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1주년 특집 연속기획-3> 유모차부대 어머니들

촛불집회가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단초가 된 촛불집회는 그동안 일제고사, 언론악법, 용산참사 등을 거쳐오면서 진화해왔다. <위클리서울>은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이해 매주 각계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
촛불의 촉매가 됐던 촛불 소녀들에 이어 지난 호엔 촛불 대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번 호에는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갓 태어난 자식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끔찍하게 여겨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의 분노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작년 촛불 이후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 사태로 빚어진 `비열한 거리`와는 잠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혹시나 유모차 속의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유모차부대` 카페지기 정혜원 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가명처리 할 수밖에 없었다. 실명이 거론될 경우 행여나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수도 있다는 어머니들의 우려에서다. 다음은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이 전하는 `촛불집회 1년`에 대한 감회다.


▲ "지금도 국민들 계속 속이고 있어"
<전지현(33세)>
처음에는 수입된다는 고기가 20개월 미만의 쇠고기인줄 알았다. 또 안먹으면 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지난해 7월 첫째주부터 아이와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 경찰진압이 한참 심할 때였다.
시위는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몰고 간 성향이 강했다. 몇몇 폭력적인 시위자들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찰이 먼저 건드렸다. 서로 먼저 한번만 건드려 보라는 듯 노려보는데 대개 경찰들이 툭툭 건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저는 주로 주말집회에 참가했다. 위험할 수도 있어 남편이랑 의논해서 함께 나갔다. 유모차 부대 어머니들, 대부분 남편들과 함께 나왔다. 당시 아이가 돌도 안 지났을 때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게 위험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서 해가 저물기 전에 꼭 집으로 돌아왔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유모차에 대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애들을 마치 전쟁터에 끌고 나가는 것처럼 묘사하더라. 우리는 유모차를 `밀고` 나갔지 끌고 나가지 않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데리고 나온 애들이 입양한 애들이라고까지 말하더라.
정치적인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사실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야당 여당이 뭔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정치에는 무지했다. 제가 만약 결혼 안하고 애도 안 낳았다면 집회도 안나갔다. 그냥 예쁜 옷 사 입고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다녔을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다보니 정치적인 문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 제 입장을 고수하려면 한쪽 편에 설 수밖에 없게 되더라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들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다. 항상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던, 불거지는 문제들은 있지만 이번에는 그 충격이 남달랐다.
갑자기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보면 국민들 계속 속이고 문제 될만한 것들만 빵빵 터트리고 있다. 뭐든지 소곤소곤 자기들끼리 얘기하다가 빵 하고 터트린다. 그리고 나서 국민들에게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강요한다.

▲ "현정부 정책, 없는 사람 죽으라는 것" <김추자(34)>
촛불집회 초반부터 참가했다. 이유는 `의료민영화`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민영화 문제를 주의 깊게 찾아보고 나서 촛불집회에 참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어린 아이들이 자주 아프지 않나. 그런데 의료민영화가 되면 병원도 못데리고 갈 것 같았다. 보험도 안되고 생활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5월 31일, 용기를 내서 집회에 참여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더라. 처음에 쇠고기 문제가 뭔지도 몰랐는데 집회 참가하고 나서 경악했다. 민영화 보다 당장 급하게 저지해야 할 것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것을 알았다.
쇠고기도 문제지만 전반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저 같은 서민들은 살아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잘 살고 싶은데 도저히 살 수 없도록 하는 정책들이 난무했다. 없는 사람 죽으라는 정책들 같았다. 일단 쇠고기 수입은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나. 가능한 일인데도 국민들 요구를 그렇게 무시하는 것 보면서 속에서 천불이 났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다. 광우병 잠복기간이 수십년 된다는데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저는 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요즘은 쇠고기를 산지에 직접 주문해서 먹는다. 이유식에 쇠고기를 첨가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라도 먹일 수밖에 없다. 유모차부대 카페지기 분이 소개해준 곳에서 매달 10만원어치 정도 쇠고기를 비롯 각종 먹거리를 주문한다. 요즘 따라 아이들 먹거리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앞으로 집회는 나가고 싶어도 못나갈 것 같다. 집회불허라는 말도 나오고 진압도 심하고 해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오체투지 순례단이 서울에 입성했는데 얼마전 유모차 부대는 순례단과 함께 했다.
원래 선거는 관심은 없었는데 대선때 투표를 했으면 경제를 살린다는 이명박 후보를 뽑아야 된다고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정치에 대해 무지했는지…. 등골이 오싹하다. 원래 한나라당 싫어했는데 더 싫어하게 됐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말은 믿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하든 다 싫다.    


