도전? 사방천지에 널린 게 일자리라지만 대개 비정규사업장이거나 회사 사정이 불안한 중소기업들인 것을.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간 민주투사가 되거나 폐인이 될 것이며 희망 없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간 낮밤을 설치며 착안한 독창적 아이디어가 대기업에 뺏길 것은 불보듯 뻔하다는 것을 `도전정신 있는` `제정신인` 젊은이 정도라면 누구나 안다.

극빈층들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농민들은 쌀직불금 문제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눈물을 글썽이고 비료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농산품 가격은 급락해 대부분의 농민들은 빚에 시달리고 있다. 재래시장 상인들도 여전히 신음한다. 선거때마다 후보들은 시장을 찾지만 시장 상인들 반응은 이번에도 `또 속았다`라는 식이다.
 
당선된 이후 줄곧 강남 부자들 위주의 정책만 펼쳐놓으니 허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시절, 소외계층 표심을 의식한 탓인지 허구헌 날 재래시장을 찾던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런 식의 불만이 대통령 귀에라도 들어간 탓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새벽 재래시장을 찾아 살기 힘들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선물한다. 이 `감동의 장면`은 역시나 다음날 대부분 신문들, 특히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신문들의 1면을 커다랗게 장식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민들의 마음은 그리 감동적이진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양치기 소년이나 악어의 눈물 정도를 떠올렸던 건 아니었을까.

만약 그 `감동의 장면` 속에 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진심`이 일말이라도 깃들어있다면 국민들은 어쩌면 희망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과서 문제 등 국민들 바램과 상관없이 혼란을 부추기는 언행 일삼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한파에 벌벌 떠는 국민 모두에게 목도리 선물을 안겨 주고자 하는 소소한 마음 같은 것.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일 테니까.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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