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삭풍속 봄의 흔적들

갈매기의 꿈

한 두 마리가 아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갈매기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방향도 모두 다르다. 자유롭게 앉아서 쉬는 새도 있고 쉼을 마치고 막 비상하는 새도 있다.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한가로울 수 없다. 그 여유가 만들어내는 편안함이 내 안까지 배어든다.



이곳은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곰소항이다. 예전에는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배가 드나들지 않는 부두가 갈매기들의 쉼터로 바뀐 것이다. 하얀 깃털이 그렇게 의젓하게 보일 수가 없다. 노란 부리 끝 빨간 점이 인상적이다.
단단한 부리에 찍힌 빨간 점이 마음에 각인된다. 그것은 사랑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동안의 따뜻한 날씨, 겨울 같지가 않았다. 그것을 시샘이나 하듯이, 몰아치는 삭풍에 온 몸이 움츠려든다. 그럼에도 갈매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강인한 힘의 근원이 그 빨간 점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봄을 부르는 갈매기의 빨간 점은 아닐까.

모두가 어렵다. 들려오는 소식은 `경제난`이란 한 점뿐이다. 살아오다 보니, 좋은 날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어려움 또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늘 좋기만 하면 고마운 줄을 모른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어려움은 극복되어질 수 있기에 아름다워질 수 있다. 일에 몰입하여 열심히 하다보면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다. 어려움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힘듦과 고통스러움이 영원히 계속 될 수는 없다.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고 난 뒤에 얻는 기쁨과 행복은 더 커진다.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고 일어서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새들의 모습에서 주저함이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 당당함이 어찌나 우뚝한지, 강풍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몰아치는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비상하는 동력이 된다.



힘차게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봄을 느낀다. 힘을 얻는다. 경제적 어려움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희망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내일을 향해 비상할 때를 상상한다. 그 때의 감동이 온 몸을 휘감는다.

밝게 웃는 얼굴

피었다. 한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환하다. 작지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찬 기운이 몰아치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저렇게 작은 꽃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홀로 꽃을 피워내고 있는 나무의 용기가 그렇게 가상할 수가 없다.



내내 겨울 속의 봄이었다. 어찌나 포근한지, 겨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하늘의 보살핌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기운이 어찌나 좋은지,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런 마음을 시샘이나 하는 것인지, 기습적으로 몰아쳤다. 한파에 그렇게 굴복하고 싶지는 않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매화 마을을 찾았다. 몰아치는 삭풍과는 달리 차안에서 받는 햇살은 따뜻하기만 하다. 차 밖은 강풍이 몰아치는데 아이러니하다.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새삼 놀란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가 정말로 나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참 나가 누구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활짝 핀 매화도 갑작스런 추위에 흔들린다. 꽃 이파리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꽃은 굴하지 않는다. 환하게 웃으며 당당함을 뽐낸다. 그 의연함을 바라보면서 나를 본다. 움츠려들었던 가슴을 다시 펴본다. 꽃처럼 당당해지고 싶어진다.

매화에서 깨닫는 것이 있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어서 슬퍼지는 것이라고 하였던가? 마찬가지로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즐거워진다고 하였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삭풍이 몰아치는 시점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매화를 보니, 삭풍은 어느 사이에 부드러운 봄바람으로 바뀌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바람이 바뀐 건 아니다. 꽃을 통해 마음을 바꾸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한기를 품은 겨울바람은 불어대고 있다. 그런데 꽃을 통해 마음을 바꾸니 달라졌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웃으면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매화의 웃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밝은 웃음의 위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웃고 웃으면 즐거워지고, 즐거워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활짝 피어 있는 매화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꽃의 밝은 웃음의 마법으로 얼마 있지 않아 매화 세상이 될 것이다.



매화 세상. 어렵고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활짝 웃고 있는 꽃처럼 웃고 웃으면 분명 힘을 얻을 수 있다. 어려운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상식을 뒤집어 생각하게 되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화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난향

"이게 무슨 향이야?" 문득 방안에 가득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에는 음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있으니, 코끝을 자극한다. 아내는 그렇게 무디냐고 핀잔이다. 꽃 핀지가 며칠 되었는데, 이제야 그것을 느끼느냐는 것이다. 이유 있는 힐난에 할 말이 없다. 마음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눈을 15도 위쪽으로 올리니, 들어오는 것이 있다. 책상 위에 놓인 화분.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을까? 기억이 없다. 매일 책상에 앉아 일을 보았다. 그런데 왜 화분을 보지 못하였는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건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책상 왼쪽 모서리에 화분이 있고 그 화분에는 난 꽃이 피어 있다. 난꽃이다.

동양란이 아니다. 우리가 춘란이라고 부르는 난이 아니다. 꽃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꽃송이들은 그 사이 사이에 피어 있다. 3개의 꽃잎이 아래를 받쳐주며 여유의 멋을 자랑하고, 그 위로 또 다시 두 개가 쫑긋 세운 토끼 귀처럼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아래에 수줍은 듯 붉은 입술 모양을 하고 피어 있는 꽃의 자태가 그렇게 우아할 수 없다.

환하게 웃는 꽃에는 봄이 물씬 배어 있다. 밖은 갑작스레 몰아친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두렵지 않다. 방안에 피어있는 꽃이 그것을 말해준다. 겨울 추위가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꽃이 말하고 있다. 그러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꽃에 배어 있는 봄은 힘이 나게 한다. 봄,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지 않는가? 코끝을 자극하는 은은한 향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꽃을 바라보노라니, 시나브로 몸과 마음이 따스해진다. 온몸에 스며드는 온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새로운 힘이 세포 구석구석에서 발산된다.

꽃을 바라보면서 깨닫는다. 아무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이 오고 있어도 봄을 보려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볼 수 없다. 마음의 눈을 뜨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꽃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방안에 진동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 향을 취할 수 없다.



난꽃을 바라보면서 오관을 넘어선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단점에는 눈을 감고, 좋은 점을 찾는 데에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도처에 희망이 넘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슴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노력하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다. 난향이 그윽하다.

<춘성(春城) 정기상님은 전북 완주 봉동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