      
▲ "정부 의도적으로 촛불 본질 흐려" <김옥빈(35세)>
아이 이유식 만들어 먹이면서 쇠고기도 많이 섭취시키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아기를 키우다 보니 아기용품 본다던가 육아관련 조사라던가 그런데 관심이 많았다. 정치라는 것은 솔직히 아줌마다 보니까 `9시 뉴스` 헤드라인 정도만 봐왔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인터넷에 자주 접속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PD수첩` 보면서 너무너무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PD수첩`에서 나왔던 내용들이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위험하다는 것을 왜 자꾸 괜찮다고 하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의 정치 잇속이 들어갔고, 그런 부분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는데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가 정말 10년 후에 광우병 피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계속해서 광우병은 걱정스럽다. 시작은 쇠고기였지만, 쇠고기와 관련된 그 주변 음식들에 대해서도 걱정이다.
지난해 집회 때는 매번 참석했다. 주로 주말에 나갔고 웬만하면 남편이랑 함께 했다. 촛불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호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초반에 나갔을 때는 정말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평화적인 분위기를 보장받았다.
불법폭력으로 비춰진 것은 이명박 정부 수하의 방송들이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보여줘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우리 젊은 엄마들을 비롯 상당수 국민들은 집회가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촛불의 본질을 흐려놓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더 이상 유모차 끌고 나가고 싶지 않아" <송헤레나(32세)>
촛불 집회 초반, 인도의 유모차는 막지 않았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종이에 달고 인도 따라 걷는 건데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경들이 의도적으로 방패로 막았다. 유모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갑자기 달려들면서 방패로 막더라. 부득이 하게 차도로 내려가야하는 상황이 많이 연출됐었다.
그렇게 됐는데도 경찰들이 막아섰다. 막는 와중에 아이들이 놀라서 울기도 했다. 엄마들 입장에서는 무섭다기보다는 `도대체 이게 뭐지?` 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유모차 끌고 나가고 싶지는 않다. 광장 민주주의가 보장된다고 나갔는데 그 후에 약간 폭력적이라고 비난받기 시작하면서 저는 안나갔다. 정말 폭력적인지 아닌지는 아는 사람은 알지만, 분위기 자체가 유모차와는 동떨어져 있다. 정부가 평화집회를 보장 안해주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광우병 사태는 언론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막연하게 조선일보가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한겨레, 경향 등은 반면 진보적이라는 점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하려면 두 개를 동시에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공부를 해보니 그것도 아니더라.
조선일보의 역사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보수라는 말이 안 어울릴 정도로 부끄러운 역사더라. 한마디로 `쓰레기`다. 지금은 조선일보 보면 `눈이 썩는다`고 생각한다. 자기들 잇속만을 생각해서 눈을 속이기 때문에 당연히 없어져야 할 신문이다. 없앨 수만 있다면 그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정부는 촛불집회와 관련해 배후세력만 찾으려고 혈안이 돼있었다. 유모차부대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유모차부대 소속 두분이 경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 분들 남편 분까지 뒷조사했다고 한다. 직업이 무엇이고 어디에 소속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겠지만 아직까지는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경찰들 말 한마디에 가정에는 엄청난 파장이 인다. 그런 면에서 안좋은 영향이 있다. 실제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지만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저는 이명박 정부가 빨리 끝나길 바란다. 제발 5년 다 안 채우고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생활 속의 촛불을 늘 밝힐 것이다. 눈 어두워지지 않게, 눈 똑바로 뜨고 살 것이다. 

▲"87년과 다른 점, 대통령이 귀막고 있다는 것" <정혜원(34세, 유모차부대 카페지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공안당국은 촛불집회 이후 공포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때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은 농담삼아 `이러다 경찰들이 우리 집에도 찾아오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식의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농담은 현실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탄압, 그저 무시하고 살아 갈려고 노력한다. 물론 상황이 좀 바뀐 관계로 촛불집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가 부담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협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쇠고기 문제로 생활에 큰 영향은 없었다. 먹거리 문제에 대해서는 그나마 생협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을 뿐이다. 분명 잘못된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촛불을 들고 나갔을 때 상황이 크게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한 것도 아니다. 촛불은 87년도처럼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여기고 있다. 다만 87년과 다른 점은 대통령이 완전히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렇듯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남 탓 할 필요도 없다. 한나라당이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게 뽑아주는 국민들 스스로 다시 돌아봐야 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뽑아주는 국민들의 문제고 나아가 국민들을 그렇게 만드는 언론의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고 저는 한나라당이 계속해서 투표로 살아남는 모순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 거창한 기획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체념한 상태다.
그래서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별로 기대한 게 없었다. 한국에 없는 당으로 생각하고 살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반대쪽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 야당은 여당이 저렇게 저러고 있을 동안 도대체 뭐하고 있었나.
촛불집회에서 봐왔듯 현 정부는 전체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농업문제도 그렇다. 얼마전 대통령이 농촌에서 막걸리 마시고 와서 몇 마디 한 것 보도를 통해 접했는데 국민들 생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더라. 정부가 얘기하는 것은 농업의 상품성을 높여서 상업화하는 건데, 굉장히 미국적인 사회를 꿈꾸는 것 같다.
농업문제를 비롯해 국민들 대다수가 바라는 것은 유럽형의 복지사회인데 여기서 간격이 생겨 소통이 안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쨌든 촛불 집회 이후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점은 투표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제가 특별히 제 입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정리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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