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색 문화제 '널 기다릴께 무한도전×2'

지난 9일부터 21일까지 명동에서는 퍼포먼스를 곁들인 이색 문화제가 열렸다. 한 시민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문화제는 매일 저녁 참가 인원이 2배수로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내용은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것. 9일 1명, 10일 2명, 11일 4명, 12일 8명… 모임 10일째인 18일에는 목표인 512명을 달성했다. 

쥐잡기 퍼포먼스, 춤과 노래, 인간 도미노 게임 등이 열리면서 집회나 기자회견과 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지양한 이 문화제의 주제는 목표치인 4096명을 한 명 한 명 기다리겠다는 `널 기다릴께 무한도전×2`. 집회 형식을 파괴한 `퍼포먼스` 혹은 파괴를 형식화 한 `집회`인 셈이어서 색다른 관심을 끌었다.



명동 거리의 시민들은 연일 환호했고 적극 동참했다. 저녁 7시경에 시작된 문화제는 대개 9시를 조금 넘기면 목표치를 달성하고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갔다. 송년회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 문화제 `∼무한도전`은 4096명을 목표로 한 21일 유종의 미를 거뒀다.

21일 명동에서는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일부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를 향해 `자유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라고 호소하는 듯한 명동의 축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 문화제에는 흔히 주동자로 몰리게 되는 `대표`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질서하거나 조잡스럽지도 않았다. 대학축제 같은 분위기에 명동 거리의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참가했고 일본인 관광객들은 신기롭다는 듯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들 참가자들이 영하의 날씨를 견디며 목표치를 향해 몇 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에겐 `소원`이 한가지 있다. 비정규직 철폐? FTA반대? 조국의 통일? 세계평화? 어림도 없다. 이들은 "민주주의부터 보장하라"고 말한다. 당장은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외친다.

이 문화제를 촉발시키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이는 한 참가자는 "명동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벌이게 된 이유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껏 일부러 `집회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기 위해 안달 난 정부에게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집회신고를 하지 않는 자유로운 문화제 형식의 모임으로써 집회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라고 어필하는 것이다.



때문에 문화제엔 주동자도 없고 전략적인 계획도 없다. 참가자들끼리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대개 명동 거리를 지나치다 멈춰선 일반 시민들이다.

"전 오늘 처음 나왔는데요. 누구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것은 없어요. 저기 가서 물어보세요. 운영자처럼 보이던데…."
운영자처럼 보인다는 이는 자신은 운영자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인터넷 카페는 있어요. `널 기다릴께`라는 카페죠. 근데 카페 회원은 많지도 않고 운영진 같은 건 없어요. 카페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매일매일 바뀐다고 해요. 이명박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거니 카페의 의미는 크지 않아요."

왜 하필 21일까지냐는 질문에 "글쎄요? 숫자는 의미가 없네요"하고 답한다. 계산해보면, 만약 모이는 사람 수에 의미를 두는 도전에 성공한다고 가정했을 시 1월 3일까지 하면 이명박 정권이 무너지고 1월 4일까지 하면 김정일 정권도 무너져 버린다? 진정 새로운 통일조국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런 혁명적인 발상을 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는 얘기다.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야할 운영진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이 많아서 사람들이 절 따르는가 본데, 오늘은 제가 총대를 맨다면 맨 셈이죠. 근데 전 내일 나올지 안 나올지 몰라요. 그때그때 총대 매는 사람이 바뀌는 거고 그것도 아니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뭉쳐지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은 자기가 원하는 퍼포먼스를 골라 명동 거리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한 종류, 한 자리에 집중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퍼포먼스가 명동 거리 곳곳에서 들쭉날쭉하게 이어졌다. 즉석에서 누가 자신이 생각한 놀이를 제안하면 곧바로 `판`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2MB OUT`이라는 피켓이 진열된 곳곳에서 기차놀이, 시체놀이, 말타기놀이 등을 벌이며 또 다른 시민들을 유혹했다. 

