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동대문종합시장 액세서리 상인들

붕어빵 장수, 오뎅 장수 등 날이 추우면 바빠지는 상인들이 많지만 그중 가을, 겨울 시즌이 `통`으로 바쁜 상인들이 있다. 바로 동대문종합시장의 액세서리 상가 상인들이다. 아무래도 가을, 겨울 시즌에 사람들이 지퍼가 부착된 점퍼 등을 많이 입고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상가의 상인들은 분주하기 짝이 없다. "인터뷰 하려면 봄이나 여름에 찾아와야지, 이렇게 바쁠 때 찾아와서 무슨 얘기를 듣겠어?"라며 커다란 짐을 싣고 지나치는 상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점심식사 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한 상인과 접촉했다.    

"여기서는 주로 지퍼를 중심으로 옷에 부착되는 여러 액세서리를 판매해요. 의류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나 디자이너들이 많이 찾아요. 도매상이라 일반 손님들은 거의 없죠. 지퍼가 고장 나거나 해서 혼자 집에서 고칠 요량이 아닌 이상 일반 손님들은 보기 힘들죠. 디자이너들이 주문하면 공장에 신청하고 제날 되면 물품 떼러 가는 거죠. 공장은 다들 작아서 서울 중심가에 많이 위치해 있습니다. 동대문 주변부터 성북구까지, 곳곳에 액세서리 공장이 숨어 있어요."



상인은 날이 추워야 장사가 잘된다는 지론을 펼친다.
"아무래도 봄이나 여름보다는 가을, 겨울이 바쁩니다. 날이 쌀쌀하다보니 지퍼 달린 점퍼같은 걸 많이 사 입는 계절이니 말이죠."

기자는 각각의 계절에 맞춰 디자이너가 액세서리를 주문하고 옷이 유통되기까지 과정이 그렇게 빠르고 손쉽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브랜드는 좀 다르죠. 고급 브랜드의 경우는 아무래도 과정이 더 복잡하고 유통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죠. 이를테면 가을에 옷이 나오면 봄에 미리 액세서리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대부분 동대문 인근 상가의 뉴존이나 밀리오레에 전시되거나 판매되는 것은 그 계절에 주문하고 곧바로 유통돼요."



액세서리 공장에서 완성된 제품이 나오면 주로 오토바이 기사들이 메신저가 된다고 한다. 

"동대문에 왜 오토바이가 많은 줄 아세요? 가게는 우리가 지켜야되니까 기사분들한테 맡겨야죠. 택배 기사랑은 좀 달라요. 동대문에 있는 가게들 전문으로 배달하는 단골 배달부들입니다. 저기도 노조 같은 게 있으려나…."

그런데 요즘은 경기침체로 몇날 며칠 멈춰 서 있는 오토바이도 많다고 한다.

"예전엔 동대문 도로 주변에 오토바이 천지였는데 요즘은 골목 주변에 오토바이가 깔려있어요. 그만큼 경기가 침체됐다는 거죠. 몇날 며칠 시동 꺼놓고 운행 안하는 오토바이도 많습니다. 저기 봐요. 눈, 비 내릴줄 알고 일부러 덮개로 덮어놓은 오토바이도 줄 서 있구만."



자리를 이동해 상가로 진입, 무언가를 열심히 손질중인 상인과 마주했다. 여기서 20년 가까이 액세서리 장사만 했다는 윤 모 씨다. 윤 씨는 지난 10년 동안의 성수기와 비수기를 나름대로 구분한다.

"사실 IMF때 장사가 가장 잘 됐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돈이 없으니 명품 브랜드를 안사고 이런데서 만들어지는 걸 사는 거죠. IMF 터지고 한동안 장사 잘됐어요. 백화점 옷보다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싸게 파는 옷들을 선호했으니깐요. 옷은 입긴 입어야 되고 소비심리는 위축되고 하니 다들 저렴한 제품들을 찾았죠."



기자는 "지금이 IMF보다 더 힘들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지금은 장사가 잘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다른 가게를 운영하던 김 모씨가 끼어들며 또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김 씨도 20년 가까이 장사를 했단다.    

"경기가 어떠한가도 중요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옷이라는 게 패션이고, 패션이라는 게 유행을 타잖아요. 액세서리가 많이 달린 옷이 유행일 적이 있었어요. 한번 그렇게 유행을 타면 3년 정도 갑니다. 그래서 경제랑 상관관계랑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희 가게도 주 품목이 지퍼인데, 지퍼도 유행이 있어요. 한 3년 정도 유행을 타는 것 같아요. 지퍼 많이 다는 옷들이 잘 팔렸다가 안 팔렸다가 뭐 이런게 반복되는데 주기가 3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김 씨는 지금은 유행도 뭐도 아니란다.
"경기가 좋아지면 옷도 그만큼 잘 팔릴 텐데, 소비가 위축이 돼서 옷도 많이 안사입죠.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지난 대선때 경제를 살린다는 말에 이명박 후보를 찍었는데 경기가 점점 나빠지고 있으니 원…."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나요. 사람들은 서민들 위해주는 게 민주노동당이라던지 진보신당이라던지 뭐라 뭐라 하는데 과연 대안이 될지도 의문이고 특히나 정치 같은 건 잘 모르니…."



그래서 최근 들어 상인들은 야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가죽점퍼 액세서리를 주로 다룬다는 한 상인은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요일에도 나와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래 겨울 되면 가죽점퍼가 유행이었잖아요. 물론 유행도 때마다 다르지만 최근 들어선 많이들 안입는 거 같아요. 가죽점퍼가 아무리 싸구려라도 십수만원씩 하니까 말이죠. 그런데 경기가 안좋으니 디자이너들도 주말에 회사 나가는 경우가 많나봐요. 게다가 주문량도 지난해 보다 훨씬 줄어서 저도 먹고 살려면 주말에도 디자이너들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거고…. 이게 상호 의존하는 장사라니깐요. 디자이너들 주문량에 제 목숨이 달린 거죠, 허허. 예전엔 이곳 상가들 저녁 7시면 다 문닫고 나갔는데 요즘은 밤 9시까지도 불 켜놓고 일하는 상인들이 많아요.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거죠. 일요일엔 원래 상가 정문을 잠궜었는데 요즘은 일요일에도 상인들이 많이 나오니 경비 아저씨가 아예 아침부터 열어놓더라구요."



가을, 겨울이 성수기라는 동대문종합시장의 액세서리 상인들. 그러나 올해는 최악의 경기침체로 쌀쌀할 날씨 덕도, 유행 덕도, 저렴한 가격 덕도 보기 힘들다는 회의적인 전망이 상인들 사이에 팽배하다. 후보시절에 이어 얼마전 다시 한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줬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거는 희망이 크다고 하는 상인들.



겨울 내내 바빴으면 하는 바램의 액세서리 상가 상인들의 겨울 초입, 출발은 그리 나쁘진 않다. 그러나 엄습해 오는 `불안`은 피할 길이 없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올 겨울, 우리 국민들에게는 어떠한 의식이 요구될까. 자신이 비록 명품을 지향할지라도 비싼 명품보다는 서민들이 만든 저렴한 `서민적 옷`을 사 입는 것이 자신에게나, 신음하는 서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아닐까.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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