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밥 식기 전에 빨리 그곳으로 가보세요!
따끈한 국밥 식기 전에 빨리 그곳으로 가보세요!
  • 승인 2008.12.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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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연신내 연서시장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겨울. 전국이 영하로 떨어졌다. 이럴 때면 따뜻한 국밥과 소주가 생각난다. <위클리서울>은 이번에는 두꺼운 파카를 걸치고 장갑을 끼고 부르르 손을 떨며 국밥을 떠먹는 풍경이 절로 연출되는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의 `연서시장`을 찾았다.



연서시장은 규모는 작으나 먹거리는 풍성하다. 족발, 순대 등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안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장사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다. 이곳저곳, 돼지머리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는 아주머니와 펄펄 김이 나는 커다란 통에서 국자로 홍합을 건져내는 할머니, 후후 불며 먹음직스런 순대국밥을 한술 한술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젊은 처녀들이 눈길을 끈다.

시장은 마치 어두운 새벽시장을 방불케 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었지만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구조상 빛이 들어올 공간이 없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희미한 형광등이 네온사인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을 뿐이다. 국밥에 낮술을 먹는 손님들도 종종 눈에 띄지만 초저녁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낮술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금 다 열심히 하니깐 상인들이 단합이 잘 돼야 해요. 어떤 걸 지키려 해도 개별로 해버리면 무너지거든요. 주 3회씩 세일 들어가는 시장이 있는데 우리는 안해. 왜냐하면 먹거리를 세일해버리면 질이 떨어지거든요. 단지 우리는 `뒤`에서 해요. 국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많은데 그럴 때면 가령 3000원짜리 빈대떡을 1000원에 판다던가."

뒤에서 깎아주는 세일에도 이유는 있다.
"사실 장사란 게 사람들이 움직여야 되는 거죠. 세일하는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말은 못하겠네요. 어떤 것은 손해 볼 것이고 어떤 건 조금 남겠죠. 하지만 백화점도 세일하면서 홍보를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득 보려고 하는 게 아니죠. 사람들에게 홍보도 하고 서비스도 함으로 해서 계속 `시장=싸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 발이 비싼 고급 식당으로 가지 않고 이리로 오게 되는 거죠. 고민하지 않고, 사람들이 생각이 없이 여기로 오게끔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아울러 각종 국밥이나 부침개 등은 `우리 집이 제일 잘하더라`는 이렇게 인식도 남기고…."

이 자그마한 시장에서 홍보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한쪽 구석에서 무를 썰고 있는 아주머니는 코웃음을 친다.

"코딱지 같은 시장에서 홍보는 무슨… 단골들만 오는 거지."

그러자 바로 옆 가게 아주머니는 `나름대로 홍보를 한다`며 수습한다.
"세일 기간 찌라시(전단지) 돌리기 전에 총무님이랑 임원들이 차를 타고 돌아요. 시장 차에  플래카드나 현수막 같은 걸 내걸어서 말이죠. 기자분, 여기 온 김에 식혜나 한잔 드셔. 이렇게 권하면서 식혜 홍보도 하는 거지."

아주머니는 잘 안되는 재래시장 상인들을 위한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남 따라 하면 안돼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개발해야죠. 옆집이 잘 된다고 따라하면 안돼요. 어떤 시장 가보면 떡이 잘되면 떡집만 다 해요. 시장이란 게 여러 종류별로 어울리지 않으면 죽어요."



상인회에서 자기가 하는 품목을 바꾸지 못하게 규제하려 해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못하게 누를 수 있는데…경제가 바닥이고 `내가 죽게 생겼는데`라고 말하면 그걸 상인회에서도 잘 막지 못하지…."

이때쯤 순대를 사러온 손님 부부가 눈에 띄었다. 손님에게 시장 올 때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물어봤다.

"여기로 올 때 고민을 하냐구요? 고민 없어요. 애들 간식이나 잡화 살 때나 마트 가는데 여기 올 때는 그런 거 생각 안해요. 주로 어른들 먹는 먹거리고 싸고 저렴하고 바로 바로 온 것들을 파니깐 신선하기도 하고. 마트는 좀 뭐랄까? 재고품들 같더라고요. 장보러 여기로 올 때 고민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런데 요즘 다들 마트로 쏠리는 경향이 있죠.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돼야 하는데, 다들 마트로 쏠려요. 근데 그게 좋은 현상이 아녜요.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빠진다고. 다들 `자기 살려면 너 죽여야 한다`고 하는데 몇 년 후면 똑같은 거죠."



부부 손님은 덤으로 달라는 손님들에게도 일갈을 가한다.
"손님들 중에는 덤으로 빼앗아 가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시장 상인들이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자꾸 한 두 개씩 더 달라는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옆에서 순대와 족발을 썰고 있던 가게 주인은 (웃으며) "재래시장의 원리란 게 `달라기 전에 하나 더 줘야 한다는 거죠"라고 얘기한다. 주인은 얘기를 계속 이어간다. 

"보면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어요. 잘 사는 걸 못 봤어요. 사람들이 멀리 못 보고 자기 코앞만 보게 돼요. 멀리 보면 사람이 욕심이 없어져. 다 같이 고루고루 잘 살 수 방법을 모색해야지. 물론 재래시장에는 `덤`이라는 그 맛이 있지요. 마트에 가면 절대 그런 소리 없잖아요. 가격표대로야. 중요한 건,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경제가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지요. 주부들은 자기 주머니만 생각하지 말고 말이지. 너무 자기 편리함만을 추구해요. 마트보다는 시장 좀 자주 찾고, `덤`만 너무 찾지 말고…. 그런데 이런 생각으로 부유층을 바라보면 걔네들은 우리보고 열등감이라고 해요. 내 돈 가지고 내가 잘 먹고 잘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잖아요."

주인은 `내 돈 가지고 내가 맘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좀 더 깊게 풀어간다. 

"없어본 경험이 없으니깐 그렇지요. 지금 미국이나 선진국을 봐요. 나누는 게 발달돼 있잖아. 그러니깐 우리가 그 사람들 부를 못 따라가는 거에요. 기부 문화가 없어요. `사랑의 리퀘스트`같은 프로들 보면 좀 이성적으로 설득시키기에 앞서 감정적인 면에 호소하잖아요. 아주 아픈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니네가 이런 거 보고도 전화 안 걸면 지독한 놈들이지`라는 식으로 하잖아요. 나누는 문화는 멀리 봐야 해요. 우리는 그런게 없어요. 그 결과는 금방 오는 게 아니에요. 국가 차원에서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가르쳐야 한다구요."



시장 한쪽 구석에는 시장 분위기와는 안맞게 과일을 파는 할머니도 있었다.
"소주, 빈대떡을 많이 사먹기 때문에 과일가게는 없어. 왜 그러냐면 과일은 필요한 사람이 사가잖아. 과일은 등산 다니는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사가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내가 여기서 업종을 안바꾸는 이유는 그게 잘 된다고 또 그거로 바꾸고 그러면 시장이 죽어버리잖아. 포목이 있고, 과일도 있고 이렇게 어울려서 해야지. 빈대떡 한다고 다 그거 하면 오히려 안 돼. 그리고 이 나이 먹어 빈대떡 지지는 것도 이제 싫어."

구멍가게들 밀집지 같은 시장이지만 상인들끼리는 알콩달콩하며 즐겁게 장사를 하는 연서시장의 풍경이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이 추운 겨울 연신내 인근에 사는 시민들이라면 때론 따뜻한 국밥이 식기 전에 연서시장으로 향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공민재 기자 selfoc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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