한쪽 편에서는 "100번째 시민에겐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하자 시민들은 100번째 표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고 그 이벤트란 표를 받은 주인공이 `장기 자랑`을 하는 것이라고 밝히자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채 2시간도 안돼 512번째의 주인공이 나타났고, `미션 성공`이라는 구호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흩어져 있던 시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헤쳐 모이기 시작했다. 512명의 `인간도미노` 놀이로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다.       

집회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시민들의 수가 일정정도 늘어나다 보니 경찰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14일이나 15일까지만 해도 시민들이 모이는 수가 적어 낌새를 채지 못했던 경찰. 그러나 그 수가 부쩍 늘어나자 18일 경찰병력이 명동에 대거 투입됐다. 전의경 수백여명이 명동거리를 가득 채워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그러나 시민들은 아랑곳 않고 자신들의 `놀이`에만 집중했다.   

일부 사복 경찰들이 퍼포먼스를 사진에 담다가 여대생으로 보이는 이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아저씨 경찰이에요?"
"응."

"왜 찍어요? 어디다 쓸려고 찍어요?"
"너네 여기서 이러면 못써. 그리고 어린 놈들이 어른한테 덤비면 못쓰지."

"흥! 재수 없어. 왜 반말하고 그래? 나도 성인이구만."

모인 시민들을 안하무인격으로 무시하는 일부 경찰들. 때문에 이렇듯 우스운 상황도 연출됐다. 사복 경찰들의 표정에서는 `이거 도대체 무슨 개념으로 잡아들이지?`라며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만약 문화제를 집회 개념으로 엮는다면 지금까지 이런 개념 없는 집회는 처음 봤기 때문이렷다.

"이거 집회 아니에요. 우리끼리 노는 건데 어쩔건데요?"
젊은 청년들은 당당하게 `개겼다`. 사복 경찰들은 `저걸 그냥…` 하고 일순 상체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지만 그뿐이다. 딱히 어떻게 해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부 사복 경찰들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여기 주동자가 누구야?"하고 윽박질러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명박은 물러가라!".



시간이 흘러 512명이 다 모이자 경찰은 명동 거리 한복판을 원형경기장의 관객들처럼 빙 둘러쌌다. 한 시민이 "자 이제 번호표를 비행기로 접어서 던지세요!" "그리고 하나 둘 셋 하면 도미노처럼 누우세요" 하고 외친다.
      
순간 한 사복 경찰이 무엇인가 굉장한 걸 포착해냈다는 듯 시민의 번호표를 빼앗으며 "이런 거 두 장 이상 뿌리면 불법 유인물입니다. 이거 누가 뿌렸어요?" 하고 번호표를 뿌린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도미노 함성에 경찰의 목소리는 곧 묻혔고 도미노는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퍼포먼스가 끝나자마자 경찰들은 주동자 색출에 나섰다.

"아 짜증나. 이거 놔요. 전 오늘 첨 나왔어요."
"왜 이러세요? 저 빨리 집에 가야 돼요."

시민들은 짜증난다는 투로 경찰들의 손을 뿌리쳤다. 경찰들은 하나같이 머쓱해하며 손이 부끄러운 듯 단호하게 맞서지는 못했다. 문화제가 끝나자 퍼포먼스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이후엔 그저 평범하게 명동거리를 활보했다. 명동거리는 곧바로 2시간 전의 그 평범한 거리로 탈바꿈됐다. 주동자가 명동성당 쪽으로 갔다는 괴담에 전의경 병력들이 명동성당 정문을 봉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경찰이 찾는 주동자는 `유령` 같았다.

어쩌면 모두가 주동자였을지도 모르지만 일제히 "내가 주동자다"라고 외치면 "그래 잘됐다. 너라도 잡자"라며 잡히는 대로 다 잡아갈지도 모르는 최근 현실. 때문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비단 명동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시청에서도 매주 수요일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채 촛불을 든 소수의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집시법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어디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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