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다!
꽃,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다!
  • 승인 2009.03.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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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서

눈이 부시다. 주변의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작은 꽃 어디에서 그런 힘이 발산되는지 놀랍다. 황량한 풍광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만개하지 않았는데도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그 힘에 놀란다. 분명 다른 세상이다. 새로운 세상이 꽃에 의해 창조되고 있다.



봄을 먼저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달려왔다. 전주에서 광양의 매화마을까지 달리는 기분은 최고다. 왜 이곳이 멋진 자동차 도로로 선정되었는지, 온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산과 강물 그리고 꽃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어 좋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자동차의 고마움을 실감한다. 꽃이 만개하면 몰려드는 차와 사람들로 인해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무런 불편 없이 매화를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매화. 눈 속에 피는 꽃이다. 하얀 눈 사이로 피어난 꽃을 설매화라고 한다. 꽃은 봄을 이끈다. 매화가 피면 봄이 따라온다. 겨울이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그 뿐이다.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의 물처럼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



매화가 돋보이는 것은 겨울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겨내야 하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야만 영혼은 성숙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통찰력은 영감을 얻을 수 있게 하고 거기에 성실한 노력이 더해지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꽃이 피는 과정을 보면 시련은 결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겨울의 심술로 인해 피어난 꽃송이가 상했다. 꽃을 피어내려고 맺은 꽃봉오리 또한 추위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피어난 꽃이기에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섬진강과 어우러진 꽃들을 바라보면서 현실을 생각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멋진 꽃을 피워내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면 분명 아름답고 멋진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피어난 매화가 참으로 곱다.

아름다운 세상

전선 위에 까마귀들이 앉아 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마음을 잡는다. 무엇에 놀랐는지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이내 옆에 앉아 있던 까마귀들도 일제히 비상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자동차를 멈출 수밖에 없게 한다. 가슴에 들어오는 새들의 모습이 그렇게 우뚝할 수가 없다.



여기는 전라북도 부안읍이다. 변산국립공원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하다. 어서 빨리 편안한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노정을 마무리하는 기쁨은 여행의 맛을 배가시키는 또 하나의 방편이다. 그런 마음을 잡을 정도로 새들은 우뚝했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는 흉조다. 그런 고정관념이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혐오스럽게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라고 한다. 새들 중에서 가장 영리한 새가 까마귀라고도 한다. 죽음을 예견하는 명석함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전선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에서 혐오감은 느낄 수 없었다. 울음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나 하늘로 멋지게 비상하는 모습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단지 마음을 열지 못해 그런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변산국립공원의 하섬이나 적벽강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에 까만색의 바위들이 서 있는 풍광이 장광이 아닐 수 없었다. 멋진 절경에 취해 있던 눈이어서 아름다운 세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까마귀들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선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살아 있으니 좋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살아 있기에 사랑할 수 있다.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들이 우뚝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일이 있으니, 가슴 설레고 설레는 마음은 이내 행복으로 이어진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가슴 안에 이렇게 따뜻한 온기가 있는 한 세상도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다. 바깥 세상에 아무리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하여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부드러운 새들의 모습에서 물들지 않는 나를 떠올려본다. 사람 속에서 부딪히면서 살아가면서도 참 나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멋진 나를 생각해본다.

변산국립공원이 까마귀들의 멋진 모습과 어우러져 더욱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구족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슬픔이다. 멋진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감사하며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벽을 허무는 사랑

비속을 달리니 우울했던 마음이 씻겨 내린다. 땅을 적셔주는 빗방울. 그 속을 달리니 시나브로 나 자신도 흠뻑 적셔진다. 자동차의 차창에 부딪친 빗방울은 유리창을 투과하여 마음 깊은 곳까지 배어든다. 사라지지 않던 미움이 빗물에 흐물흐물해진다.

목적을 정할 수 없었다. 아니 감정이 앞서다보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부정하는 힘이 워낙 강해서 생각의 질서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이 되었는지, 순서를 찾을 수 없었다. 혼돈으로 넘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냥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시야에 풍광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떨어지는 빗방울 이외에는 다른 것은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달리다보니, 의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니, 순서가 생긴다. 처음과 다음이 이어지니, 감정 뒤에 숨어 있던 이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내장사로 향하는 도로에는 단풍 가로수가 가지런히 서 있다. 색깔은 퇴색되었지만 지난 가을의 아름다웠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계절이 바뀐다고 하여 가슴에 각인되어 있는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리는 비를 고스란이 맞고 있는 단풍나무들이 우뚝하기만 하다.

내장사가 내려다보이는 산상 도로에는 하얀 눈이 남아 있다. 눈 위에 단풍잎이 떨어져 애잔한 느낌을 일으킨다. 눈 위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낙엽들이 나를 닮아 있다. 인생은 유한하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미움이 앞설 때에는 그 격정으로 인해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나를 본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말하고 있다. 잘못은 세상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고 그렇기에 미움이 커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미움의 대상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 나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동안 나 자신이 잘못 보았다는 결론에 도달하니, 모든 것이 허탈해진다. 비우면 깨끗해지고 비우면 투명해진다고 하였던가? 맑디맑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비우면 되는 일이라고 하였던가?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겠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참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낙엽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 두 개를 허물어야 비로소 참 세상을 볼 수 있다. 바깥에 드러난 벽을 허무는 것뿐만 아니라 내 안을 가두고 있는 단단한 안의 벽까지 부수는 무기가 사랑이다. 참 나를 찾게 해준 눈 위의 낙엽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춘성(春城) 정기상님은 전북 완주군 봉동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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