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경동수산물시장



경동시장은 워낙 커서 흔히 매장들이 모두 다 장사가 늘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동시장내에서도 어두운 코너가 있다. 바로 수산물 코너. 
"물어보면 뭐해. 사람은 많은 것 같아도 건너편 수산시장 때문에 사러 들어오는 손님은 통 없어요. 장사 안되는 게 가면 갈수록 더해요."



경동수산물시장에서 만난 생선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경기가 어떻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답했다.

"손님은 없고 상인들은 너무 많아요. 그런데 물건은 또 너무 흔하고 대형마트에서도 다 취급을 하니까 재래시장은 점점 더 죽어간다고 봐야죠. 다들 손님 없고 장사 안 된다고 아우성이예요. 지금 임대료 안 밀린 집이 없고 10개월씩 밀린 집들도 수두룩해요."

수산물 시장에서만 15년 동안 장사를 해왔다는 아주머니는 최근의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장사가 그렇게 안되면 그만두고 떠나는 상인들도 있느냐는 질문에 아주머니는 "나가면 또 무슨 일을 하겠느냐"며 "그만둬도 할 게 없으니까 다들 장사가 안돼도 임대료 밀려가면서 계속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30대로 보이는 주부 2명이 갈치와 오징어를 잠시 보다가 이내 떠나자 아주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다른 주부가 생선을 구경하다가 아주머니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일 없수다. 아쉬운 거 없으니 가쇼."

아주머니의 푸념이다. 턱도 없는 가격으로 흥정할 것이면 아무리 손님이라도 상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다. 흥정하는 맛에 재래시장을 찾는다지만 요즘은 흥정할만큼 손님들이 붐비지도 않는다. 시장은 오가는 사람들도 드물었지만 아주머니 말마따나 손님이 온다한들 흥정하는 모습조차도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을 가로지르는 큰골목은 기념품이 들어있는 쇼핑백이나 먹을거리를 양손에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손님들이 종종 보일 뿐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오가는 사람이 뜸했다.

꼬막과 명태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 주인, 오징어 가게 주인, 멸치 가게 주인, 갈치 가게 주인 모두 호객행위를 할 사람조차 눈에 띄지 않자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 중 하나인 시장 입구의 각종 생선 가게 주인들도 우는 소리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삼과 김, 홍어 등의 식품을 파는 시장 입구의 보양식을 제공하는 노점 주인은 나이든 노인들을 앉혀놓고 제품에 대해 한참 설명 중이었지만, 가게 주인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주인 아저씨는 "노인들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잘 사지를 않고 값이 나가는 건강식품보다는 1∼2만원짜리 김을 많이 사가는데 별로 돈이 안된다"며 "요즘 매출이 작년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푸념했다.

옆에 있던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 점원은 시장 입구의 구세군 냄비를 가리키며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니까 저 딸랑거리는 종소리도 신경이 쓰일 정도로 상인들이 모두 예민해져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나마 연초 분위기에 외출을 나온 주부들이 많아지면서 게, 조개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들은 활기를 띈 모습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 구경 나온 아이들은 게들이 움직이는 모습에 신기한 듯 툭툭 건드려 보기도 했고 새색시 같은 젊은 주부는 서툰 손길로 1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물건 값을 치렀다.

시장 한편에서는 상인과 손님이 몸싸움을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아줌마 이러면 안되지. 왜 같은 가격인데 나한텐 3개 밖에 안주고 저 사람한테는 4개 주는 거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이거 놔."

생선 한 마리를 서비스로 준 게 화근이 됐나 보다.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이는 손님은 입장이 난처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한 마리를 덜 받았다고 주장하던 손님은 서비스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손님의 팔을 낚아 몇마리인지 확인하자고 요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상황이 종료된 후 연유를 물었더니 드세 보이는 가게 주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단골이라서 살짝 한 마리 얹어줬는데 저 사람(서비스 못 받은 손님)이 어찌 눈치를 챘는지…."

요란한 추임새로 손님들을 끌어모아 쉴 틈 없이 오징어를 흔들어대며 팔던 오징어 가게 주인 아저씨는 "오늘처럼 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지만 들쭉날쭉해서 잘 안되는 날도 많다"며 "작년보다 안되는 건 확실한데, 작년에 오징어 3∼4포대씩 팔다가 이번 겨울에는 많이 팔아도 그 반도 안된다"고 얘기했다.

27살에 시작해서 이곳에서 15년째 오징어를 팔고 있다는 김모 씨는 요즘처럼 어려웠던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 2월부터 운송비, 원가 등이 많이 올라 오징어 가격을 7마리 1만원에서 5마리 1만원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고, 가격이 비싸다고 외면하는 손님도 많다는 것이다. 바닷가에 가서 직접 떼 와서 마진이 아주 적은 편은 아니지만 예전만은 못하다고 했다.

오징어를 사기 위해 1만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무슨 오징어가 이렇게 비싸?"라고 투덜거리는 한 손님에게 주인은 "그건 저한테 물어보지 마시고 수산협회, 어민들,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한테 물어 보이소"라고 능청스럽게 답해 손님들을 웃게 했다.
김 씨는 "정부에서는 3개월 지나면 경기가 좋아질 거라고 하는데 현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말이 전혀 몸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장사가 안 된다고 계속 인상 쓰고 있으면 올 사람도 안 오니까 일부러 더 재미있고 힘차게 하려고 노력한다"며 활짝 웃었다.

수산시장 가장자리부터 해서 여타 노점들은 수많은 인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대 다른 수산시장과는 대조를 이뤘다. 이 시장 안을 가득 메운 주부와 노인들은 저렴한 가격에 놀라며 바구니에 한아름씩 이것저것 물건들을 가득 담았다.
일본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일본어에 더디지만 대충 알아듣는 듯한 한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관광객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며 상품을 찾아주고 안내했다. 각종 차를 파는 이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잠시 짬이 난 틈에야 겨우 기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이곳에 매장을 연 지 3년 정도 됐다는 아주머니는 "2∼3개월 전부터 엔 환율이 높아지면서 일본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며 "요즘은 손님들의 열에 하나 정도는 일본인들"이라고 얘기했다.

여타 노점들도 수산시장보다는 활기찼다. 그렇다고 경동시장 건너편 모 수산시장에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동시장내 소외된 시장은 게다가 지하에 위치해 있다. 경동수산물시장이 언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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